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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13477 판결, 2021다229601 판결 평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기업법무
민사일반
-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79347 -
대우건설 주주대표소송
I. 글머리에 지난해 11월 유니온스틸㈜의 대표이사가 내부통제시스템구축 및 유지관리의무 위반을 이유로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대법원 판결(2017다222368)이 난 지 불과 반년 만에 대법원은 다시 ㈜대우건설 주주대표소송의 상고심을 선고하였다. 매우 긴박한 법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판결의 내용을 보아도 유니온스틸 때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하다. 아래에서 보듯이 여러 논점이 포함되어 있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판시내용을 요약한 후 관련 문제점으로 진입해 보기로 하자. Ⅱ. 사실관계 및 판시내용의 축약 대우건설은 4대강사업, 영주다목적댐공사 및 인천도시철도 2호선공사의 입찰 등에 있어 다른 건설사들과 더불어 입찰가격을 담합함으로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각 97억여원, 24억여원 및 161억여원의 과징금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우건설의 주주들이 이 회사의 대표이사, 평이사 및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것이 본 사건이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대표이사에 대해서만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고 다른 이사들에 대해서는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이건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건 그 적용이 어렵다고 보아 상법 제 399 조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가 항소하자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1심판결을 변경하면서 모든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에 관한 한'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판단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적용하였다.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전체 손해액의 약 5% 정도를 적정한 것으로 보아 책임제한을 시행하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Ⅲ. 평석 1.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의무의 귀속 주체 모든 이사가 이에 포함된다. 사내이사건 사외이사건 대표이사건 평이사건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유니온스틸사건(2017다222368)에서는 대표이사만 피고여서 이 점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건설 사건은 이 점을 명확히 하였다. 사외이사 역시 예외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사외이사는 바로 이러한 감시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선임된 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요건에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는 시스템구축을 위한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의 실행 및 구축된 시스템의 유지·관리 등 시간순서상 여러 단계로 나뉘어질 것이다. 시스템구축의 실행 및 그 유지관리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그의 지시를 받는 사내 하부조직에 위임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사는 일부나 전부의 위임여부를 떠나 모든 단계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 대법원은 이를 분명히 하였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2. Mission-Critical(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 유니언스틸사건(2017다222368)이나 대우건설사건(2021다279347)의 판결문과 2008년의 대우분식회계사건(2006다68636)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모두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한 가지 점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전자(前者)들에서는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라는 용어가 등장하나 후자(後者)에서는 그런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 즉 전자들에서는 회사 내부의 사정상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그런 영역에서는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가 보다 높은 수준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적어도 이런 경우에는 적정한 내부통제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사는 면책되기 어렵다는 경고성 판시를 하고 있다. 결국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의 정도를 업무의 성격이나 종류 등에 따라 차등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이런 경우에는 보다 제고된 의무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향후의 법률자문에서는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의 이런 자세는 내부통제시스템에 관한 델라웨어주 법원들의 근자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1996년 이 사법심사기준이 처음 케어막사건에 등장한 이후 이 청구원인(cause of action)은 크게 이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 Marchand v. Barnhill 사건을 게기로 전기를 맞는다. 이 사건 이후 본 청구원인의 승소사례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Marchand사건 이후 , Clovis사건, Hughes사건, Chou사건, Boeing 사건 등 일련의 판결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승소사례의 증가에는 ① 'mission critical'이란 개념을 이용하면서 판례법이 급속히 진화하였고, ② 원고 주주의 증거수집상 어려움이 해소되었으며, ③ 기업경영에 있어 ESG의 요소를 중시하는 근자의 흐름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분석들이 있다. 어쨌든 이번 판결은 내부통제시스템을 둘러싼 회사 내부의 위험을 차등화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항공기를 제조하는 보잉사에 있어 제작한 항공기의 안전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mission-critical) 이며, 아이스크림만 제조하는 Blue Bell 社에 있어 생산된 아이스크림의 안전은 식품위생법상 절대적 요소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은 mission-critical이다. [판결요지] 서울고법은 1심판결을 변경하면서 모든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판단 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내부 통제시스템 기준’을 적용하였다.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전체 손해액의 약 5% 정도를 적정한 것으로 보아 책임 제한을 시행하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평석요지] 내부 통제시스템 구축의무는 시스템구축을 위한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의 실행 및 구축된 시스템의 유지·관리 등 시간 순서상 여러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다. 시스템구축의 실행 및 그 유지관리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그의 지시를 받는 사내 하부조직에 위임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사는 일부나 전부의 위임 여부를 떠나 모든 단계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 대법원은 이를 분명히 하였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3. 사외이사의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 본 판결은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외이사의 책임발생요건을 별도로 설시하고 있다. 사외이사 역시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의 주체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사내이사들과 달리 회사내 업무집행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의무위반의 성립요건상 다른 사내이사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하며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두가지 경우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 경우 사외이사에게는 시스템설치에 대한 촉구의무가 부과된다. 다른 하나는 이미 시스템이 구축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해당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며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동원가능한 조치를 취하는 등 정상적인 운영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경우에는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향후의 판례법에서 이번에 설시된 책임발생요건이 좀더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4.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과 내부통제시스템기준간의 관계 이번 판결을 통하여 분명해진 것은 동일한 회사라도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한 두가지 사법심사기준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의 규모에 관계없이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은 모든 회사에 있어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다만 고도로 분업화되고 조직화된 대규모 회사에 있어서는 이사들이 의심할 만한 상황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다.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표이사, 평이사 및 사외이사의 책임발생요건을 각각 달리 설정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가장 주된 피고라 할 대표이사의 경우 청구원인은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이었다. 이에 반하여 여타 사내이사들과 사외이사들에 대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적용하였다. 다만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같은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라도 사내이사와 다른 별도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조직화된 대규모 회사라도 나라마다 사외이사제도를 둘러싼 법률환경은 천차만별 다르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 의무위반 이사의 책임범위 특히 가격담합이나 입찰담합 등 공정거래법위반으로 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많은 바 이때 과징금의 전부가 회사의 손해인가?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법규위반 상황에서는 손익상계 등의 적용은 어려울 것이다. 판례 역시 뇌물공여나 분식회계 등 법규위반 상황에 대해서는 손익상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위반하였다고 당해 이사가 언제나 발생한 손해의 전부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제한에 관한 판례법의 잣대가 탄력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사건의 원심에서도 피고 이사들의 책임액을 합산하면 과징금 부과처분으로 ㈜대우건설이 입은 전체 손해액(약 284억원)의 5% 정도에 불과하다(2020나2034989). 대법원도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대표이사, 평이사, 사외이사 등 사내 비리나 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을 차등화할 수 있다면 이에 따라 책임제한의 비율도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각 이사의 연보수 수준, 개인적인 이득 또는 형사처벌의 유무 등도 구체적인 책임산정에 작용할 것이다. 김정호 명예교수(고려대 로스쿨)
준법경영
이사
준법감시
김정호 명예교수(고려대 로스쿨)
2022-07-07
공정거래
행정사건
-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8두37700, 37980 판결 -
시장지배력 남용으로서 약탈적 가격인하와 이윤압착 문제
[사건경위] 1. 사실관계 2000년대 초 인포뱅크가 이동통신 3사의 문자 전송서비스를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를 처음 출시하였고, 이후 수요가 폭증하자, 다른 중소기업들 뿐 아니라 삼성에스디에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원고 엘지유플러스(LGU+), 원고 케이티(KT) 등 대기업들도 기업메시징서비스 생산공급자 또는 재판매업자로서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 신규 진입하였다. 다음카카오는 자사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를 2014년부터 출시하였다. 기업메시징서비스 대량 수요처는 입찰 방식 등을 통하여 가격인하 경쟁을 유도하였고, 원고 엘지유플러스와 원고 케이티는 각자 대형 고객 유치를 위해 개별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 가격을 부가통신사업자들보다 낮게 설정하였고(이하 '이 사건 가격설정'), 이로 인해 원고들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부가통신사업자들이 영업 부진을 겪었다. 2.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 2015년 2월 공정위는 이 사건 관련상품시장을 이동통신 3사의 문자 전송서비스를 이용한 기업메시징서비스로만 정하고, 원고들 각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는 전제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 사건 가격설정은 이동통신 3사의 전송서비스 가중평균 가격보다 낮기 때문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규제법') 시행령 제5조 제5항 제1호의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의한 부당한 경쟁자 배제(즉, 부가통신사업자 배제)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원고들에게 과징금납부명령과 시정명령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 3. 원심판결 2018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통상거래가격은 '효율적인 경쟁자가 당해 거래 당시의 경제 및 경영상황과 해당 시장의 구조, 장래 예측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선택하였을 때 시장에서 형성되는 현실적인 가격'이라고 하고, 공정위가 통상거래가격이라고 주장한 가격이 통상거래가격이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고, 예비적으로 보더라도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였다. 4. 대상판결 2021년 6월 대법원은 독점규제법 시행령 제5조 제5항 제1호의 통상거래가격은 비용과는 구별되는 가격의 일종이라는 등의 이유로 '통상거래가격에 비하여 낮은 대가로 공급하는 행위'에는 이른바 '이윤압착행위'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 가격설정은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인 이윤압착으로서 중·장기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의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효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 판결요지 ] 대법원은 통상거래가격은 비용과는 구별되는 가격의 일종이라는 등의 이유로 ‘통상거래가격에 비하여 낮은 대가로 공급하는 행위’에는 이른바 ‘이윤압착행위’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인 이윤압착으로서 중·장기적으로 기업메시징서비스의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 효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 평석요지 ] 대상판결의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법리적 혼란만 초래하고 있고, 수직통합사업자의 가격우산 아래 하방시장 경쟁자들이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특히 카카오와 이동통신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경쟁이 제한되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적법한 가격경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평석] 1. 문제의 소재 이 사건에는 시장지배력 존부 및 경쟁제한성 존부를 판단하기 위한 관련시장 획정 단계에서부터 카카오톡 기업메시징서비스가 제외되었다는 문제가 있다. 설령 관련시장에서 카카오톡 기업메시징서비스가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엘지유플러스에게는 케이티가 유력 경쟁자이고, 케이티에게는 엘지유플러스가 유력 경쟁자이고, 원고들 모두에게 카카오가 유력 경쟁자이고 에스케이텔레콤이 잠재적 경쟁자인 상황에서, 원고들이 각자 단독으로 어떻게 시장지배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인지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하나의 관련시장에서 복수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각자 단독으로 시장지배력을 형성하여 각자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비교법적 사례는 물론이고 경제학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내용이다. 한편 경쟁법상 약탈적 가격인하(predatory pricing) 문제와 가격·이윤압착(price/margin squeeze) 문제는 서로 구별된다. 시장지배력 남용으로서 가격압착은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 문제되었고, 유럽에서는 2000년대부터 이윤압착이라는 용어로 문제되었다. 약탈적 가격인하는 미국에서 1911년 Standard Oil 판결, 이윤압착은 1945년 Aloca 판결에서 최초로 인정된 이래 오늘날까지 양자의 경쟁법상 쟁점이 다르기 때문에 판례와 학설 모두 양자를 구별해왔다. 원래 의미의 이윤압착은 상방시장의 높은 가격설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고, 하방시장의 낮은 가격만 문제되는 경우는 이윤압착이 아니라 약탈적 가격인하가 문제된다. 이 사건 가격설정은 상방시장에서 높은 가격설정이 아니므로(엘지유플러스는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전송서비스 판매가격을 인상시킨 적이 없고, 케이티는 오히려 전송서비스 판매가격을 인하시켰다), 이윤압착으로 볼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가격설정을 이윤압착으로 잘못 전제하였고, 대상판결이 제시한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경쟁법 기본 원리에 비추어볼 때 극히 이해하기 어렵다. 2.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의 해석론 시장지배력 남용의 하위 유형인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은 약탈적 가격인하로서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될 수는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상방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해석될 수 없으므로 이윤압착으로 해석될 수 없다. 첫째, 가격(이윤)압착이란 '상방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진 수직통합사업자가 (i) 상방시장에서 가격을 너무 높게 설정하거나 또는 (ⅱ) 상방시장에서는 가격을 너무 높게 설정하고 하방시장에서는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함으로써 경쟁자가 하방시장에서 존속하는데 필요한 이윤을 없애거나 감소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격(이윤)압착 문제에서 '너무 높은 가격 또는 너무 낮은 가격'이란 관념은 미국과 유럽에서 소송 목적에서 주장된 것일 뿐, 높은 또는 낮은 가격의 기준에 관한 엄밀한 경제이론이나 객관적 판단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윤압착 문제는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처럼 상방시장에서 거래의무 존부와 하방시장에서 약탈적 가격인하 문제로 나누어 접근해야 가격경쟁이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오판되는 위험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다. 연방법무부도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link Line 사건 정부 의견서에서 종전 Aloca 판결이 이윤압착의 근거로 제시했던 공정가격과 생존이윤 개념은 너무 모호하고 측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장경쟁과 소비자후생과 관련성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EU법원은 미국과 달리 이윤압착을 독자적인 시장지배력 남용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경쟁제한 오판 위험성을 지적하는 유럽 학자들도 있다. 둘째,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팔면 팔수록 손실이 커지는 가격으로 계속 판매하고 있다면, 외견상 가격인하 경쟁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경쟁자를 퇴출시키고 신규진입을 봉쇄하여 관련시장을 독점한 뒤 경쟁이 제한된 상태에서 추후에 가격을 대폭 인상시켜 독점이익을 얻기 위한 약탈적 전략의 일환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를 약탈적 가격인하 시나리오라고 하는데, '손실을 초래하는 가격'을 일반적으로 '비용보다 낮은 가격'이라고 하므로,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독점규제법에는 배타조건부거래처럼 동일한 행위 유형이 제23조의 불공정거래행위와 제3조의2 제1항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모두 규정된 경우도 있으므로, '비용보다 낮은 가격'이 불공정거래행위의 하위 유형인 부당염매 조항(독점규제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 관련 [별표 1의2] 제3호 (가) 목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통상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3. 부당성(경쟁제한성) 판단기준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인한 중장기적 경쟁제한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경쟁제한성 증명 책임을 부담하는 공정위는 애당초 중장기적 경쟁제한효과를 증명한 바 없다. 이 사건 처분 의결서에서 공정위는 "단기적으로는 피심인의 저가 판매행위로 인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됨에 따라 가격인상, 서비스 품질 저하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 우려된다"거나 "피심인은 이 사건 행위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사업자가 배제된 이후에 기업메시징서비스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이 사건 행위 과정에서 직면했던 손실을 보전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쟁제한성을 막연히 주장했을 뿐이다.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중장기적 가격상승 등 경쟁제한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먼저 원고들이 약탈적 가격인하 담합으로 부가통신사업자를 모두를 퇴출시키고, 카카오는 물론이고 에스케이텔레콤 등과 같은 잠재적 경쟁자의 신규진입을 완전히 봉쇄한 다음에, 가격인상 담합까지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나리오의 성공 가능성은 공동행위에서도 극히 희박하고 단독행위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4. 결론 대상판결의 독창적 이윤압착론은 법리적 혼란만 초래하고 있고, 수직통합사업자의 가격우산 아래 하방시장 경쟁자들이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여하튼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업메시징서비스 시장에서 특히 카카오와 이동통신사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 사건 가격설정으로 경쟁이 제한되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가격설정은 적법한 가격경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진열 교수(부산대 로스쿨)
공정거래
시장지배
독점
기업메시징서비스
주진열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2-06-20
공정거래
행정사건
-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9두59639 판결 -
공정거래법위반행위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 처분시효 기산점
1. 사안의 개요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7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기간 중 9개 일본 콘덴서 제조·판매사들이 한국과 다른 나라에 공급하는 알루미늄·탄탈 콘덴서의 공급가격을 공동으로 인상·유지하기로 합의한 행위를 적발하여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하였다. 이 회사들 중 A사는 공정위의 위 각 처분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담합회사 중 B사는 부당한 공동행위가 종료하기 전인 2013년 10월 4일 자진신고를 하였고 공정위는 자진신고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2018월 11일 30일에 위 처분을 하였다. 한편 위 처분은 공동행위 종료일(2014년 1월경)로부터 5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2. 원심판결의 요지 2012년 3월 21일 법률 제11406호 개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은 처분시한에 관해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한 경우에는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조사를 개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7년"으로 규정하였다{참고로 2020. 5. 19. 법률 제17290호(2021. 5. 20. 시행)로 일부개정된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해당 위반행위의 종료일부터 7년이 지난 경우에는 이 법에 따른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제5항은 "제4항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난 경우 이 법에 따른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 1.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한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사개시일부터 5년, 2.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하지 아니한 경우 해당 위반행위의 종료일부터 7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는 "B사가 자진신고를 한 2013년 10월 4일 이 사건에 관한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보고 공정위의 위 처분은 이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처분시한)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하지도 않았는데도 처분시한이 진행하여 경과한다는 것은 처분시한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 "처분시한 규정의 입법연혁과 개정취지, 처분시한 제도의 본질 등을 종합하면 처분시한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한 때에 진행하기 시작하고 이는 위반행위 종료 전에 피고의 조사개시가 있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봄이 타당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처분시한은 조사개시일이 아닌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므로 공정위의 위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3. 상고이유의 요지 원고는 "원심판결은 공정거래법 제49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의 각 문언과 달리 위반행위 종료 전에 조사개시가 있는 경우의 처분시한을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5년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적법한 근거 없이 새로운 법률을 창안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부당하다"는 이유로 상고를 제기하였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에서 정한 처분시효 기간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척기간을 의미한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7두68103 판결 참조). 이와 같은 처분시효 제도의 도입 취지 및 법적 성격에 비추어 보면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에서 정한 처분시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종료되어야 비로소 진행하기 시작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경우의 처분시효를 정한 제49조 제4항 제1호가 적용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 조사를 개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조사 개시일을 기준으로 종료되지 아니하고 그 후에도 계속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조사개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행해진 법 위반행위 부분은 아직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조사의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에 조사개시 시점 이후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 전체에 대해서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 등 제재처분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처분시효의 취지 및 성질에 비추어 보아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을 처분시효의 기산점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와 같이 조사개시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다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그 위반행위가 종료된 이후에야 공정거래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처분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확정지을 수 있는 사실관계가 갖추어져 비로소 객관적인 조사의 대상에 포함되고 제재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위반행위에 대하여 조사를 개시하여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가 적용되는 경우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한 시점 전후에 걸쳐 계속된 부당한 공동행위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경우에는 '부당한 공동행위의 종료일'을 처분시효의 기산점인 '조사 개시일'로 보아야 하고 그 처분시효의 기간은 위 조항에서 정한 5년이 된다. 5. 판결에 대한 검토 본 판결은 '처분시한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와 제2호의 관계가 문제된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조사개시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다가 조사개시 시점 이후에 종료된 부당한 공동행위'의 처분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 볼 수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가 종료하기 전이라도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데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중단되지 아니한 채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자 중 1인의 자진신고가 있는 경우에 그러하다. 그런데 이 경우 공정거래법 제49조 제5항 제1호의 문언대로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으로 처분시한을 계산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다툼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이라는 문언만 강조하여 공정위의 조사개시 이후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않았더라도 처분시한 기산점을 조사개시일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① 처분시효는 위반행위가 종료한 때에 비로소 진행하기 시작하고 그 위반행위 종료 전에 공정위의 조사개시가 있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위반행위의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에도 문언 그대로 '조사개시일'을 처분시효 기산점으로 보아야 한다면 조사개시 이후의 위반행위는 아직 조사가 개시되지 아니한 것이므로 조사개시 이후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처분시효가 단축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2020년 10월 1일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2020년 11월 30일까지 계속 유지된 경우 2020년 11월 1일 시점의 위반행위는 2020 년 10월 1일에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만약 2020년 10월 1일부터 처분시한이 진행된다고 하면 2020년 11월 1일 시점의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시효는 사실상 단축되는 결과에 이르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대법원 판결도 이러한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는 적어도 2020년 11월 30일 위반행위가 종료되어서야 비로소 조사가 개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위 규정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② 부당 공동행위자 중 1인의 자진신고가 공동행위 종료 전에 있는 경우 처분시효 기산점을 자진신고일로 보아야 한다면 자진신고를 하지 아니한 다른 공동행위자들에 대한 처분시효는 부당하게 단축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도 "(공동행위자 중 1인인) B사가 자진신고 이후 자료를 제출한 2013년 10월 21일을 피고의 조사개시일로 보더라도 그 당시에는 원고의 공동행위가 계속 중이었으므로 그 처분시효가 진행될 여지가 없었다"는 원심판결을 지지하였다. 원고는 '원심판결의 해석이 적법한 근거 없이 새로운 법률을 창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는데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법률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먼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아니한 우연한 사정 때문에 조사개시일을 '위반행위 종료일'로 해석한 것뿐이므로 이는 입법취지를 고려한 논리적 법률해석일 뿐이다. 즉 '조사개시일부터 5년'이라는 규정을 판결에 의해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5년'으로 입법 없이 개정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종료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조리상 또는 논리상 '위반행위가 종료된 때에 조사가 개시된 것'으로 해석한 것 뿐이다. 이러한 제반사정을 종합해 볼 때 본 판례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특히 부당한 공동행위 종료 전에 조사가 개시된 경우 '조사개시일 이후의 위반행위에 대한 처분시효'에 관하여 중요한 판단기준을 정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부개정된 공정거래법에 의할 경우에도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위 판례가 계속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공정거래
담합
처분시효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2021-03-29
공정거래
부동산·건축
-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7다276679 판결 -
장기계속공사에 관련된 불법행위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1. 사실관계 원고(국가)의 요청에 따라 조달청장이 공고한 장기계속공사에 관한 입찰에서 甲회사 공동수급체는 2009년 12월 중순경 乙회사 등과 담합한 바에 따라 입찰에 참가하여 2010년 2월 24일 낙찰자로 선정되었다. 이에 甲회사 공동수급체는 2010년 3월 24일 원고와 위 공사에 대하여 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에 따른 장기계속공사계약의 1차분 차수별 계약을 체결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제1차 계약') 그 계약서에 1차분 차수별 계약의 공사대금과 공사준공일 외에도 총 공사금액과 총 공사준공일을 부기하였고 그 후 2012년 1월 13일까지 차수별로 제2차 내지 제4차 계약을 체결하여 결국 총 공사금액은 당초보다 50억 원 정도가 증액된 1976억9650만 원으로 변경되었다. 원고는 2010년 3월 30일부터 2012년 12월 29일까지 피고 甲회사에게 공사대금의 대부분을 지급하였고 피고 甲회사는 2014년 7월경 이 사건 공사를 완성하였다. 그 후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12월 12일 甲회사 공동수급체와 乙회사 등의 담합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 제8호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甲회사와 乙회사 등에게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하였다. 2. 소송의 경과 원고는 위 시정명령 등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2015년 11월 13일 甲회사 등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피고 甲회사 등은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이 총괄계약 및 제1차 계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국가재정법(제96조 제1항)이 정한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지나 소멸하였다고 항변하였고 1심 법원 및 원심 법원은 위와 같은 소멸시효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 사건 제1차 계약시에 이 사건 공사 전체에 관한 총괄계약과 1차분 차수별 계약이 동시에 성립하였고 위 각 계약을 통하여 피고 甲회사의 총 공사금액에 대한 권리의무가 확정됨으로써 그 때 총 공사금액 전부에 관한 손해가 원고에게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본 것이다. 이에 원고가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국가계약법상 장기계속공사계약은 우선 1차 년도의 제1차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총 공사금액과 총 공사기간에 대한 합의(총괄계약)를 부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위 총괄계약은 그 자체로 총 공사금액이나 총 공사기간에 대한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업의 규모나 공사금액·기간 등에 관하여 잠정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으로서 각 연차별 계약의 체결에 따라 연동된다. 따라서 총괄계약의 효력은 계약상대방의 결정, 계약이행의사의 확정, 계약단가 등에만 미칠 뿐이고 계약상대방이 이행할 급부의 구체적인 내용, 계약상대방에게 지급할 공사대금의 범위, 계약의 이행기간 등은 모두 연차별 계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甲회사 공동수급체가 국가와 총 공사금액 및 총 공사준공일을 부기하여 이 사건 공사의 제1차 계약을 체결과 동시에 총괄계약을 체결한 사정만으로는 원고가 甲회사에 지급할 총 공사대금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사정만으로 원고의 甲회사 등에 대한 손해배상채권 전부의 소멸시효가 위 제1차 계약의 체결시부터 진행하여 모두 완성되었다고 본 원심판단에는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총괄계약과 차수별 계약의 관계 및 총괄계약의 효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 잘못이 있다. 4. 평석 가. 장기계속공사계약에서 총괄계약의 효력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장기계속공사계약과 관련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에 적용하였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장기계속공사계약에 있어서 총 공사기간의 연장과 관련된 간접비가 문제되었는데 총괄계약의 총 공사금액 및 총 공사기간은 각 차수별 계약을 체결하는 잠정적 기준에 불과하고 차수별 계약에 의하여 위 공사금액 등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확정된다고 보아서 총 공사기간이 연장되었더라도 공기연장비용이 이미 차수별 계약금액에 포함되었고 그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계약금액의 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 간접비청구를 배척하였다. 대상판결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라 구체적인 손해액의 확정이 차수별 계약을 통하여 확정된다는 점을 들어 각 차수별 계약시점을 위 손해배상청구권에 있어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나. 장기계속공사에서 총괄계약의 효력과 소멸시효의 관계 (1) 총괄계약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지 여부는 장기계속공사계약과 관련된 불법행위에 있어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논의에도 영향을 준다. 필자는 위 총괄계약 중 공사기간이나 공사대금에 대한 내용이 장차 차수별 계약에 의하여 확정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잠정적인 기준에 불과하다는 위 전원합의체판결의 다수의견 논리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소멸시효에 관련한 부분만 보면 위 논리를 따름으로써 대상판결의 판시와 같은 결론에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음을 수긍한다. 제1차 계약과 동시에 총괄계약이 체결된 사정만으로 甲회사 등에게 지급할 총 공사대금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면 곧바로 그때 甲회사 등의 총 공사금액에 대한 권리의무가 확정되었다거나 원고의 손해가 이 시점에서 현실화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손해의 현실화는 구간별로 공사금액이 정해지거나 또는 변경된 각 차수별 계약의 체결시가 된다. (2)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기 위하여 반드시 위 전원합의체 판결 다수의견의 논리에 의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총괄계약에 의하여 당사자들은 총 공사기간과 총 공사대금을 기준으로 대금지급의무 및 공사완성의무를 확정적으로 부담하고 대상판결의 사안에서와 같이 개별 차수별 계약에 따라 공사대금이 증액되었다면 그에 따라 손해도 차수별 계약에 의하여 변경·확정되어 그 때부터 위 증액된 부분과 관련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다. 계속적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법리의 유추가능성 그런데 혹시 차수별 계약에 의하여 종래 총괄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의 액수가 변경된 경우에 마지막 차수별 계약의 시점에서 공사대금 전체와 관련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비로소 진행한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을까?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계속적 불법행위에 있어서 소멸시효에 관한 논의이다. 대상 판결의 사안은 가해행위 자체가 공사도급계약의 체결로 종결되고 손해가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손해의 구체적인 확정 및 현실화 시점이 문제될 뿐이므로 이를 계속적 불법행위로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 손해의 현실화시점이 결국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된다는 점에서 보면 계속적 불법행위에 있어서 전부진행설·개별진행설·분류설과 같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계속적 불법행위의 소멸시효와 관련하여 '진행 중의 손해에 대하여는 그 진행이 정지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는 전부진행설의 해석론이나 이를 입법화한 유럽연합의 Directive 2014/104/EU에 따른 독일의 경쟁제한방지법의 규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선희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공정거래
담합
장기계속공사
국가계약
이선희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2020-09-28
기업법무
민사일반
- 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7다6108 판결 -
진술보장 조항의 본질은 무엇인가?
1. 사실관계와 소송경과 ○○오일뱅크(매수인)는 1999년 4월 2일 △△에너지(대상기업)의 주주들(매도인들)로부터 대상기업의 주식들을 양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위 계약 체결 당시 매도인들은 '대상기업이 일체의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으로 '진술보장'을 했다. 그런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된 군납유류 구매입찰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상기업이 매수인을 포함한 다른 정유사들과 함께 담합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법위반사실공표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로 인해 대상기업은 벌금과 과징금, 기타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지출하게 되고, 이에 매수인은 매도인들의 위와 같은 진술보장에도 불구하고 대상기업이 담합행위에 가담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었다며, 매도인들의 진술보장 위반으로 인해 대상기업이 입게 된 손해의 배상을 청구했다. 1심에서는 진술보장 위반사실(담합 사실)에 대한 매수인의 악의와 상관없이 매도인의 책임이 성립한다고 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악의의 매수인이 진술보장 위반사실을 계약협상시 반영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계약 이후 뒤늦게 매도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며 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의 적용은 사적 자치의 원칙 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진술보장 조항의 위험분배 기능에 비춰 볼 때 악의의 매수인도 진술보장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위 환송판결 이후 손해배상의 구체적인 범위를 둘러싸고 다시 상고가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7다6108 판결(대상판결)에서는 '기업인수계약에서 진술보장 조항을 위반한 것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서 일종의 채무불이행책임에 해당하며, 진술보장 조항과 손해배상 조항이 함께 있다면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고, 진술보장 조항만이 존재하고 그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조항이 따로 없다면 민법 제390조를 비롯한 관련 규정들에 따라 채무불이행책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 진술보장의 의의 및 쟁점 진술보장은 '계약의 일방당사자로 하여금 계약의 법적 유효성과 자신에 대한 일정한 사항 내지 정보를 진술하게 하고 그 내용의 진실성을 보장토록 하는 조항'을 말한다. 진술보장과 관련해서는 샌드배깅(sandbagging)이 문제되고 있는데, 이는 '매수인이 M&A 과정에서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적하지 아니한 채 거래를 종결하고는 그 이후에 매도인을 상대로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묻는 것'을 이른다. 19세기 미국 뉴욕의 갱들이 언뜻 보기에 해로울 것 같지 않은 샌드백을 살상무기로 사용한 데서 비롯된 용어다. 이러한 샌드배깅에 대해서는, 매수인의 악의·중과실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인정하는 Pro-sandbagging rule과, 매수인의 악의·중과실이 있는 경우 매도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Anti-sandbagging rule로 그 입장이 갈린다. 3. 진술보장에 관한 국내외 논의 미국에서는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불법행위법에 기한 책임으로 보기도 하고, 계약법에 기한 책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전자는 진술보장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를 중시하는 것으로서 Anti-sandbagging rule과, 후자는 계약당사자 간의 위험분배를 중시하는 입장으로서 Pro-sandbagging rule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샌드배깅에 대해서는 주마다 입장이 다른데, 델라웨어주에서는 Pro-sandbagging rule을 원칙으로 삼고 있음에 반해, 캘리포니아주에서는 Anti-sandbagging rule을 따르고 있다. 또, 뉴욕주에서는 원칙적으로 Pro-sandbagging rule을 지지하나, 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명시적으로 유보해 두지 아니한 경우에는 매수인이 그의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다(CBS Inc. v. Ziff-Davis Publishing Co. 판결; Gali v. Metz 판결). 일본에서는 진술보장 위반책임의 법적 성격에 관해 하자담보책임설, 채무불이행책임설, 손해담보특약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일본의 하급심 판결들 중에는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정보제공의무 내지 설명의무위반에 기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례들도 존재한다(東京地裁 平成19. 7. 26; 東京地裁 平成23. 4. 19). 그리고 샌드배깅에 대한 대표적인 판결 사례로서 아루코 사건(東京地裁 平成18. 1. 17)과 나스야 사건(東京地裁 平成27. 9. 2)에서는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매수인의 선의·무중과실'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진술보장의 문제를 법상 하자담보책임과 이에 대한 손해담보의 문제로 보아 2002년 개정 독일민법(BGB) 제442조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악의의 매수인에 대해서는 매도인이 하자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매수인의 중과실이 있는 경우 역시 매도인의 책임이 배제된다. 다만, 매수인의 중과실이 있더라도 매도인이 손해담보의 인수를 하였거나 하자를 고의적으로 감춘 경우에는 매도인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진술보장 위반책임의 본질에 관해, 약정하자담보책임설, 채무불이행책임설, 손해담보계약설 등이 주장되어 왔는데, 다만 샌드배깅의 문제는 법적 본질과의 논리적 연관성 관점에서보다는 신의칙 내지 공평의 이념 혹은 진술보장의 위험분배 기능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샌드배깅에 있어서 매도인의 진술보장 위반책임은, (i) 매수인의 악의·과실과 무관하게 성립한다는 견해, (ii) 매수인의 악의·중과실의 경우에 부정된다는 견해, (iii) 매매가격 반영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 등으로 갈리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진술보장 위반책임을 채무불이행책임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악의의 매수인도 진술보장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평석 및 결론 (1) 진술보장 위반책임의 본질 M&A계약도 하자담보책임으로 규율하는 독일민법의 태도나 매매된 기업의 성상 중 진술보장이 정한 수준에 미흡한 부분은 당장 가액조정되어야 할 흠이라고 보는 실무계의 법감정을 고려한다면 진술보장 위반 사실을 하나의 하자로 관념하는 것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진술보장 조항은 M&A계약 뿐만 아니라 사채인수, 대출 등 금융계약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금융계약에서는 매매대상 자체가 존재한다 보기 어렵고 그 진술보장의 내용도 계약대상의 성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채무자의 변제자력, 신용 등 차주의 주관적 사정에 관한 것으로서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하자의 개념을 상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하자담보책임설은 M&A계약에 국한해서는 가장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진술보장 조항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견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넓은 관점에서 진술보장 조항은 하자담보가 아니라 계약상 의무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바, M&A계약에서는 적정한 매수가격 산정을 위한 매도인의 정보제공의무를, 금융계약에서는 채무자의 변제자력 파악 및 안정적인 자금회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차주의 정보제공의무를 정한 것이라 볼 수 있고, 이러한 정보제공의무라는 부수적 의무를 위반할 때 계약상 채무불이행책임을 구성한다고 해석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대법원이 진술보장 제도에 관한 국내법상의 독자적인 법리를 구축해 진술보장과 우리법 체계를 가장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채무불이행책임설을 채택하고 이에 관한 계약해석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향후 진술보장 조항의 해석 및 운용에 있어 그 의의가 매우 크다. (2) 샌드배깅의 문제 대법원은 Pro-sandbagging rule을 지지하는 근거로서 진술보장 조항의 위험분배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진술보장의 원래적 기능은 매도인의 실사를 보충하는 데 있는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정보제공의 기능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게다가 진술보장의 위험분배 기능이라는 것도, 당사자 간에 당장 확정할 수 없는 잠재적 위험 내지 손실을 성실한 협상 하에 지혜롭게 대비해 나가는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지, 매수인이 악의인 사실을 묵비하여 분쟁상황을 야기시키는 경우 이를 정당화하는 당위법칙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샌드배깅의 문제에 대하여 진술보장의 위험분배 기능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현재 대법원의 접근 방식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샌드배깅 문제는 진술보장 조항의 위험분배 기능보다는 정보제공 기능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은 어디까지나 정보제공 관계의 기초가 되는 상호신뢰의 관점에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매도인에 대한 비난가능성과 잘못된 정보임을 알고도 이를 악용 또는 방임한 매수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서로 비교해 비난가능성이 더 큰 당사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샌드배깅에 대해서는 Anti-sandbagging rule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매도인에게 책임을 지우지 아니하되, 매수인에 대한 비난가능성보다 매도인에 대한 그것이 더 클 경우, 즉 매도인이 고의적으로 진술보장 위반사실을 은폐한 경우이거나 매수인이 악의에까지는 이르지 않고 (중)과실에 그치는 경우에는 종래의 불법성 비교이론과 유사한 맥락에서 매도인의 책임을 긍정해야 할 것이다. 임철현 변호사 (두산그룹 법무실 부장)
주식양수도계약
손해배상청구
기업인수
한화에너지
현대오일뱅크
임철현 변호사 (두산그룹 법무실 부장)
2019-11-07
유지현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의료법 제17조 제1항 '직접 진찰'의 의미
I.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1. 사실관계 피고인 A는 약사이고, 피고인 B는 산부인과 전문의이다. 2006년 1월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의 기간 중 피고인 B는 자신에게 과거에 1회 이상 진료를 받고 푸링 정제약 등 '살 빼는 약'을 처방받은 환자를 전화로 진료한 다음 처방전을 발행하고 피고인 A에게 전달하면, 피고인 A는 처방전에 따라 조제한 약을 환자들에게 배송하였다. 피고인들은 처방전 알선의 대가로 처방전 발급비용 상당과 수납 업무상의 편익 및 노무를 제공하는 담합행위를 하였고(약사법 제24조 제2항 제2호), 피고인 B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아니하고 처방전을 작성하여 교부하였다(의료법 제17조 제1항)는 이유로 2008년 기소되었다. 2. 하급심의 판단 제1심은 피고인들의 담합행위와 피고인 B가 직접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작성하여 교부했다는 부분 모두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편, 제2심은 피고인들의 담합행위 부분은 무죄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전화 진료는 진단방법 중 '문진'만이 가능하고 다른 진단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의사의 진료의무'가 소홀해질 우려가 크고, 약물의 오남용의 우려도 커지는 점, 의료법 제34조가 직접 진찰과 유사한 수준의 진찰을 담보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추어진 경우 예외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직접 진찰'에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통신매체'만에 의한 진찰은 포함될 수 없어 피고인 B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II. 대법원 판결의 요지 2007. 4. 11. 법률 제8366호로 개정되기 전의 의료법 제18조 제1항이 '자신이 진찰한 의사'만이 처방전 등을 발급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처방전 등의 발급주체를 제한한 규정이지 진찰방식의 한계나 범위를 규정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고, '자신이' 진찰하였다는 문언을 두고 그 중 대면진찰을 한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등 진찰의 내용이나 진찰 방법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2007. 4. 11. 법률 제8366호 전부 개정된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직접 진찰한 의사'의 의미 역시 의료법 제17조 제1항 단서, 동조 제2, 3, 4항, 동법 제34조 제3항 및 개정 전 조항과의 법률체계적 연관성에 따라 해석해 볼 때 개정 전 의료법의 경우와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 원심판결은 개정 전후의 이 사건 조항을 구분하지도 않았고, 죄형법정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형벌법규의 해석을 그르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으므로 유죄부분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III. 평석 1.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직접 진찰'의 의미에 관한 종래의 판례 A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甲이 乙의 B병원에서 진료한 후 乙의 이름으로 원외처방전을 발행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 등이 자신의 이름으로 처방전을 작성하여 교부하여야 하고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처방전을 작성하여 교부하는 것은 이러한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두8959판결). 또한 의사가 진단서에 상해일로 기재된 날에는 환자를 진찰한 바 없고 진단서 작성일자에 그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환자가 말하는 상해년월일과 그 상해년월일을 기준으로 한 향후치료기간을 기재한 진단서를 교부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구 의료법 제18조 제1항(1994. 1. 7. 법률 제47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현행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진단서 등은 정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직접 진찰한 의사 등만이 이를 교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판시하며 위 사실관계의 경우 구 의료법 제18조 제1항의 규정에 위배된 의사 자신이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를 교부한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6도1013판결). 위 판례들은 모두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진단서·처방전 등의 발급 주체를 규정한다는 점은 판시하고 있으나 진찰의 방법 내지 태양을 직접적으로 문제된 사안이 아니어서 이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상판결은 '직접 진찰'의 의미와 관련하여 그 진찰의 방법 내지 태양에 관해서까지 판단을 내렸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직접 진찰'의 의미에 관한 견해 대립 대상판결과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대법원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대상 대법원 판결의 원심, 대상 대법원 판결,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 및 반대의견을 종합해 보면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가.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의료인의 대면진료 의무와 진단서 등의 발급주체 양자를 모두 규율하고 있다는 견해 이는 대상판결의 원심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취한 의견으로써 대면진료를 하지 않은 채 전화 진찰만을 한 후 처방전을 발급하면 '직접 진찰'에 해당하지 않아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이 된다는 견해이다. 기존에 보건복지부도 유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문진을 실시하고 처방하는 것은 법위반에 해당한다는 같은 견해를 취하였다. 이 견해는 ① '직접'의 사전적 의미는 중간에 제3자나 매개물이 없이 바로 연결되는 관계를 의미하므로 '직접 진찰한'은 '대면하여 진료한'을 의미하고, ② 전화 진찰은 문진 이외에는 다른 진단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의사의 진료의무가 소홀해질 우려가 크고, ③ 전화 진찰을 할 경우 상대방 확인이 어려워 약물의 오남용의 우려가 커지며, ④ 의료법 제34조는 의료인 상호간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좁은 의미의 원격의료'를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다가 직접 진찰과 유사한 진찰을 담보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추어진 경우 예외적으로만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논거로 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의료법이 2007. 4. 11. 법률 제8366호로 개정되면서 종전의 '자신이 진찰한'을 '직접 진찰한'으로 대체한 것은 대면진료가 아닌 형태의 진료를 명백히 금지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헌법재판소 2012. 3. 29. 자 2010헌바83결정). 나.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진단서 등의 발급주체만을 한정한 것이라는 견해 이는 대상 대법원 판결 및 헌법재판소 판결의 반대의견의 입장으로써 전화 진찰 후 처방전을 발급한 것은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① 의료법 제17조 제1항 단서 및, 동조 제2, 3, 4항 규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보면 '직접' 진찰은 '자신이' 진찰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②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직접 진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하여 동법 제34조 제3항은 '직접 대면 진찰'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스스로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3. 검토의견: 의료법 개정의 필요성 대상판결이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하여 법문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첨단 기술의 발전 등으로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설시한 바와 같이 전화 진찰을 제한 없이 허용한다면, 다른 진찰이나 검사 등을 생략한 채 간단한 문진만으로 장기간 전문의약품의 처방이 가능해지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살빼는 약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서 심혈관계나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이므로 처방 및 복용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경우 의사들에게 전화 진찰을 통한 처방전 발급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고,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은 만성질환의 특성상 의사들은 환자들의 이러한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의료법이 의료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를 제한하면서(제33조 제1항), 원격의료에 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면서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원격진료만을 허용하고 있으며(제34조), 나아가 의료법상 의사는 환자에게 요양방법이나 그 밖에 건강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지도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점(제24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상판결은 의료법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국민건강의 보호 및 증진에 관해서는 충분히 그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물론 대법원이 전화 진찰을 허용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운용을 통해 비대면 진료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대법원은 2013. 4. 26. 선고 2011도 10797 판결에서 '전화 진찰을 요양급여 대상으로 돼 있던 내원 진찰인 것으로 하여 비용을 청구한 것은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결국, 전화 또는 다른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원격의료를 할 수 있는 경우를 명확히 규정하는 의료법의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2013. 5. 1. 대통령의 주재 하에 개최된 제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원격의료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책의지를 표명하였는바, 대상판결과 관련하여 귀추가 주목되는 사항이 아닐 수 없다.
2013-05-20
이선희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손해전가 항변
Ⅰ. 서설 대상판결은 군납유류 입찰담합사건의 판결(대법원 2011. 7. 28. 선고 2010다18850 판결)에 비하면 담합의 내용이나 손해액 산정방식이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쟁점을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손해전가항변에 한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Ⅱ.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판결의 요지 1. 사건의 내용 원고는 피고 A와 피고 B로부터 밀가루를 매입하여 제빵·제과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인바, 공정거래위원회는 피고들을 포함한 8개 국내 제분회사들이 밀가루의 국내 생산량을 제한하고 가격을 인상하며 밀가루의 실수요업체에 대한 장려금을 공동으로 폐지 또는 축소하기로 하는 거래조건을 합의하는 등 부당한 공동행위(이하 '담합'이라 약칭한다)를 하였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내린 바 있다. 원고는, 피고들의 생산량제한 및 가격의 담합으로 인하여 원고를 비롯한 밀가루 수요업체들이 부당하게 높게 형성된 공급가격에 밀가루를 매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피고들에 대한 각 기간별·항목별 밀가루가격 중 피고들의 담합행위로 인하여 인상된 금액 부분에 원고가 피고들로부터 매입한 각 기간별·항목별 밀가루수량을 곱한 금액을 피고들에게 각 손해액으로 지급할 것을 청구하였다. 2.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판결은 감정인의 감정결과를 채용하여, 담합에 의한 밀가루 가격상승으로 인하여 담합기간 동안 원고가 피고들에게 경쟁가격을 초과한 가격을 지급함으로써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액을 산정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하여 인상된 가격으로 밀가루를 구매한 원고가 밀가루를 원료로 생산하여 판매하는 제품에 관한 가격 인상을 통하여 인상된 밀가루 가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하였다는 이유로 피고들이 배상할 손해액에서 위와 같이 전가된 손해액 부분을 공제할 것을 주장한 피고들의 이른바 '손해전가의 항변'을 배척하면서도, 제품 가격 인상에 의한 손해 전가에 관한 사정을 참작하여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먼저, "담합에 의하여 가격이 인상된 재화 등을 매수한 매수인이 다시 이를 제3자인 수요자에게 판매하거나 그 재화 등을 원료 등으로 사용·가공하여 생산된 제품을 수요자에게 판매한 경우에, 재화 등의 가격 인상 후 수요자에게 판매하는 재화 등 또는 위 제품(이하 이를 모두 포함하여 '제품 등'이라 한다)의 가격이 인상되었다고 하더라도, 재화 등의 가격 인상을 자동적으로 제품 등의 가격에 반영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는 경우 등과 같이 재화 등의 가격 인상이 제품 등의 판매 가격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품 등의 가격은 매수인이 당시의 제품 등에 관한 시장 상황, 다른 원료나 인건비 등의 변화, 가격 인상으로 인한 판매 감소 가능성, 매수인의 영업상황 및 고객 보호 관련 영업상의 신인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할 것이므로, 재화 등의 가격 인상과 제품 등의 가격 인상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거나 제품 등의 인상된 가격 폭이 재화 등의 가격 인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제품 등의 가격 인상은 제품 등의 수요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여 전체적으로 매출액 또는 영업이익의 감소가 초래될 수 있고, 이 역시 위법한 담합으로 인한 매수인의 손해라 할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아니하고 제품 등의 가격 인상에 의하여 매수인의 손해가 바로 감소되거나 회복되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쉽게 추정하거나 단정하기도 부족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와 같이 제품 등의 가격 인상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손해가 감소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직접적인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을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에 참작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상 타당할 것"이라고 하고 같은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한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Ⅲ. 평석 1. 손해전가항변의 의미 손해전가의 항변(passing on defense)이란, 직접구매자가 담합으로 인하여 초과가격(overcharge)을 지불함으로써 자신이 입게 된 손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신의 하위단계 구매자인 간접구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구매자의 손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항변을 말한다. 손해전가의 항변이 받아들여지면 원고로서는 초과가격지불로 인한 손해를 주장함에 제한을 받게 되고 결국 피고는 원고가 간접구매자에게 전가한 부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원고로부터 손해를 전가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간접구매자가 다시 법 위반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의 Hanover Shoe, Inc. v. United Shoe Machinery Corp., 392 U.S. 481(1968) 판결로 위와 같은 손해전가항변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간접구매자가 제기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하여는 Illinois Brick v. State of Illinois, 431 U.S. 720(1977) 판결 이래 원고적격을 결한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Hanover Shoe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예를 들어 초과가격을 지불한 구매자가 이미 cost plus 계약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같이 그가 손해를 입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 쉬워서 전가항변을 허용하여야 할 경우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Illinois Brick 판결에서도 위 원칙에 대한 예외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손해전가의 항변 및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간접구매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있으나 대법원이 판시를 낸 것은 이 사건이 최초이다. 미국과 같은 특수한 원고적격이론을 가지지 않은 우리나라나 독일의 경우에 위와 같은 손해전가의 항변을 소송법적으로 분석하면 1)손해발생에 대한 부인과 2)손해액 산정에 있어서 공제 또는 책임제한의 항변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2. 손해의 전가와 손해발생의 부인 독일에서는 제품이나 용역에 대하여 전매가 이루어져 손해가 전가된 경우에 손해발생자체가 부인되는지 여부가 논의된 바 있다. 구 경쟁제한금지법이 적용된 비타민 국제카르텔 사건에서 만하임 지방법원은 이 경우에 직접구매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결과가 된다는 견해를 취하였다. 이에 반하여, 직접 구매자의 손해는 손해를 근거지우는 행위(인상된 카르텔 가격으로 판매한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카르텔 판매가격과 가정적 경쟁판매가격의 차이를 말하고, 사후적으로 직접 구매자가 전매한 사정은 위 손해발생과 무관하다는 견해(Kohler 교수의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결국 2005년에 개정된 경쟁제한금지법은 직접구매자가 손해를 전가한 경우에도 직접 구매자의 손해가 배제되지 않는다고 규정함으로써 후자의 견해를 취하여 이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다. 이 사건 대상 판결에서 우리 대법원은 이 점을 명시적으로 판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래 손익상계에 대한 판단은 위 개정된 경쟁제한금지법과 같은 태도를 전제로 한 것으로 평가되고,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3. 손해의 전가와 책임제한 독일에서는 이 논점에 대하여 i) 이론적으로 손해와 공제될 이익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손익상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견해와 ii) 이론적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나, 법정책적 고려로서 손익상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로 나뉘지만, 어느 견해에 의하든 손익상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에는, 손해전가항변을 민법상 손익상계의 항변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여 전가한 금액을 공제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으나, 필자는 이를 손익상계항변과 같은 것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손해의 공평부담의 견지에서 손해액 산정의 참작사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선희, '공정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 -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중심으로-', 민사판례연구 31권, 박영사, 2009, 936-937면 등). 손익상계는 불법행위에 의하여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것과 동시에 이익이 생긴 경우에 그 이익을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공제하는 원칙을 말하며, 공제대상이 되는 이익은 불법행위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는 이득이라고 하는 통설 및 판례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직접구매자가 판매가격의 인상을 통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전가한 것이 손익상계에서 말하는 당해 행위로 인한 '이익'이라고 볼 수 없고, 위 손해의 전가는 위반행위와 동시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와는 별도로 직접구매자가 제3자와 체결한 매매계약에 의하여 취득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발생과 동시에 채권자에게 발생하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하기도 어려우므로 이를 민법상 손익상계의 항변과 같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점에서 손해전가항변을 손익상계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책임제한의 참작사유로 파악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의 태도는 타당하다. Ⅳ. 결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손해전가항변에 대하여 최초로 판시하면서, 이를 손해의 발생이나 손익상계에 대한 문제로 보지 않고 책임제한사유로서 참작함을 밝혔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2013-01-31
권형필 변호사(법무법인 소명)
유치권 그리고 신의칙
1. 사실관계 대법원 2011. 12. 선고 2011다 84298 사건 채무자 甲 주식회사 소유의 건물에 관하여 乙 은행 명의의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는데, 2순위 근저당권자인 丙 주식회사가 甲 회사와 건물 일부에 관하여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건물 일부를 점유하고 있던 중 乙 은행의 신청에 의하여 개시된 경매절차에서 丙이 유치권 신고를 한 사안에서 丙의 유치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 서울고등법원 2004. 1. 15. 선고 2002나 5475 판결 채무자는 이 사건 공사 당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유치권자)로 하여금 무리하게 인테리어 공사를 하도록 도급을 주어 공사대금을 발생시켰고, 결국 피고는 위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해 건물을 점유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한 사안. 2. 서설 위 사건들의 공통점은 유치권자로서 유치권의 형식상 성립요건은 모두 갖추었으나 법원이 민법 제2조 신의칙을 원용하여 낙찰자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다. 이하에서 법원은 어떠한 이유로 민법 일반조항에 해당하는 신의칙 법리까지 동원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는지 살펴본다. 3. 유치권 제도의 취지 유치권은 공평의 원칙에 기하여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고자 발생한 제도이다. 즉 타인의 물건에 용역 등을 투여하여 가치를 상승시킨 자가 채권을 변제받기 전에 목적 물건의 점유를 이전해야 한다면 용역을 투여한 자 입장에서는 추심이 곤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반면 물건의 소유자는 상승된 가치만큼 부당이득 할 수 있는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상사 유치권은 민법의 유치권의 요건 중 물건과 채권사이에 견련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단지 채권의 성립과 물건에 대한 점유의 취득이 쌍방적 상행위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성립하며, 상사 유치권이 민사 유치권과 다르게 비교적 용이하게 유치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거래마다 담보의 설정을 요구하였을 경우 절차상 번잡하여 거래의 신속을 해하며 그 실행을 용이하지 않게 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상인간의 신용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하고 확실한 거래관계를 지속하고자 만들어졌다. 4. 유치권 제도의 현실적 문제점 그러나 문제는 위와 같이 공평의 원칙에서 출발한 유치권이 시중에서는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유치권의 피담보채권 금액은 당사자만 알 수 있고 담보물권의 불가분성으로 인하여 유치권의 효력은 물건 전체에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채권금액을 파악할 수 없는 낙찰자는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채권금액 전부를 변제하지 않은 한 점유를 이전 받을 수 없다(즉 현행법상 유치권자는 현행법상 경매절차에서 유치권 및 채권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치권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욱이 정확한 채권 금액이 파악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치권은 다른 담보물권 보다 사실상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권리이므로 "시간에서 앞선 사람은 권리에서도 앞선다."라는 담보물권의 기본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킬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고려하여 법원은 다음과 같이 형식상 유치권이 성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권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왔다. 5. 유치권의 요건 여기서 간단히 유치권의 요건을 살펴보자. 민법상 유치권은 민법 제320조에 규정되어 있는 것과 같이 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서, ① 피담보채권, ② 채권과 목적물의 견련성, ③ 목적물의 점유 및 변제기 도래의 요건이 충족되면 당연히 성립하는 법정 담보물권이다. 이에 반하여 상사유치권은 상인간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 채권자가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채무자에 대한 상행위를 통하여 그가 점유하고 있는 채무자 소유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로서 ① 양 당사자가 상인이어야 하고 ② 당사자 쌍방의 상행위로 발생한 피담보채권임을 요구한다. 다만 민법과 다르게 목적물과 채권간의 견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6. 유치권 성립과 관련된 판례의 경향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치권은 위 요건들만 충족하면 당연히 성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4.항에서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음의 사안에서 유치권 주장과 관련하여 그 성립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즉 ⒜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강제경매개시 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채무자가 부동산에 관한 공사대금 채권자에게 그 점유를 이전함으로써 유치권을 취득하게 한 경우는 당해 유치권의 취득은 압류의 효력에 반하여 유치권자는 대항할 수 없다는 판결(2005다 22688), 최근 고등법원에서 선고된 ⒝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임차물을 타인에게 임대하고 있었다가 소유자가 바뀐 경우 사용수익하고 있는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의 승낙으로서 새로운 소유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서울고등법원 2011. 12. 21. 선고 2011나 27983 판결)는 판례, 그 외 하급심 판례로서 ⒞ 소멸시효가 완성된 공사대금 채권의 채권자가 자신이 점유하고 있던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경매개시 결정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채무자가 공사대금 채권의 시효이익을 포기하여 채권자로 하여금 유치권을 취득하게 하는 것도 목적물의 교환가치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는 처분행위로서 앞의 점유 이전의 경우와 같이 보아 압류의 처분금지효에 저촉되므로 점유자로서는 위 유치권을 내세워 그 부동산에 관한 경매절차의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0가합 15029)는 판결, ⒟ 거주목적으로 공사를 하였을 경우 유치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부동산 인도명령 결정 사례 등 형식상 유치권 관련 법률요건은 갖추어져 있으나 유치권의 요건과 관련된 법률요건을 엄격히 해석하거나 유치권 이외의 법리를 원용하여 유치권의 성립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7. 대상판결 그리고 대상판결들은 민법의 일반조항으로서 최후 수단인 신의칙까지 동원하면서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던 것이다. 고등법원은 위 대상판결에서, '… 이러한 경우에는 위 피고가 전 소유자와 사이에 위 건물 부분에 관한 공사도급계약을 하고 그 계약에 따른 공사를 일부라도 실제로 진행하여 상당한 공사비용을 투하하였다고 하더라도, 만약 이러한 경우에까지 유치권의 성립을 제한 없이 인정한다면 전 소유자와 유치권자 사이의 묵시적인 담합이나 기타 사유에 의한 유치권의 남용을 막을 방법이 없게 되어 공시주의를 기초로 하는 담보법질서를 교란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 피고의 공사도급계약 전에 가압류등기와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친 자의 신청에 의한 경매절차의 매수인(낙찰자)인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는, 민법 제320조 제2항을 유추 적용하여 위 피고가 위 공사대금채권에 기초한 유치권을 주장하여 그 소유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하거나, 그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위 대상 판결의 대법원(2011. 12. 선고 2011다 84298) 역시 '…丙 회사는 상사유치권자로서 甲 회사에 대한 채권 변제를 받을 때까지 유치목적물인 건물 일부를 점유할 권리가 있으나, 위 건물 등에 관한 저당권 설정 경과, 丙 회사와 甲 회사의 임대차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및 체결 후의 정황, 경매에 이르기까지의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丙 회사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乙 은행의 신청에 의하여 건물 등에 관한 경매절차가 곧 개시되리라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유치목적물을 이전받았다고 보이므로, 丙 회사가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개시된 경매절차에서 유치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유치권 주장을 배척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함으로서 담보물권의 기본원칙을 지키고자 고심하였던 흔적을 내비치고 있다. "유치권제도와 관련하여서는 거래당사자가 유치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작출 함으로써 앞서 본 유치권의 최우선순위담보권으로서의 부당하게 이용하고 전체 담보권질서에 관한 법의 구상을 왜곡할 위험이 내재한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여,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평가되는 유치권제도 남용의 유치권 행사는 이를 허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8. 결어 지난 경매 통계를 살펴보면 2006년 평균 낙찰률은 71.83%이었으나 유치권이 신고 된 물건의 평균 낙찰률은 불과 56.41%로서 평균을 거의 15%p이상 하회하고 있고, 2007년 연간 평균 낙찰률은 74.43%이나 유치권 신고 된 물건의 평균 낙찰률은 62.23%로서 일반적인 물건보다 12.2%p나 하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과 더불어 담보물권의 기본원칙 및 이해당사자간의 형평성 등을 모두 고려한 최근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고 본다.
2012-07-23
박시준 변호사(정부법무공단)
최저 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합리성의 원칙
1. 사실관계 제약회사인 원고는 도매상들과 도매거래약정을 하면서, 약정서에 원고가 생산하는 보험의약품을 보험약가로 출하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과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에 원고가 약정을 해지하고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을 두었으며, 실제 도매상들의 보험약가 준수 감시와 위반 시 거래 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원고의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29조 제1항의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을 하자 원고는 자신의 행위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경재제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아래 판결요지와 같은 이유를 밝히면서도,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원고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허용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2. 판결요지 공정거래법 제2조 제6호, 제29조 제1항 등 공정거래법의 입법 목적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당해 상표 내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시장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행위가 관련 상품시장에서의 상표 간 경쟁을 촉진하여 결과적으로 소비자후생을 증대하는 등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관련시장에서 상표 간 경쟁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여부, 그 행위로 인하여 유통업자들의 소비자에 대한 가격 이외의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는지 여부, 소비자의 상품 선택이 다양화되는지 여부, 신규사업자로 하여금 유통망을 원활히 확보함으로써 관련 상품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며, 이에 관한 증명책임은 관련 규정의 취지상 사업자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평석 가.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한 외국의 규제 입장 (1) 미국의 경우 미국에서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한 규제는 수직적 합의에 따른 가격제한의 일종이므로 수평적 가격담합과 마찬가지로 셔먼법 제1조가 적용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11년 Dr. Miles Medical Co. v. John D. Park & Sons Co. 판결에서 당연위법의 원칙을 적용한 후 이를 유지하여 오다가, 2007년 6월 29일 Leegin 판결(Leegin Creative Leather Products, Inc. v. PSKS, Inc.)을 통하여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당연위법(per se illegal)의 법리에 따라야 한다고 볼 수는 없고, 경쟁제한적 측면과 경쟁촉진적 측면의 비교형량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여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Leegin 판결이 선고된 직후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위 판결을 비판하며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당연위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였고(멜린랜드주, 뉴욕주, 뉴저지주 등), 상원의회는 2007년 10월경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당연위법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하였으며, 하원의회는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당연위법으로 규정하여 위 판결을 사실상 폐기하는 H. R. 3190 Discount Pricing Consumer Protection Act 2009 법안을 발의 하여 심사 중이다. 따라서 Leegin 판결 이후에도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 규제 방향은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2) EU의 경우 EU 경쟁위원회는 최저가격유지행위를 경성 제한행위로 분류하여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Leegin 판결이 선고된 이후 2010년 4월에 제정되고 2010년 6월부터 적용하고 있는 'EU 위원회 규정 330/2010호(2010)' 및 '수직적 제한행위에 대한 가이드라인(2010)'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손금주·한상욱, 최저가격유지행위에 대한 합리성과 원칙 적용 가능성, 경쟁저널 2010년 7월호, 한국공정경쟁연합회, 35~37면). 나. 국내 학설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태도 현행법 해석상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도 합리성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공정거래법 제29조 제1항 본문이 '부당하게'나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위법성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있어 미국 판례법상의 당연위법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유일한 조항이라는 견해(임영철, 공정거래법, 법문사, 2007, 417면), ㈁법 제29조 제1항의 문리해석상 불공정거래행위와 같이 '부당성' 또는 경쟁제한성' 등을 별도의 성립요건으로 인정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견해(이호영, 독점규제법, 개정판, 홍문사, 2010, 417면), ㈂합리성 원칙에 따라 위법성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되,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부당하지 않다는 것 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주장과 증명은 당해 행위를 한 사업자의 몫이라는 견해(정호열, 경제법, 제2판, 박영사, 2008, 437, 438면) 등이 있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 8. 12. 개정된 공정거래위원회 예규 제68호인 '재판매가격유지행위 심사지침'에서 "최저가격유지행위에 해당되면 유통단계에서의 가격 경쟁을 제한하고 사업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므로 경쟁 제한성이나 불공정성에 대한 분석 없이 당연위법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 위 판결 선고 전의 하급심 판례 하급심 판례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10. 4. 21. 선고 2009누5482 한국캘러웨이골프 유한회사의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 사건에서, "공정거래법 제29조 제1항 본문은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있으면 경쟁제한성을 별도로 판단하지 않고 위법한 것으로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별도로 당해 행위의 경쟁제한성 여부를 판단함이 없이 위법한 행위로 보아야 하고, 이에 대하여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부당하지 않다는 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주장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으며, 2010. 9. 16. 선고 2010누5433 코카콜라음료 주식회사의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의 '07년 Leegin 판결의 취지를 곧바로 받아들여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있어서 경쟁촉진효과 내지 소비자후생증대효과를 분석하고 이를 경쟁제한효과와 비교형량하여 그 위법성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유는 공정거래법 제29조 본문은 '부당하게'나 '정당한 이유 없이' 또는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등과 같은 위법성 요건을 따로 요구하지 있지 않은 점, 공정거래법 제29조 단서에서 최고가격유지행위의 경우에만 정당한 이유를 입증하여 금지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이다."라고 판시하여,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허용할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라. 판결에 대한 검토 공정거래법은 2001. 1. 16. 제6371호 공정거래법 법률개정을 통하여 최저가격유지행위를 최고가격유지행위와 명백하게 구별하여 규정하였다(공정거래법 제29조 제1항). ○ 공정거래법 제29조의 2001. 1. 16. 개정 전후 비교 개 정 전(이하 '개정법') 제29조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제한) ①상품을 생산 또는 판매하는 사업자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현 행(이하 '현행법') 제29조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제한) ①사업자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상품이나 용역을 일정한 가격 이상으로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가격유지행위로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1.1.16.> 위 개정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경쟁촉진적 효과를 인정하여 이를 당연위법으로 다루었던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여 합리성의 법리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State Oil Co. v. Khan 판결 및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경쟁촉진적 개연성을 강조한 국내외 많은 이론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이호영, 같은 책, 411면 참조). 2001. 1. 16. 공정거래법 법률개정 당시 입법자는 그 당시까지 논의되던 최신의 학설과 외국 판례를 참조하여, '부당하게'나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있어 미국 판례법상의 당연위법과 동일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았던 공정거래법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구별하고,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여전히 이를 허용할 예외를 인정하지 않되,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하여는 사업자가 그 정당성을 입증하여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입법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과 같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허용되고, 이에 대한 증명책임을 사업자가 지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입법자가 공정거래법 제29조를 본문과 단서의 형식으로써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달리 규율하였음에도, 법률 해석을 통하여 이러한 입법자의 의사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규율 차이가 법률 해석을 통하여 없어지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 이후 선고된 2010. 12. 23. 선고 2008두22815 판결에서도, "공정거래법의 입법 목적은 경쟁을 촉진하여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데에도 있고, 제29조 제1항이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도 사업자가 상품 또는 용역에 관한 거래가격을 미리 정하여 거래함으로써 유통단계에서의 가격경쟁을 제한하여 소비자후생을 저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데에 있다."는 내용을 추가로 밝히며, 공정거래법의 입법 목적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에 비추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도 허용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이와 같은 해석이 공정거래법의 입법 목적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에 있음을 더욱 명확하게 밝혔다. 공정거래법의 추상적인 입법목적 등을 통하여 경쟁제한성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점은, 기존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던 대법원 2005. 9. 9. 선고 2003두11841 제주도 관광협회사건 판결 등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위 판결에 관한 자세한 비판에 대하여는 이봉의, 공정거래관련 주요 판례연구, 2006년 연구용역보고서, 공정거래위원회, 5~9면 참조). 그러나 이와 같이 추상적인 공정거래법의 목적조항 및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에 근거하여 최고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규정 체제와 내용이 다른 최저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도 합리성의 원칙을 적용한 것과 유사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은, 입법론으로는 몰라도 공정거래법 제29조와 같은 규율형태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서도 Leegin 판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201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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