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형사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3일 해군 차기호위함 수주 대가로 STX그룹에서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로 기소된 정옥근(64)전 해군참모총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날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총장의 장남 정모(38)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도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뇌물수수죄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한 때에 적용되는 것으로,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한 때에는 제3자 뇌물제공죄가 적용된다"며 "형법이 뇌물의 귀속주체에 따라 뇌물수수죄와 제3자 뇌물제공죄를 구별하고 있는 취지를 고려할 때,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않고 증뢰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공여하도록 한 경우에는 그 다른 사람이 공무원의 사자(使者) 또는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받은 경우 등과 같이 사회통념상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을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경우에 한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에서 STX그룹 측으로부터 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주체는 정씨가 주주로 있는 요트회사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정 전 총장 등이 직접 금품을 수수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이처럼 요트회사가 공무원이나 그 공동정범자 이외의 제3자의 지위에서 후원금을 받음으로써 정씨가 그 회사 주주로서 간접적으로 이익을 얻게 되더라도 그러한 사실상의 경제적 이익에 관해 정 전 총장 등을 뇌물의 귀속주체로 판단해 단순 수뢰죄가 별도로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뇌물의 귀속주체가 '법인(요트회사)'이고 뇌물의 내용이 '후원금'인 이상 단순 수뢰죄와 제3자 뇌물제공죄를 구분하는 형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부정한 청탁'이라는 구성요건이 증명될 경우 이 사건에서 제3자 뇌물제공죄가 성립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별도로 단순 수뢰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 전 총장은 유도탄 고속함과 차기 호위함 등을 수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2008년 7월 국제관함식에서 요트 행사를 한 아들의 회사를 후원해 달라고 당시 STX조선해양 사외이사이던 윤연(67) 전 해군작전사령관에게 요구해 7억7000만원을 받아낸 혐의로 지난해 3월 아들과 함께 기소됐다.
1심은 정 총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4억원, 추징금 4억4500만원을 선고했다. 장남에게도 공모관계를 인정해 징역 5년과 벌금 2억원, 추징금 3억8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정 전 총장이 STX에 압력을 행사한 부분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봤지만, 뇌물 가액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며 특정범죄가중법 대신 형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정 전 총장에게 징역 4년을, 장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