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뒤늦게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더라도 함께 저술한 교수 전원의 동의가 없다면 논문의 게재 철회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공동 집필한 논문은 함께 쓴 교수들이 공동저작권을 가지기 때문에 학문적인 오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당사자간 합의 없이 일방이 저작재산권의 행사로써 게재 철회를 요구할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강영수 부장판사)는 모 대학교수 A씨가 논문을 공동 저술한 교수 B씨와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한 사단법인 C학회를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금지소송(2018나2059206)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2006년 2월 A씨와 B씨가 함께 작성한 논문이 같은해 8월 C학회의 학회지에 게재됐다. 뒤늦게 논문 연구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2013년 2월 C학회에 논문의 실증분석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문의 게재 취소를 요구하고, B씨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논문의 오류 여부를 사후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동의거부 사유가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어
C학회가 연구진실성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결과, 논문 작성에 사용됐던 데이터·프로그램의 멸실로 논문의 오류나 위·변조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으나 논문에 적시된 결과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C학회는 '논문이 의도적 또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잘못된 결과를 보고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논문 게재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C학회는 다만 B씨의 동의가 있다면 논문 게재를 취소하겠다고 밝혔지만, B씨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A씨는 B씨에게 논문 게재 철회에 동의하고, C학회에 논문의 인쇄·판매와 제3자에 대한 이용 허락을 금지하라며 지난해 10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저작권법 제48조 1항은 공동저작물이 저작재산권자의 의사에 반해 분리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공동저작권자 전원의 합의에 의해 공동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동시에 이 같은 전원 합의 규정을 엄격하게 관철할 경우 이용 허락 등을 통한 저작물의 이용이 필요함에도 공동저작권자 일방의 합의 거절로 인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내지 효율적인 이용이 방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저작권자는 신의에 반해 합의의 성립을 방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원고 패소 판결
이어 "사회과학 논문은 그 특성상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가 분실된 경우, 연구결과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며 "공동저작물이 학문적 오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이것이 신의에 반해 합의의 성립을 방해한 것인지를 판단함에 있어 중대하거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씨는 논문의 오류 여부를 사후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점, 논문의 통계분석 작업이 A씨의 지휘를 받아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이용허락 철회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B씨의 합의 거부 사유가 아무런 근거가 없다거나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B씨가 논문의 결과를 재현할 수 없음이 밝혀진 경우에는 논문에 대한 이용허락의 철회에 협력할 것이라는 신의를 A씨에게 주었다거나, A교수가 그러한 신의를 형성하게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용 허락 철회에 대한 B씨의 부동의가 공동저작권자로서 신의에 반해 합의의 성립을 방해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