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행위에 참여한 업체들의 부정행위 관련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면 원칙적으로 '리니언시(Leniency, 담합 행위를 한 기업이 이를 자진 신고하면 처벌을 경감해주는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주식회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감면거부처분 취소소송(2017두54746)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사 등 기계 설비 공사업체 20여개사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77개 민간 건설사에서 발주한 797건의 공사입찰에 참여하면서 담합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공정위는 2016년 A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23억5900만원 납부를 명령했다.
A사는 공정위가 이 담합행위를 조사 중이던 2014년 담합행위를 인정하는 내용의 확인서와 담합협의금을 지급받은 통장거래내역 등을 공정위에 제출하면서 제재 감면신청을 했다. 공정거래법상 '조사협조자'로서 과징금을 감면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2016년 "공정위는 A사가 감면신청을 하기 전에 이미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며 A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A사가 조사에 적극 협력한 점을 고려해 과징금을 10% 감경해 20억6300만원으로 정정했다. 이에 반발한 A사는 서울고법에 소송을 냈다.
사전 증거확보 이후는
‘조사협력자’ 성립할 수 없어
재판에서는 공정위가 업체들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이미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담합 가담업체가 자발적으로 신고해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경우에도 '조사협조자'로서 제재 감면대상이 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2조의2 1항 2호는 '증거제공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협조한 자는 과징금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리니언시 제도를 두고 있다.
서울고법은 "공정위는 이미 공동행위 외부자의 제보와 자료 제출 등에 따라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A사의 1순위 조사협조자 지위를 부정하고, 2순위 조사협조자 해당 여부에 관한 추가적 검토 없이 감면신청을 기각했다"며 "A사는 1순위 조사협조자가 될 수 없더라도, 2순위 조사협조자는 될 수 있다"며 A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이 조사협조자 감면제도를 둔 취지와 목적은 공정위로 하여금 부당공동행위를 보다 쉽게 적발하고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부당공동행위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위가 이미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이후에는 '조사협조자'가 성립할 수 없고, 이는 1순위는 물론 2순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조사협조자를 1순위, 2순위로 구분해 규정한 것은 조사협조자들 중 '최초로 증거를 제공한 자' 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증거를 제공한 자'까지 감면을 허용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이 1순위 조사협조자의 증거 제공에 의한 것일 때에는 2순위 조사협조자도 성립할 수 있지만, 공동행위 외부자의 제보에 의해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이후에는 공동행위 참여자가 증거를 제공하더라도 '조사협조자' 감면제도에 따른 감면을 받을 수 없고, '조사협력'에 따른 재량 감경을 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