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더라도 다른 양형 조건을 참작해 선고유예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상고하는 것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에 해당돼 대법원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범죄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선고유예를 할 수 없다" "선고유예의 가부를 상고심의 심판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용우·李勇雨 대법관)는 지난달 20일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재정신청이 받아 들여져 2심에서 벌금 3백만원의 선고유예판결을 받은 민주당 송영진 의원(충남 당진)에 대한 상고심(☞2001도6138)에서 이같은 이유로 공소유지변호사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따라 송 의원의 의원직은 유지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고유예의 요건 중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는 반성의 정도와 양형의 조건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사정이 현저하게 기대되는 경우"라며 "이와 달리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가 반드시 피고인이 죄를 깊이 뉘우치는 경우만을 뜻하는 것으로 제한해석하거나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부인할 경우에는 언제나 선고유예를 할 수 없다고 해석할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개전의 정이 현저한지 여부에 관한 사항은 널리 양정에 관한 법원의 재량사항에 속한다고 해석된다"며 "상고심으로서는 형사소송법 383조4호에 따라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심판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선고유예에 관해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지 여부'에 대한 원심판단의 당부를 심사할 수 없고, 원심 판단이 현저하게 잘못됐더라도 달리 볼 것이 아니다"고 판단, 선고유예 판결이 상고심의 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383조4호에 따르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만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 상고이유로 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과 다른 견해에서 선고된 대법원 ☞99도1635· ☞99도3140·2000도2588 판결의 각 견해는 이 판결에 저촉되는 한도에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진훈(퇴임)·이용우·배기원 대법관은 "선고유예의 요건 중 형법 59조의 1항과 3항 요건의 판단을 그르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383조 1호의 '법률위반'으로 보면서 2항 요건의 판단을 그르친 경우에만 이를 '형의 양정' 문제로 봐야할 이유가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반대의견은 또 "형사소송법 383조 4호에 의해 사실인정이나 양형문제를 이유로 한 상고를 제한하고 있지만 하급심의 잘못을 바로잡아 당사자를 구제하는 3심 재판의 기능 수행을 위해 사실인정의 문제를 채증법칙 위배로 심판하고 있는 이상 형의 양정의 의미도 합목적적으로 해석해 대법원의 하급심 지도기능을 수행할 길을 열어둠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유지담 대법관도 "형법 41조는 형의 종류를 규정하며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형의 경중의 비교대상이 아니다"며 "따라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가 위법하다는 주장은 양형이 부당하다는 주장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혀 다수의견과는 달리 선고유예 당부도 대법원의 심판대상이라는 의견을 냈다.
송 의원은 제16대 총선 직전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 당시 자신의 졸업이 취소됐는데도 모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는 등 허위로 학력을 밝히고 상대후보인 김현욱 전 의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김 전 의원이 제기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1심에서 벌금 80만원, 2심에서 벌금 3백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