옥외간판에 한글을 병기하지 않고 영문으로만 쓰면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현행 옥외광고물등관리법시행령 제13조1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 맞춤법·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하되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 한글과 병기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외국어로만 된 간판이나 기업체 이름이 판을 치고있는 실정에서 주목되는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金滿五 부장판사)는 11일 사단법인 국어문화운동과 한글학회 등이 (주)국민은행과 (주)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02가합76795)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그러나 "'한글의 침해'는 개개인의 권리가 아닌 사회적 이익에 해당하는 권리이므로 원고들에 대한 피해배상 책임은 없다"며 손해배상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옥외 광고물의 한글병기조항은 한 나라의 언어나 글자는 사회공동체가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소멸할 수 밖에 없고 이 조항이 외국어나 외국문자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거나 법적효력 없는 훈시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글병기조항에서 '기재'가 아닌 '병기'라는 표현을 택한 점, 광고물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리기 위한 도구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규정의 취지는 적어도 광고물 전체로 봤을 때 한글기재부분과 외국문자 부분이 비슷한 정도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개인이 한글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등 정신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해도 이는 사회적 이익에 파생한 권리일 뿐 개인의 권리는 아니며 원고들 고유의 권리가 침해된 것은 아니므로 피고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글학회 등은 국민은행과 한국통신이 기업이미지 통합(CI) 사업을 하면서 영업점 간판과 TV광고 등에 각각 한글이름 대신 영문로고를 이용한 KB*b와 KT를 사용하자 "영어만을 사용해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다"며 소송을 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