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요청이 있더라도 전문의 진단을 거쳐 입원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정신질환자 또는 정신질환자로 의심을 받는 사람을 집에서 강제로 끌어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신질환자 등을 이송하는 업체에게는 입원과 관련한 전문의 결정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주거침입 및 감금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설 응급환자 이송업자 E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F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2018노2985).
A씨는 사실혼 관계인 B씨와 함께 둘째 오빠인 C씨 부부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2017년 A씨와 B씨는 회사에서 해고 당했다. 두 사람은 회사가 다음 날 퇴직금을 바로 정산해주지 않자 사무실에서 소란을 피웠다.
C씨 부부는 A씨가 평소 화를 참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은 물론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온 점 등을 이용해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마음먹고 보호의무자인 어머니로부터 동의를 받았다. 이후 C씨는 응급환자 이송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설 응급센터 지점장 E씨에게 연락해 'A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이송해 달라'고 의뢰했다. E씨와 센터직원 F씨는 C씨와 함께 A씨의 집을 찾아간 다음 집안으로 들어가 A씨를 강제로 끌어내 구급차량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E씨와 F씨는 강제이송 과정에서 A씨에게 폭행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E씨와 F씨, 그리고 오빠 C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 주거침입, 공동 감금 및 체포치상 혐의로 기소하고, C씨의 부인 D씨를 공동 감금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E씨와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F씨와 D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E씨와 F씨는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업체 직원으로서 보호 의무자로부터 정신질환자를 정신 의료기관까지 이송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관행적으로 보호의무자 2인의 요청이 있는지만 확인하기 때문에 이번 사안도 적법하다 생각했다"며 "전문의 진단서 등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고 감금의 고의도 없었다"며 항소했다.
재판부는 "정신질환자이거나 또는 그러한 질환이 있다고 의심받는 자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국가로부터 보호받으며 정신건강법에 의해 본인 의지에 따른 입원이 권장되어야 한다"며 "정신질환자 등의 의사에 반한 입원이나 그 입원을 위한 이송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는 필수적으로 준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43조는 '정신의료기관은 정신질환자 보호의무자 2인의 요청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경우에만 해당 정신질환자를 입원 등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보호의무자가 정신질환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입원을 시키기 위해선 정신건강법 제43조에 따른 요건이 갖춰져야하고, 이는 입원을 위한 강제이송에도 필요하다"며 "보호의무자의 이송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업자가 정신건강법이 정한 요건을 갖췄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에 들어가거나 강제로 이송하는 경우 주거침입죄와 감금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잘못된 관행에 따라 법규 위반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범행을 한 점과 주범인 오빠 C씨, 그리고 그의 부인인 D씨가 피해자 A씨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업체에서는 여전히 보호의무자가 요청하면 정신질환자로 지목된 사람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이송하는 관행이 남아있다"며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이송할 때도 정신건강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야 하고, 이송 담당자 역시 이를 확인하지 않으면 처벌당한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