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물학대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개를 공격하는 이웃집 맹견을 전기톱으로 죽인 50대 남성에게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지자 동물보호법의 입법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에 결과적 가중범 처벌규정을 도입하고, 동물을 재물로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원지법 형사1부(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김모(51)씨에 대한 항소심(2013노5055)에서 동물보호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재물손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하고 형을 선고유예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물보호법 제8조1항 제1호에서 정한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한다"며 "피해견인 로트와일러가 묶여있던 김씨의 진돗개를 공격했고, 엔진톱을 이용해 나무를 자르고 있던 김씨가 피해견을 쫓아버리기 위해 엔진톱으로 피해견을 위협하다 죽인 것으로 동물보호법 규정에서 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견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들고 있던 엔진톱을 이용하여 내리치면서 피해견의 배 부분과 등 부분이 절개될 정도의 상해를 가하게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견은 등 쪽이 절단되어 내장이 드러난 상태로 피를 흘리다 죽음에 이르렀다"며 "비록 김씨가 자신의 진돗개를 보호하려는 상황이었다고 할지라도, 몽둥이나 전기톱 등을 휘둘러 쫓아버리는 방법으로 보호할 수 있었으므로 전기톱으로 내리친 것은 피난행위의 상당성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김씨에게 선고유예형이 내려지자 동물관련 시민단체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 개정을 통해 동물학대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죽음에 대한 고의가 없어도 죽음의 결과가 발생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결과적 가중범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동물을 죽이더라도 사망에 대한 고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김씨처럼 처벌이 불가능하다. 2012년 사료 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소를 아사시킨 순창 소 아사 사건 이후 동물보호법 제8조1항 3호에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는 행위로 인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동물학대행위로 편입해 특수한 경우의 결과적 가중범을 인정하는 것이 전부다. 동물보호법에 유기치사·학대치사·상해치사 등 일반적 결과적 가중범 처벌규정 도입은 현재 입법 발의된 상태다.
동물의 지위를 물건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민법 규정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재물손괴 양형기준의 원칙은 재물의 가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동물에 상해를 입힌 경우 그 동물의 가액을 기준으로 형을 선고하기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배의철(37·사법연수원 41기) 생명네트워크 변호인단 대표는 "현재의 양형기준에는 학대의 정도나 잔인한 방법, 피해자의 고통 등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은 법에 동물은 물건과 다른 지위 가진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동물을 재물로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