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신청을 한 난민 인정자의 예금잔고가 일시적으로 3000만원이 안된다는 이유로 귀화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무부가 난민협약에 따라 난민인정자의 귀화신청을 신속하게 심사했어야 하는데, 늑장심사를 하고서 생계유지능력을 엄격하게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A씨는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자 2009년 한국으로 건너와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A씨는 2004년 3100여만원의 예금잔고증명서를 갖고 귀화신청을 했다. 구 국적법 시행규칙 제3조 2항 2호는 귀화신청자나 그 가족이 3000만원 이상의 예금 등 생계유지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화심사가 진행되던 중 A씨 예금에 140만~170여만원의 변동이 생겼고, 법무부는 "생계능력이 부족하다"며 귀화 신청을 불허했다. 이에 A씨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고 해서 법무부장관이 귀화허가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A씨가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김흥준 부장판사)는 A씨(소송대리인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국적신청 불허가처분 취소소송(2017누34881)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최근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귀화 신청 불허가 처분 당시 A씨의 예금잔고는 3000만원 미만이었으나, 불허가 처분은 귀화신청이 있은 때로부터 약 23개월 뒤에 이뤄졌다"며 "A씨의 잔고는 6개월 이상 3000만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귀화신청 절차가 신속히 진행됐더라면 A씨가 생계유지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는 '일반귀화신청의 경우 통상 17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A씨에 대한 불허가 처분이 늦은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A씨의 귀화신청은 일반적인 외국인이 아니라 난민인정자가 귀화신청을 한 것으로 국내법으로서 효력을 갖는 난민협약에 따라 법무부가 신속히 귀화절차를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의 경우 일반적인 외국인이 귀화신청을 했을 경우에 통상적으로 걸리는 시간보다 더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전도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얻는 수입이 다소 적고 불규칙적이라도 이를 생계유지능력평가에서 부정적 요인으로 삼는 것은 A씨가 난민으로서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 경위를 도외시 하는 것"이라며 "A씨가 우리나라 경제공동체에 자신의 방법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