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장이 배심원에게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해 설명을 하지 않아 배심원 평의 과정에서 예비적 공소사실이 논의되지 않았더라도 그 판결과 재판 전부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예비적 공소사실은 주위적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이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6조1항은 재판장에게 공소사실의 요지와 적용법조, 그 밖의 유의 사항에 대해 배심원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후 재판장의 설명 의무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양모씨에 대한 상고심(2014도8377)에서 1심을 무효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종 설명의 대상이 되는 사항은 공판진행 과정을 통해 배심원이 참여한 법정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임에도 재판장에게 최종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배심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항을 쉽고 간략하게 정리해 재확인하도록 한 취지"라며 "재판장이 최종 설명 때 공소사실에 관한 설명을 일부 빠뜨렸거나 미흡하게 한 잘못이 있어도, 그전까지 아무런 하자가 없던 소송행위 전부를 무효로 할 정도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판장이 최종 설명 의무가 있는 사항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설명을 빠트렸다고 해서 곧바로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서 판결을 무효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장이 설명의무를 지키지 않았어도 판결이 무효로 되지 않는 경우는 △예비적 공소사실의 요지 및 주위적 공소사실과의 차이점 등은 검사와 변호인의 모두진술 등으로 공판 과정에서 드러났을 것 △예비적 공소사실은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한 관계에서 고의의 내용만 다르고 특별히 주위적 공소사실과는 다른 사실관계의 인정이나 법률적 쟁점이 없는 축소사실에 해당하고 사안과 쟁점도 복잡하지 않을 것 △그에 대한 1심 재판장의 설명이 없더라도 배심원들이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정으로 이행할 수 있었을 것 △피고인과 변호인은 1심 재판장에게 최종 설명에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설명을 포함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거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 △1심 재판장은 최종설명 때 배심원들에게 평의 과정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 사항이 있을 경우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을 것 △평의 과정에서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한 평결이 무죄인 경우 배심원이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한 평의와 평결에 관해 질문과 설명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 등을 제시했다.
양씨는 2013년 5월 경기도 안산시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박모씨와 다툼 끝에 과도로 박씨의 배를 찔렀다. 다행히 박씨는 4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는 데 그쳤지만, L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L씨에게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집단·흉기 상해 혐의도 적용됐다.
L씨는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받았다. 배심원들은 유죄 5명, 무죄 4명의 의견을 냈다. 양형의견은 징역 2년6월 4명, 징역 3년 4명, 징역 4년 1명이었다. 1심 재판부는 L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 이상 주위적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예비적 공소사실도 국민참여재판절차 내에서 아울러 심리가 진행돼야 한다"며 "재판부는 배심원들에게 예비적 공소사실의 내용을 주지시키고, 주위적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예비적 공소사실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주위적 공소사실인 살인미수에 관해서만 평의를 진행한 것은 예비적 공소사실을 국민참여재판절차에서 배제한 것으로 위법해 무효"라며 사건을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