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얼마 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 중 하나인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의 원심판결은 현저한 규모에 의한 지원행위인 소위 '물량 몰아주기'의 부당성을 최초로 인정한 고등법원판결로서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기대되었으나, 그 선고 이틀 전에 원고들이 상고를 취하함으로써 대법원은 피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상고이유에 대하여만 판단하고 달리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에 이하에서는 원심판결의 내용을 통해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 판단기준을 검토하고,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사건의 경위 및 대상판결의 요지
가. 피고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피고 공정위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한 A, B, C, D, E(이하 "원고들")에 대하여, ① A가 재료비 인상을 이유로 C 회사의 부품 가격을 인상하여 지급한 행위 등 및 ② A, B가 E의 경쟁사 甲, 乙이 판매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E의 자동차용 강판을 구매한 행위, ③ 사업능력이 검증되기 이전인 D의 설립 초기부터 A, B, C, E가 D에 자신들의 운송 물량을 대부분 몰아준 행위가 각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이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부과하였다.
특히, 피고 공정위는 위 ③번 행위에 의한 거래가 (i) D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에 비추어 "현저한 규모의 거래"이고, (ii) 해당 거래에 따른 D의 매출총이익률 등에 비추어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의한 거래"이며, (iii) 비경쟁적 방식에 의한 현저한 규모의 물량수주 등에 비추어 "과다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이를 공정거래법상의 지원행위라고 판단하였고, (iv) 이로 인하여 D가 화물운송주선업 시장에서 유력한 사업자로서의 지위를 획득·유지한 반면, 지원주체의 경쟁력 저하, 화물운송주선업 시장의 신규진입 저해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해당 행위의 부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2009. 8. 19. 선고 2007누30903 판결)의 요지
원심은 위 각 행위 중 ②번 행위에 대하여, 일관제철소로서 자동차용 강판의 생산원가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甲 및 甲으로부터 자동차용 강판의 원자재인 열연코일 등을 50% 이상 조달하여 생산하는 乙의 자동차용 강판 가격을 정상가격으로 볼 수 없으므로 E가 생산한 자동차용 강판 가격이 정상가격의 범주를 벗어난 것인지 판단할 수 없고, 따라서 A, B가 甲, 乙이 판매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E의 자동차용 강판을 구매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E에 대한 지원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원심판결은 위 ②번 행위에 대하여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였고, 그 외의 행위들에 대하여는 대부분 공정위의 처분 내용을 수용하여 공정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다.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2. 10. 25. 선고 2009두15494 판결)의 선고 경위 및 요지
이러한 원심판결에 대해 원고들 및 피고 공정위는 각각 상고하였는데, 특히 원고들은 상고이유서에 이어 8차에 걸친 상고이유보충서까지 제출하며 원심판결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다투었다.
그러나 판결 선고 이틀 전에 원고들이 돌연 상고를 취하하여 대법원은 원고들 주장에 대한 판단을 모두 배제한 채 피고 공정위의 주장에 대하여만 판단하였고, 피고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며 위 ②번 행위에 대한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3. 원심판결 및 대법원 판결에 대한 소고
가. 원심판결을 통해 살펴본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 판단기준
(1) 물량 몰아주기는 지원주체인 사업자가 현저한 규모로 사업물량을 제공 또는 거래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지원객체인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공정거래법 시행령 [별표 1의2] 10.항).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여 거래비용을 내부화하고, 수급상황의 안정성을 제고함으로써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회사를 신설하거나 인적 자원을 재분배하는 등으로 각 계열회사에 산재되어 있던 공통 업무를 집중할 유인이 존재한다. 반면에, 이러한 거래물량의 집중은 기업집단 내의 부실기업을 지원하거나, 지원객체 기업의 지분을 기업집단 총수 일가가 소유한 뒤 해당 기업의 가치를 증가시킴으로써 편법적으로 재산상속 내지 경영승계를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소지도 있다.
(2) 그런데 기업집단의 거래물량이 집중되더라도 그 거래조건이 합리적으로 설정되어 있어 지원주체 기업의 이익을 저해하지 않거나 지원객체 기업이 속한 시장의 경쟁상황을 왜곡하지 않는 경우, 이로 인한 경쟁법적 관점 외의 효과에 대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유로 도덕적 비난을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를 일률적으로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중 하나인 부당지원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존에 대법원은 H투자신탁이 특정 펀드를 운용하면서 계열회사인 H투자신탁증권에 상당 규모의 대출을 해 준 사안에서 "현저한 규모의 거래라 하여 바로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준 것이라고 할 수 없고 현저한 규모의 거래로 인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것인지 여부는 지원성 거래규모 및 급부와 반대급부의 차이, 지원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 지원기간, 지원횟수, 지원시기, 지원행위 당시 지원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 대출 규모가 현저한 규모의 거래로서 H투자신탁증권에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준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는 아니하나 제반 사정에 비추어 이를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부당지원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4두7610 판결), 동일한 취지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공정위는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③번 행위에 대한 지원행위 성립요건을 현저한 규모, 상당히 유리한 조건, 과다한 이익 제공으로 나누어 판단하였는데, 원심판결은 "현저한 규모의 거래를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한 행위"를 공정거래법상의 지원행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의한 거래'를 위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하고 있는 '과다한 경제상 이익의 제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서, 물량 몰아주기의 경우 해당 거래에 '현저한 규모 +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인정되면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지원행위의 성립요건인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로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물량 몰아주기는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불균형을 반드시 전제하는 것이 아니고, 거래비용의 내부화를 통한 부의 창출은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생리상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거래규모 이외에 거래조건 등을 고려하여 ③번 행위가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행위"라고 판단한 원심판결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 한편, 원심에서 A, B, C, E는 위 ③번 행위의 부당성이 없다는 그 근거 중 하나로 '해당 거래로 인한 기업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주장하였는데, 원심판결은 "지원행위에 단순한 사업경영상의 필요 또는 거래상의 합리성 내지 필요성이 있다는 사유만으로는 부당지원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부당성 및 공정거래저해성이 부정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4. 10. 14. 선고 2001두2935 판결 등)의 법리를 제시하며 원고들의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런데 물량 몰아주기가 공정거래법상의 지원행위인지 판단하기 위하여는 거래규모 이외에 거래조건 등을 고려하여야 하므로, 사업경영상의 필요나 거래상의 합리성 내지 필요성만을 이유로 해당 행위의 부당성 및 공정거래저해성을 부정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량 몰아주기가 지원행위로 판단된다면 과다한 경제상 이익의 제공으로 인해 지원객체가 속한 시장의 경쟁질서를 왜곡하는 결과가 발생하고, 이는 다른 일반적인 부당지원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심판결은 새로운 법리를 통해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 내에서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인 것이다.
나. 대법원 판결의 의의
원고들의 상고 취하로 인하여 대법원은 피고 공정위의 상고에 대하여만 판단하였는바, 해당 판결은 ②번 행위와 관련하여 부당지원행위의 판단 기준 및 급부와 반대급부가 현저히 유리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정상가격'의 의미에 대한 기존 판례의 법리를 확인하고, 행위 당시의 특수한 시장상황에 비추어 지원객체의 경쟁사업자가 판매하는 제품 가격이 지원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정상가격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제시한 사례로의 의미만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원고들의 상고 취하로 인하여 ③번 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한 원심판결이 확정되었고, 이로 인하여 원심판결은 향후 공정위가 물량 몰아주기를 부당지원행위로 규제함에 있어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4. 맺음말
최근 공정위는 물량 몰아주기에 의한 부당지원행위에 대하여 법 집행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그 규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나, 물량 몰아주기의 위법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이에 원심판결은 당분간 물량 몰아주기의 지원행위 여부 및 그 위법성을 판단하는 일단의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그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