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된 공문서가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위조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라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문서위조죄는 일반인 평균 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기준으로 문서가 공문서의 외관과 형식을 갖췄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9도8443).
A씨는 2016년 6월 제주도 B콘도 입주민 모임인 'C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직인이 등록된 단체라는 점을 꾸미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발급한 개인 인감증명서에 C위원회 직인 2개를 날인한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법으로 인감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 문서를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중국인 분양자들이 참여하는 SNS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게재했다. A씨는 또 2016년 8월 제주 서귀포시 한 헬스케어타운 내 커뮤니티센터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보안 직원을 밀어 다치게 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일반인으로 하여금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권한 내에서 작성된 문서라고 믿을 수 있는 형식과 외관을 구비한 문서를 작성하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만, 평균 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권한 내에서 작성된 것이 아님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공문서로서의 형식과 외관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분별한 정도
조악한 수준이면 ‘위조공문서행사죄’ 안돼
이어 "A씨가 오려 붙인 '인감증명서 용도란'은 재질과 색깔이 다른 종이가 붙어 있음이 눈에 띄고, 글자색과 활자체도 다르다"며 "평균 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만든 문서 자체를 평균 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춘 일반인이 보았을 때 진정한 문서로 오신할 만한 공문서의 외관과 형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만든 문서가 그와 같은 외관과 형식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A씨가 만든 문서가 공문서로서의 외관과 형식을 갖추지 못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이를 촬영한 사진 파일을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게재한 행위가 위조공문서행사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앞서 1,2심은 "A씨가 만든 문서의 외관이 다소 조악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체채팅방에 게재되는 사진파일의 특성상 화질이 원본에 비해 떨어지는데다, 상대방이 확대해 보지 않는 이상 크기도 크지 않아서 상대방이 문서의 하자를 알아채기 쉽지 않고, 상대방이 대부분 중국인이어서 국문으로 작성된 공문서의 외관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문서의 외관이 다소 조악하더라도 이를 진정한 공문서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