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와 주유소업체가 맺은 '제품 전량구매' 약정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의결에 어긋나더라도 당사자간 합의로 체결됐고 신의칙 위반으로도 볼 수 없다면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황순현 부장판사)는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가 경남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0가합815)에서 최근 "A사는 1억2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3년부터 A사와 1년 단위로 석유제품 공급계약을 맺어왔다. 그런데 이 계약 제3조 1항에는 전량구매 조항이 규정돼 있어, A사는 계약기간 동안 주유소 제품 소요량의 전량을 현대오일뱅크로부터 구매해야 했다.
이듬해 현대오일뱅크는 A사와 2019년까지 5년간 주유소에 사용될 셀프주유기 3기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시설물 사용대차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 제9조에도 석유제품에 대한 A사의 전량구매 의무가 규정됐다.
브랜드 신뢰성 위해 필요
약관규제법 위반 안돼
한편, 각 계약은 모두 계약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계약 연장에 반대하는 서면 통보가 없으면 동일한 조건으로 1년씩 연장되도록 했다. 이처럼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되던 중 A사가 2018년 중순부터 현대오일뱅크의 제품을 소량만 구입하고 다른 판매업자로부터 공급받은 제품으로 주유소를 운영하자, 현대오일뱅크는 "A사가 계약에 따른 전량구매 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공정위 시정 의결에 의하면 거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전량구매 약정을 체결하는 것은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되지만, 당사자 합의로 체결된 약정까지 모두 불공정 거래 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일부승소판결
이어 "석유 공급계약 기간은 1년으로 A사가 더 이상 계약의 존속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유롭게 갱신 여부를 결정해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다"면서 "사용대차계약의 체결로 공급계약 기간이 5년으로 연장되기는 했으나, A사는 그 대가로 시설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이익을 얻었으므로 계약이 특별히 불리하거나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관에 해당하는 이 사건 계약의 경우 현대오일뱅크로서는 일반소비자에 대한 브랜드 가치 신뢰를 위해 전량구매를 약정할 필요성이 인정돼 약관규제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A사는 4년여간 전량구매 의무를 준수하다가 계약기간 만료를 약 1년여 앞두고 그 의무를 위반했고, 현대오일뱅크도 A사의 위반 사실을 알면서도 공급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계약을 유지한 점 등에 비춰볼 때 A업체의 손해배상금을 30%로 감액함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