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과 조합원이 아파트 분양을 두고 벌인 분쟁에 법원이 엇갈린 판결들을 내놓아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법원이 재건축조합의 분양추첨 및 분양계획은 무효라고 확인하면서도 이에 따른 분양 재추첨 등 이행청구소송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기각, 조합과 마찰을 빚은 일부 조합원들이 재산권을 구제받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서울 강남구 해청아파트 주민 김모씨 등 21명은 지난 2004년 6월 자신들의 분양신청서 21통을 한 봉투에 넣어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에 발송했다. 하지만 조합은 평소 조합의 운영방침에 반대해 오던 이들의 분양신청서를 "적법한 신청이 아니다"라며 수취를 거절한 후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김씨 등 21명은 분양추첨에서 최하위 순위로 밀려나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게 됐다. 김씨 등은 곧바로 조합을 상대로 분양추첨과 이에 의한 분양계약 체결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내용의 '분양추첨 및 분양계약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조합이 분양자들의 소유권보존등기를 승낙하거나 등기절차에 협력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처분신청도 제기했다.
분쟁 초기에 법원은 김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2007년 4월 김씨 등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가처분 결정을 위반할 경우 조합이 신청인 한 명당 3억원씩을 지급하도록 하는 간접강제결정도 함께 내렸다(서울고법 2007라527).
대법원은 2008년 2월 분양추첨과 분양계약 체결이 무효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2006다77272). 재판부는 "재건축 조합이 재건축 절차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등의 이유로 21세대나 되는 조합원들의 적절한 동·호수 추첨권을 박탈한 것은 조합원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조합은 남은 분양절차를 진행할 수 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분양추첨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곧 반전되고 말았다. 김씨 등은 2008년 4월 자신들이 승소한 확정판결을 근거로 이미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이 아파트 주민 이모씨 등 18명을 상대로 등기를 말소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법원에 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김씨 등에게 조합을 대신해 입주민들의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권한과 이유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2009다99402).
또 김씨 등이 조합을 상대로 아파트 분양추첨을 다시 하라며 낸 소송 역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모두 기각되고 말았다(서울고법 2010나85807). 재판부는 "신축아파트를 대상으로 동·호수 추첨을 다시 해 기존의 법률 및 사실상의 상태를 되돌리는 것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며 "재추첨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동·호수 추첨행위가 무효라는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무효판결에 기한 이행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이와 함께 법원이 2007년에 받아들인 가처분신청도 최근 취소됐다. 서울고법 민사40부(재판장 김병운 수석부장판사)는 지난달 15일 가처분신청의 본안소송은 지난 2004년 김씨 등이 낸 '분양추첨 및 분양계약 무효확인소송'이라고 보고, "본안소송이 이미 확정됐으므로 더 이상 가처분을 구할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가처분 결정마저 취소됨에 따라 해청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는 물론 대지에 대해서도 소유권보존등기를 할 수 있게 됐다.반면 김씨 등 21명은 2008년 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구제받기가 곤란해졌다. 본래의 분양순위에 따라 분양받을 아파트와 실제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가격차이 만큼 현금으로 청산받는 방법 외에는 동·호수 재추첨 소송의 대법원 선고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현재의 시세차이 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손해 발생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씨 등을 대리한 함준표(53·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는 "사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손해의 발생을 입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대법원 선고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도 하급심과 같이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분양 재추첨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법원의 오락가락한 판결로 인해 7년이나 끈 해청아파트 분양 분쟁이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들이 확정된 무효확인소송에 기해 그 이행을 구하는 소송이 법원에 계속 중인데도 가처분을 구할 이익이 소멸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