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입찰의 수요기관이 입찰에서 탈락한 건설사에 설계비를 보상한 후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사실이 밝혀졌다면, 수요기관은 입찰담합을 한 건설사를 상대로 설계보상비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최근 부산교통공사가 A사 등 건설사들을 상대로 낸 설계보상비 반환소송(2017다247145)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08년 12월 공고된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 다대구간 건설공사 입찰에 참여한 A사 등은 담합행위를 했다. 당시 부산교통공사는 조달청을 통해 입찰 공고를 냈는데, 입찰안내서에 포함된 공사입찰유의서 등에는 입찰에 탈락한 입찰참가자에 설계비를 보상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입찰담합을 입찰 무효사유로 정하고 입찰 무효사유가 있으면 설계보상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이미 설계보상비를 지급받았다면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규정됐다.
부산교통공사는 계약 내용대로 낙찰되지 않은 A사 등 6개 회사에 같은해 6월 설계비 보상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는데, 이후 담합 사실이 밝혀지자 공사는 건설사들에 설계보상비를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요청조달계약에서의 수요기관의 지위, 관련 법령 규정의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조달청장이 수요기관으로부터 요청받은 공사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계·시공일괄입찰을 실시하면서 입찰 참가자와 사이에서 입찰 참가자가 낙찰자로 결정되지 않으면 수요기관이 설계비 일부를 보상하도록 약정하고, 이에 따라 수요기관이 자신의 명의와 출연으로 그들에게 설계보상비를 지급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요기관은 공사계약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수익자로서 조달청장과는 독립된 지위에서 설계보상비를 지급했다고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수요기관에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수요기관은 불법행위자들에게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은 담합행위를 숨겨 설계보상비 지급을 요청한 뒤 설계보상비를 지급받았는데 이는 부산교통공사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뿐 아니라 특별유의서의 관련 규정과 입찰 과정 등 기록에 나타난 사정에 비춰 볼 때 부산교통공사가 담합행위를 알았다면 설계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공사가 지급한 설계보상비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봄이 상당해 피고들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설계보상비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은 원고일부승소 판결했지만, 2심은 "부산교통공사가 설계보상비를 지급할 지위에 있지 않았고 대한민국(조달청)과의 내부적 관계에서 국가를 대신해 지급한 것이므로 설계보상비 반환을 구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