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수차례에 걸쳐 뇌물을 수수한 경우 부정한 행위 이전에 받은 뇌물 뿐만 아니라 이후에 받은 뇌물을 '수뢰후부정처사죄'에 포함해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뢰후부정처사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131조제1항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하고 부정한 행위를 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4일 수뢰후부정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에게 징역 10개월과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20도12103).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대응 TF(태스크포스)' 피해구제 대책반 등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응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최씨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애경산업 담당자로부터 200여만원의 저녁 식사 대접, 선물 등의 뇌물을 받고 환경부 내부 문건을 건네준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2017년 4월~2018년 10월 애경산업 직원으로부터 159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2018년 3~12월 환경부 내부 문건과 주요 관계자 동향을 애경 담당자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최씨는 내부자료를 건넨 이후에도 '직무상 편의를 제공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으며 46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에서는 최씨가 환경부 내부자료를 건넨 이후, 즉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이후에 받은 뇌물도 형법상 수뢰후부정처사죄에 포함해 처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수뢰후부정처사죄는 반드시 뇌물수수 이후 부정행위가 이뤄져야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뇌물수수 도중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적용할 수 있다"며 "단일한 범죄 목적 아래 일련의 뇌물수수 행위와 부정행위가 있고, 피해법익도 같다면 부정행위 이후의 뇌물수수도 부정행위 이전의 뇌물수수와 함께 수뢰후부정처사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은 "수뢰후 부정처사죄는 공무원이 뇌물수수 또는 제3자뇌물제공의 죄를 범한 후 부정한 행위를 한 때에 성립하고, 수뢰 등의 행위와 부정한 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부정한 행위를 할 것을 약속하고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했더라도 이후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수뢰후 부정처사죄에 해당하지 않고 뇌물수수죄에 해당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정행위 이후 뇌물수수는 '수뢰후부정처사죄'가 아닌 '뇌물수수죄'가 된다"며 최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지만 양형만 변경해 징역 10개월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