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도피에 따른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규정은 일반 공소시효에만 적용되고 재판시효·의제공소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면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9일 확정했다(2020도13547).
A 씨는 1995년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여 5억6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기소됐다. 같은 해 11월 1심 첫 공판이 열렸다. 하지만 이후 A 씨가 1998년 4월 미국으로 출국해 다시 입국하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이처럼 피고인에 대한 소환이 불가능한 경우 △법정형 장기 10년 이하의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를 근거로 공시송달에 의해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공판기일 진행이 가능하지만 △법정형이 장기 10년을 초과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면소나 공소기각 사유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판기일 진행이 불가능하다.
1심 법원은 공소기각 또는 면소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77조 제2호를 근거로 2020년 3월 A 씨의 출석 없이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은 공소가 제기된 범죄는 판결의 확정이 없이 일정기간을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재판시효·의제공소시효'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기간이 종래에는 15년이었지만 2007년 12월 개정돼 25년으로 연장됐다. 다만 개정법 부칙 제3조는 개정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에 관한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뒀다.
1,2심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재판시효·의제공소시효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는 적용될 수 없다며 면소 판결했다. 또 이 사건 공소가 1997년 8월 제기됐고 그로부터 판결의 확정이 없이 15년이 경과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 따라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구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해 법정형에 따라 정해진 일정기간의 경과로 완성하고(제252조 제1항, 제249조 제1항), 공소시효는 공소의 제기로 진행이 정지되지만(제253조 제1항 전단), 판결의 확정이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간주되며(제249조 제2항),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입법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해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여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 문언과 취지 등을 종합하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서 정지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하고 공소의 제기로 정지되는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의 시효를 뜻하고, 그 시효와 별개로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한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서 말하는 시효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공소제기 후 피고인이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도 그 기간 동안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서 정한 기간(재판시효·의제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