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몰래 탄 커피를 건네 상대방 의식을 잃게 한 뒤 강간을 했다면 단순 강간죄가 아니라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가 잠이 들게 한 것도 신체기능의 일시적 장애를 초래한 것으로 강간치상죄의 구성요건인 '상해'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성폭력치료강의 200시간 수강을 명령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2015도3939).
재판부는 "수면제 등 약물을 투약해 피해자를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한 경우, 약물로 인해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나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됐다면 강간치상죄에서 말하는 '상해'에 해당하며 피해자가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거나 후유증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A씨가 준 졸피뎀(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이 섞인 커피를 받아 마신 후 정신을 잃고 깊이 잠들었다가 3시간 뒤 깨어났는데, 이는 약물투약으로 정보나 경험을 기억하는 신체의 기능에 일시적으로 장애가 생긴 것"이라며 "약물투약으로 피해자의 항거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므로 강간치상죄에서 말하는 상해에 해당하고,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한 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2014년 5월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성매매를 위해 만난 B씨에게 졸피뎀이 섞인 커피를 마시게 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하려 했으나 발기가 되지 않아 미수에 그치고, 성매매 대가로 준 20만원을 도로 챙겨나온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피해자가 졸피뎀이 든 커피를 마시고 3시간 동안 정신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깨어난 후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텔을 나갔고 이후 치료도 받지 않았으므로 상해로 볼 수 없다"며 강간치상죄가 아닌 강간미수죄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성폭력치료강의 200시간 수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정신을 잃게 된 것은 졸피뎀 등의 영향으로 신체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이라며 1심을 취소하고 강간치상죄를 인정했다. 다만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강간치상죄는 강간이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