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로 제출된 검찰 공소내용은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공소제기는 문서, 즉 '공소장'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종이 공소장에 적힌 것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최근 저작권법 위반 사건 등에서 범죄사실을 적시하느라 공소장 분량이 수만쪽에 이르는 등 방대해지면서 검찰이 공소장 내용을 CD나 USB(이동식 저장 장치)에 담아 기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 대법원이 공소제기 방식의 서면주의와 엄격한 요식성을 강조하며 이같은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웹하드 사이트를 운영하며 회원들이 무단으로 저작물을 업로드 및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중개하고 요금을 받아 수익을 챙긴 혐의(저작권법 위반 등)로 기소된 김모(55)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대전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2015도3682).
재판부는 "공소제기는 검사가 법원에 대하여 특정한 형사사건의 심판을 구하는 소송행위로서 형사소송법 제254조 1항은 '공소를 제기함에는 공소장을 관할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3항은 '공소장에는 피고인의 성명 기타 피고인을 특정할 수 있는 사항, 죄명, 공소사실, 적용법조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266조는 '공소제기가 있는 때에는 지체 없이 공소장의 부본을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송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소송법이 이처럼 공소제기와 관련해 서면주의와 엄격한 요식행위를 채용한 것은 심판의 대상을 서면에 명확하게 기재해 둠으로써 법원의 심판 대상을 명백하게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서면인 공소장의 제출은 공소제기라는 소송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본질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저장 매체나 전자적 형태의 문서에 담긴 내용은 공소장의 일부로서의 서면으로 볼 수 없다"면서 "전자적 형태의 문서가 저장된 저장 매체 자체를 서면인 공소장에 첨부해 제출한 경우에는 서면인 공소장에 기재된 부분에 한해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김씨는 2010년 6월 웹하드 사이트 2개를 만들어 이듬해 6월까지 1년여간 61만7481건의 불법 콘텐츠를 유통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저작권 침해 및 방조 혐의는 동영상 3만2085건, 기타 저작물 58만5396건에 이른다. 김씨는 이를 통해 7억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검찰은 김씨를 기소하면서 김씨의 범죄 건수가 너무 많아 공소사실 전부를 종이 문서로 출력할 경우 분량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별지 범죄일람표 3개의 목록을 CD에 담아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검찰의 기소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은 채 김씨의 범행을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김씨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공소내용을 CD에 담아 제출한 것은 법이 정한 기소 방식에 위반돼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제기 방식에 문제가 없다며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2심은 당시 "김씨의 범행 횟수가 61만여건에 달하고 범행일시와 침해한 지적재산권 등도 모두 달라 이를 문서로 출력하면 수만 페이지가 되므로 검찰이 방어권 보장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CD로 공소내용을 제출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