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방금 피고인에게 돈을 빼앗겼다고 말했지만, 피고인은 한번도 남의 돈을 빼앗은 일이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검은 안경을 쓴 변호인이 연신 점자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검사도 부지런히 손으로 점자를 읽으며 반론을 준비한다.
마침내 선고가 내려졌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를 기각합니다. 이 판결에 불복하기 위해서는 1주일 안에 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면 됩니다. 이상으로 서울모의법원 2012고합1001호 폭행 및 공갈사건의 재판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내용을 파악한 재판장이 검사의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9일 대법원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학생 초청 행사에서 서동칠 홍보심의관(왼쪽)과 임선지 판사(왼쪽 세번째)가 학생들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
지난 9일 대법원에서 열린 시각 장애 학생들의 모의재판 풍경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맹학교 학생과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의 자원봉사자 자녀들이 짝을 이뤄 같은 학교 친구의 돈을 빼앗은 학생을 피고인으로 한 가상사건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서울맹학교 3학년 최유민 양과 김병진 군이 각각 재판장과 좌배석 판사를 맡았고, 시각장애 친구를 부축해 법대에 오른 중대부고 3학년 이윤채 양은 우배석을 맡았다. 김 군은 "모의재판 참가를 계기로 법조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법원은 이날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과 공동으로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서울맹학교와 한빛맹학교 학생, 한국 시각장애인 자원봉사자 자녀 등 20여명을 초청해 '둘이 함께(나의 미래를 찾아서)' 견학 행사를 열었다. 학생들은 법원전시관에서 법원의 역사와 재판의 구조에 대해 설명듣고, 대법정과 소법정을 관람한 뒤 모의재판과 법복 입어보기, 판사와의 대화 등 다양한 체험을 했다. 법복 입어보기 체험에 동참한 차한성(58·사법연수원7기) 법원행정처장은 "이 자리에 참석한 시각 장애 학생들이 꿈을 키워 제2의 최영 판사가 나오기를 바란다"며 "오늘 입었던 법복에는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엄숙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을 새겨달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앞으로도 다양한 초청견학 프로그램으로 국민에게 다가가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환기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