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사건에 대해 기자에게 '간첩단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한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발언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0부(재판장 지대운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일심회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장민호(47)씨 등 5명이 "기소되지도 않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간첩혐의가 명백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와 김 전 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08나79281)에서 1심 판결을 변경해 원고일부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장씨 등 5명에 대해 200만원씩 지급하도록 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장씨에게 변호인접견을 불허한 처분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로 인정, "국가는 장씨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전 원장의 발언은 단지 간첩단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범행을 했다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며 "이 발언에 '국가보안법상 간첩 또는 이적단체 구성, 회합·통신의 점에 관한 피의사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에게 기자의 질문취지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하면 인터뷰에 응해 추상적인 답변을 한 사람에 대해 그가 관여할 수 없는 보도내용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우게 되는 셈이 돼 민법상 자기책임원리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장씨의 변호인에 대한 퇴거처분 및 접견불허처분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 수사관 및 검사는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장씨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했으므로 대한민국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원장은 '일심회' 사건 수사 초기인 2006년10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중 한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간첩단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고 이 발언은 언론에 보도됐다. 장씨 등은 이 발언을 문제 삼아 2007년5월 소송을 냈다. 장씨 등은 2006년12월 국가보안법상의 간첩혐의 등으로 기소돼 일부 유죄가 인정됐고 이 사건은 2007년1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다만 이적단체구성 혐의에 대해서는 일심회가 단체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