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결정
【사건】 2020헌바401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 등 위헌소원
【청구인】 [별지] 청구인 명단과 같음, 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담당변호사 태원우, 김송이
【당해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재가합39 손해배상(기)
【선고일】 2021. 11. 25.
【주문】
헌법재판소법(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된 것) 제75조 제7항, 헌법재판소법(2014. 5. 20. 법률 제12597호로 개정된 것) 제75조 제6항 중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 제47조 제2항을 준용’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들은 망 이○○, 정○○, 박○○, 김○○, 이□□의 유족이다.
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의해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2007. 10. 23. 위 망인들이 전라남도 ○○군에서 1950. 7.경 ○○부대 등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하였다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고, 이에 청구인들은 2008. 3. 7.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8가합22325).
위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불법행위가 있은 날인 망인들의 사망일로부터 5년이 경과하여 망인들과 청구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하였고, 이에 대하여 청구인들은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의 재항변을 하였으나, 법원은 청구인들의 재항변을 배척하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청구인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고, 위 판결은 2009. 6. 19. 확정되었다(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18. 8. 30. 2014헌바148등 결정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에서 정한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한 다음,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위헌결정’이라 한다).
라. 청구인들은 이 사건 위헌결정 등을 근거로 2019. 7. 15.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는데(서울중앙지방법원 2019재가합39),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8호,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의 재심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0. 7. 10.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
청구인들은 위 2019재가합39 소송 계속 중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 제6항, 제47조 제2항,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20카기50567), 2020. 7. 10. 그 신청이 기각되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청구인들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6항과 제47조 제2항의 위헌을 주장하는데,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6항 중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 제47조 제2항을 준용하는 부분’의 위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구인들은, 이 사건 위헌결정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하였음에도 이를 민사소송법상 일반적인 재심사유로 정하고 있지 않은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도 위헌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헌법소원심판의 위헌결정에 따른 재심사유를 정한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과 그러한 위헌결정의 장래효를 정한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6항 중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 제47조 제2항을 준용하는 부분’이 불완전·불충분하여 위헌이라는 주장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을 별도의 심판대상으로 삼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은 헌법재판소법(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된 것) 제75조 제7항(이하 ‘재심사유조항’이라 한다), 헌법재판소법(2014. 5. 20. 법률 제12597호로 개정된 것) 제75조 제6항 중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 제47조 제2항을 준용’하는 부분(이하 ‘장래효조항’이라 하고, 재심사유조항과 장래효조항을 합하여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헌법재판소법(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된 것)
제75조(인용결정) ⑦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에 해당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 이미 확정된 때에는 당사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2014. 5. 20. 법률 제12597호로 개정된 것)
제75조(인용결정) ⑥ 제5항의 경우 및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제45조 및 제47조를 준용한다.
[관련조항]
헌법재판소법(2014. 5. 20. 법률 제12597호로 개정된 것)
제47조(위헌결정의 효력) ②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③ 제2항에도 불구하고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다. 다만, 해당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대하여 종전에 합헌으로 결정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그 결정이 있는 날의 다음 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④ 제3항의 경우에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근거한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하여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2020. 6. 9. 법률 제17392호로 개정된 것)
제2조(진실규명의 범위) ①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한 진실을 규명한다.
3.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
4.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3. 청구인들의 주장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내려진 헌법소원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니었던 청구인들의 재심대상판결 사건에는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재판청구권, 평등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다.
4. 판단
가. 쟁점
청구인들은,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효력을 장래효 원칙으로 정한 장래효조항과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 그 헌법소원의 전제가 된 당해 소송사건에 한해서만 재심을 허용하는 재심사유조항에 따라 재심대상판결 사건에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재심이 허용되지 아니하게 된 것이므로, 사안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고 침해의 정도가 큰 주된 기본권은 위헌결정의 효력과 재심사유를 한정함으로써 제한되는 재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 즉 헌법 제27조 제1항의 재판청구권이다.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권도 침해된다고 주장하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다른 기본권에 대한 보충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므로 다른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이상 그 침해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없고(헌재 2012. 7. 26. 2011헌바130 참조),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와 이를 제기하지 않은 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심판대상조항이 재심사유와 위헌결정의 효력을 한정한 결과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 사람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의 반복·강조에 불과하므로(헌재 2018. 1. 25. 2016헌바220 참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나. 심사기준
헌법 제27조 제1항은 재판청구권의 내용을 법률에 의해 구체화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의 형성은 입법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에 심판대상조항은 재심사유의 범위와 위헌결정의 효력을 한정함으로써 재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의 구체적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재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에 맡겨져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국민의 재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는 입법형성권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이하에서는 심판대상조항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헌법이 보장한 재판청구권을 침해함으로써 위헌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다. 선례의 결정 요지
(1) 헌법재판소는 1993. 5. 13. 92헌가10등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과 내용이 동일한 구 헌법재판소법(1988. 8. 5. 법률 제4017호로 제정되고, 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7조 제2항 본문에 대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하였고, 헌재 2000. 8. 31. 2000헌바6 결정, 헌재 2001. 12. 20. 2001헌바7등 결정, 헌재 2008. 9. 25. 2006헌바108 결정 및 헌재 2013. 5. 30. 2010헌바347 결정에서도 위 92헌가10등 결정의 이유를 원용하여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장래효를 원칙으로 한 구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 본문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음을 선언하였는데, 위 92헌가10등 결정의 판시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으로 선고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이 제정 당시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는가 아니면 장래에 향하여 효력을 상실하는가의 문제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헌법적합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입법자가 법적 안정성과 개인의 권리구제 등 제반이익을 비교형량하여 가면서 결정할 입법정책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입법자는 법 제47조 제2항 본문의 규정을 통하여 형벌법규를 제외하고는 법적 안정성을 더 높이 평가하는 방안을 선택하였는바, 이에 의하여 구체적 타당성이나 평등의 원칙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법치주의의 원칙의 파생인 법적 안정성 내지 신뢰보호의 원칙에 의하여 이러한 선택은 정당화된다 할 것이고,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이로써 헌법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효력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위헌결정의 특수성 때문에 예외적으로 부분적인 소급효의 인정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 구체적 규범통제 실효성의 보장의 견지에서 법원의 제청·헌법소원 청구 등을 통하여 헌법재판소에 법률의 위헌결정을 위한 계기를 부여한 당해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이와 동종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하였거나 법원에 위헌제청신청을 한 경우의 당해사건, 그리고 따로 위헌제청신청을 아니하였지만 당해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하여는 소급효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반면에 소급효를 인정하여도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나아가 구법에 의하여 형성된 기득권자의 이득이 해쳐질 사안이 아닌 경우로서 소급효의 부인이 오히려 정의와 형평 등 헌법적 이념에 심히 배치되는 때에도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이 후자와 같은 테두리에 들어가는가에 관하여는 본래적으로 규범통제를 담당하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선언을 하면서 직접 그 결정주문에서 밝혀야 할 것이나, 직접 밝힌 바 없으면 그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가의 여부는 일반법원이 구체적 사건에서 해당 법률의 연혁·성질·보호법익 등을 검토하고 제반이익을 형량해서 합리적·합목적적으로 정하여 대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일률적인 소급효의 인정이 부당한 결과를 발생시키듯이 일률적인 소급효의 완전부인도 부당한 결과를 발생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 제47조 제2항 본문의 규정을 특별한 예외를 허용하는 원칙규정으로 이해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2) 또한 헌법재판소는 2000. 6. 29. 99헌바66등 결정에서 재심사유조항과 내용이 동일한 구 헌법재판소법(1988. 8. 5. 법률 제4017호로 제정되고, 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5조 제7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판시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법원이 법률의 위헌여부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한 때에는 당해 소송사건의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정지된다(헌법재판소법 제42조 제1항). 그러나 법률의 위헌여부심판 제청신청이 기각된 때에는 그 신청을 한 당사자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더라도 당해 소송사건의 재판은 정지되지 아니한다(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 따라서 당해 소송사건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전에 확정될 수 있다. 심판대상법조항은 확정판결이 근거로 하고 있는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을 때에는, 이미 확정된 당해 소송사건에 관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서 심판대상법조항의 “당해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란 문면상 당해 헌법소원의 전제가 된 당해 소송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대법원 1993. 7. 27. 선고 92누13400 판결 참조).
어떤 사유를 재심사유로 하여 재심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입법자가 확정된 판결에 대한 법적 안정성, 재판의 신속, 적정성, 법원의 업무부담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재심은 확정판결에 대한 특별한 불복방법이고, 확정판결에 대한 법적 안정성의 요청은 미확정판결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크다고 할 것이므로 재심을 청구할 권리가 헌법 제27조에서 규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할 수 없고, 심판대상법조항에 의한 재심청구의 혜택은 일정한 적법요건 하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인용된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이고, 헌법소원청구의 기회가 규범적으로 균등하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심판대상법조항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인용결정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재심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여 청구인의 재판청구권이나 평등권,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에 당해 헌법소원의 전제가 되는 확정된 당해 소송사건의 당사자에게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심판대상법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라.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
(1)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은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장래효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앞서 본 것과 같이 헌법재판소는 구체적 규범통제의 실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 또는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반면 소급효를 인정해도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소급효를 인정하는 것이 위 조항의 근본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여, 위 조항의 합리적 해석을 통해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음을 밝혔다. 대법원 역시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효력은 위헌제청을 한 당해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이와 동종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하였거나 법원에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을 한 동종사건과 따로 위헌제청신청은 아니하였지만 당해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법원에 계속 중인 병행사건뿐만 아니라, 위헌결정 이후에 위와 같은 이유로 제소된 일반사건에도 미치지만, 법적 안정성의 유지나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두5628 판결 참조).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은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장래효를 원칙으로 하면서 구체적 타당성이 강하게 요청되는 경우, 즉 앞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들고 있는 일정한 경우에는 해석을 통해 예외적으로 소급효를 인정하는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입법자가 구체적 타당성 내지 정의의 요청과 법적 안정성 내지 신뢰보호의 요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양자를 조화시키기 위해 입법형성권을 행사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을 준용하는 장래효조항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2) 한편 재심은 확정된 종국판결에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그 판결의 취소와 이미 종결되었던 사건의 재심판을 구하는 비상의 불복신청방법으로서, 예외적인 경우에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키고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재심은 판결에 대한 불복방법의 하나라는 점에서는 상소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상소와 달리 확정판결에 대한 불복방법이고 확정판결에 대한 법적 안정성의 요청은 미확정판결에 대한 그것보다 더 크기 때문에 상소보다 더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재심제도의 규범적 형성에 있어 입법자는 확정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하자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려내어야 하는데, 이는 사법에 의한 권리보호에 관하여 한정된 사법자원의 합리적 분배의 문제인 동시에 법치주의에 내재된 두 가지의 대립적 이념 즉,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상반된 요청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로 돌아가므로, 결국 이는 불가피하게 입법자의 형성의 자유가 넓게 인정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헌재 2012. 12. 27. 2011헌바5 참조).
헌법재판소법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형벌권 행사를 초래하는 형벌법규에 대해 위헌결정을 선고한 경우는 소급효 및 재심을 통한 구제를 허용함으로써 국민의 권리구제 및 기본권 보호의 요청을 우선하도록 하였으나,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법적 안정성의 이념을 우선하여 장래효를 원칙으로 하면서 위헌결정이 선고된 헌법소원사건의 당해 소송사건에 한해서 재심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법내용이 비상의 불복절차인 재심제도를 구성함에 있어 입법자에게 부여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3)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이 법적 안정성만을 내세워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하여 예외 없이 장래효만 인정하고 위헌결정을 이끌어낸 헌법소원사건의 당해 소송사건을 제외하고는 재심의 사유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가가 집단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한 이 사건과 같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을 물리쳐야 할 만큼 정의의 요청이 절박한 경우에도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내려진 헌법소원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심을 통한 구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재판청구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구인들의 위 주장은 정의의 실현이 법적 안정성보다 더 강하게 요청되는 경우에는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해서도 소급효를 인정하여 재심을 통한 구제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헌법재판소는 비형벌법규에 대한 위헌결정의 장래효 원칙을 정한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과 관련하여,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구체적 타당성의 요청이 현저한 반면에 소급효를 인정하여도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구법에 의하여 형성된 기득권자의 이득이 해쳐질 사안이 아닌 경우로서 소급효의 부인이 오히려 정의와 형평 등 헌법적 이념에 심히 배치되는 때에는 소급효를 인정할 수 있다는 해석론을 취하고, 이를 전제로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의 합헌성을 인정하였다. 다만 이와 같이 해석을 통해 소급효가 인정되는 것은 위헌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가 재판상 확정되기 전의 경우에 한정되는데, 위 해석과 같은 취지에서 위헌결정 전에 이미 해당 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가 재판상 확정되었더라도 헌법의 최고규범력 확보와 정의 실현의 요청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을 물리쳐야 할 만큼 현저한 경우에는 소급효 및 재심을 허용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헌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의 변동을 저지하는 것과 위헌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가 이미 판결을 통해 확정된 경우 그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배제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재심은 확정된 종국판결에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때에 그 판결의 취소와 이미 종결된 사건의 재심판을 구하는 비상의 불복절차로서 재심사유는 가급적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데, ‘헌법의 최고규범력 확보와 정의 실현의 요청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을 물리쳐야 할 만큼 현저한 경우’라는 다소 추상적인 기준을 재심사유로 하는 것은 자칫 법적 안정성의 이념을 허약한 토대 위에 올려놓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재심사유조항이 이와 같은 경우를 재심사유로 정하지 않았다고 하여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다.
(4)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이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라 한다), 제4호의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이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이라 한다)은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움으로써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소속 공무원들이 이러한 불법행위에 조직적으로 관여하였으며, 사후에도 조작·은폐 등으로 진실규명활동을 억압함으로써 오랜 동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등 일반적인 국가의 불법행위와는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이에 이 사건 위헌결정은,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에서 정한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다.
청구인들은 이 사건 위헌결정 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적용을 받아 청구기각의 확정판결을 받은 탓에 이 사건 위헌결정을 재심의 사유로 주장할 수 없게 되었는데,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한 것이 오히려 청구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심판대상조항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및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의 국가배상청구에도 적용되는 것은 법적 안정성만을 중시한 나머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위 주장은 사실상 심판대상조항이 이 사건 위헌결정이라는 개별 위헌결정에 대하여 소급효 및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아니한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로 볼 수 있는데, 위헌결정의 효력 및 재심에 관한 일반조항인 심판대상조항에서 개별 위헌결정의 소급효 또는 재심사유를 규정하는 것이 체계상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위 주장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당해사건으로 하는 위헌심사에서 선고된 모든 위헌결정에 대하여 소급효 및 재심사유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라면, 이는 정의의 실현과 법적 안정성이라는 대립하는 두 헌법적 가치의 형량 내지 조화를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주장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의 국가배상청구’를 위헌결정의 소급효 및 재심사유의 허용 여부를 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입법론으로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등에서 해당 사건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재심조항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피해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해 특별재심을 허용하여 구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5)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선례는 타당하고, 이 사건에서 선례를 변경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6.과 같은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6.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의 반대의견
우리는 법정의견과 달리 심판대상조항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힌다.
가. 일반적인 사건에 적용되는 재심사유조항 및 장래효조항에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에 규정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제4호에 규정된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의 국가배상청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재심사유조항과 장래효조항이 그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위 사건 유형에 대한 구체적 타당성과 정의의 요청, 즉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인바,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 헌법은 모든 국가기관과 국가작용을 구속하는 최고규범이므로, 입법부도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을 제정하여서는 아니되고,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은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저촉되는 한도에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은 헌법의 최고규범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그 목적에 충실하도록 전체 제도를 형성해야 한다. 법률의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밝혀지겠지만, 그 위헌성은 법률이 위헌적인 내용으로 입법될 때부터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비로소 생기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에 위헌결정을 선고하는 것은 그 법률에 내포되어 있는 위헌성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르는 후속 절차도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은 제47조 제1항에서 “법률의 위헌결정은 법원과 그 밖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제75조 제1항에서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라고 규정한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과 헌법소원심판의 인용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기속력의 범위를 심판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에 확장시키는 것은, 헌법의 최고규범력을 모든 국가기능과 법질서에까지 확보함으로써 이를 통해 객관적 헌법보장의 기능을 달성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장래효조항은 위헌으로 결정된 비형벌조항을 그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 상실하도록 정함으로써, 헌법의 최고규범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을 유보하고 있다. 또한 재심사유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심사유의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이 재심법원에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재심사유조항 및 장래효조항을 통한 재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의 제한은 법적 안정성 확보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전에 그 위헌법률에 근거한 법률관계가 재판상 확정된 경우라도, 재심사유를 확대하고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가치가, 재심사유를 한정하고 위헌결정의 소급효를 원칙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적 안정성보다, 언제나 모든 유형의 사건에서 가볍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은 사인 간 불법행위 내지 일반적인 국가배상사건과 다른 특성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국가가 국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움으로써 불법행위를 자행하였고, 소속 공무원들이 이러한 불법행위에 조직적으로 관여하였으며, 사후에도 조작·은폐 등으로 진실규명활동을 억압함으로써 오랜 기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이후에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되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으로 비로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으나, 이미 불법행위 성립일로부터 오랜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진상이 규명되고 이를 기초로 한 국가배상청구가 이루어짐에 따라 일반 불법행위와 소멸시효의 법리로는 공평·타당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수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05. 5. 31. 제정된 과거사정리법은 일제 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의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진실규명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단순히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피해자를 특정하여 피해 경위 등을 밝히고 그에 대한 피해 회복이 국가 및 정부의 의무임을 명시하였다(제34조, 제36조). 이는 국가기관의 조직적 은폐와 조작에 의해 피해자들이 그 가해자나 가해행위, 가해행위와 손해와의 인과관계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랜 기간 진실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특성이 있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은 사인 간 불법행위 내지 일반적인 국가배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건임을 의미한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위헌결정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이 정하는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의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는바, 그 구체적 이유는 아래와 같다.
『일반적인 소멸시효제도의 입법취지는 오랜 기간 계속된 사실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에 부합한다는 점, 채무자가 채무를 이미 변제하였으나 시간이 지나 그 증명이 어렵게 된 경우 이중변제의 위험을 면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권리관계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 채권자의 권리행사 태만을 제재하고 그 권리불행사에 대한 채무자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은 국가가 현재까지 피해자들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채무자의 증명곤란으로 인한 이중변제 방지’라는 입법취지는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국가기관이 소속 공무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피해자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그에 관한 조작·은폐 등을 통해 피해자의 실효성 있는 권리주장을 장기간 저해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채권자의 제재 필요성과 채무자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도 그 근거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위와 같은 사건 유형에서는 ‘오랜 기간 계속된 사실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에 부합한다’라는 입법취지만 남게 된다.
그러나 오랜 기간 계속된 사실상태(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이 발생하였으나 국가가 피해자·유족에게 이에 관한 손해를 배상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에 부합한다는 입법취지가, 과거사정리법이 정한 위와 같은 사건 유형에서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을 정당화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 제10조 제2문에 따라 기본권 보호의무를 지는 국가가 소속 공무원들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집단희생시키거나 국민에 대한 불법구금 및 고문 등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유죄판결 등을 하고 사후에도 조작·은폐 등을 통해 피해자 및 유족의 진상규명을 저해하여 오랫동안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그에 대한 소멸시효를 불법행위시점(민법 제766조 제2항) 내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점(민법 제166조 제1항)으로부터 기산함으로써 국가배상청구권이 이미 시효로 소멸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배상청구권은 단순한 재산권 보장의 의미를 넘어 헌법 제29조 제1항에서 명시적으로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헌법 제10조에 따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기본권인 점을 고려할 때,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헌법 제10조가 선언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와 헌법 제29조 제1항이 명시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완전히 희생시킬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사건 유형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국가가 초헌법적인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일으킨 중대한 기본권침해를 구분하지 아니한 채, 사인 간 불법행위 내지 일반적인 국가배상사건에 대한 소멸시효 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도 부합하지 아니한다.』
라.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청구인들은 망 이○○, 정○○, 박○○, 김○○, 이□□의 유족인 사실, 위 망인들은 전라남도 ○○군에서 1950. 7.경 ○○부대 등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되었다는 취지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므로 청구인들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가 규정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으로 사망한 망인들의 유족으로서, 고의·과실로 위법행위를 저지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고, 이 사건 위헌결정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결정된 이상, 청구인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할 권리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이 적용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구인들은, 이 사건 위헌결정이 선고되기 전인 2008. 3. 7.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적용을 받아 청구기각된 판결이 2009. 6. 19. 확정되었기에(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5. 28. 선고 2008가합22325 판결), 재심사유조항 및 장래효조항에 따라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일한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 사건의 피해자·유족으로서 국가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이 사건 위헌결정의 당사자들의 경우에는 확정된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어 구제받을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재심사유조항, 장래효조항의 예외적 소급효), 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그 밖의 피해자·유족의 경우에도 ‘법원의 제청 또는 헌법소원의 청구 등을 통하여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조항에 관한 위헌결정의 계기를 부여한 당해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이와 동종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하였거나 법원에 위헌제청신청을 한 경우의 당해사건, 위헌제청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당해 법률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 위헌결정 이후에 위와 같은 이유로 제소된 일반사건’에도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미침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게 되었음에 반하여(장래효조항의 예외적 소급효), 청구인들과 같이 이 사건 위헌결정 전에 국가배상을 청구하였으나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이 정하는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이 적용됨에 따라 청구기각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유족의 경우에는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현저히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즉, ‘이 사건 위헌결정의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유족’과 같이 기존에 자신의 권리구제를 위해 국가배상을 청구하지 아니하였던 경우에도 이 사건 위헌결정 이후 국가배상을 청구하면 그 위헌결정의 예외적 소급효에 따라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이 적용되지 아니하게 된 결과 법원에서 구제될 수 있음에 반하여, ‘청구인들’과 같이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 자신의 권리구제를 위해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던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의 적용에 따른 청구기각 판결이 이미 확정되었기에 앞으로도 구제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권리 위에 잠자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였던 자’(청구인들)에 대하여 ‘그렇지 아니하였던 자’(이 사건 위헌결정의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유족)보다 권리구제에 있어 합리적 이유 없이 불이익을 부여하는 사법제도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평등원칙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그렇지 아니하였던 자’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을 적용하지 못하게 함에 반하여 ‘권리 위에 잠자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였던 자’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이 적용된 결과를 용인하는 것으로서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구체적 정의의 실현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확정판결에 대한 존중이 법적 안정성에 기여한다는 측면을 이해하더라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와 제4호 사건의 국가배상청구와 같이, 일반적인 사인 간 불법행위나 통상적인 공무수행 과정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 아니라, 국가가 소속 공무원들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국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움으로써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사후에도 조작·은폐 등으로 진실규명활동을 억압함으로써 오랜 기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던 경우에까지 우월한 헌법적 가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건에서 확정판결에 따른 법적 안정성은 불특정 다수의 법률관계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러한 특수한 유형의 과거사사건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 국가의 이익에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거사사건 유형에서의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이행(헌법 제10조)과 국민의 국가배상청구권 보장(헌법 제29조 제1항)을 완전히 희생시킬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확정판결에 따라 손해배상채무를 변제하지 않아도 될 국가의 법적 안정성 이익만을 중시한 나머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와 제4호 사건에서 국가배상청구의 특수성과 헌법의 최고규범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필요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재심사유와 위헌결정의 효력의 범위를 불합리하게 제한함으로써 청구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을 받아 재심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므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마.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 헌법의 규범력을 보장하기 위하여 원칙적으로 그 법률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여야 하지만, 위헌결정을 통해 법률조항을 법질서에서 제거하는 것이 법적 공백과 그로 인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할 수 있다(헌재 2016. 12. 29. 2015헌바208등 참조).
심판대상조항이 가지는 위헌성은 확정판결에 대한 존중과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가 규정한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에서 재심사유와 위헌결정의 효력을 제한하였다는 데 있다. 즉 심판대상조항이 재심사유를 제한하고 위헌결정의 효력을 제한하는 것에는 합헌적인 부분과 위헌적인 부분이 공존하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 심판대상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하여 그 효력을 즉시 상실하게 한다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에 해당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의 당사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되고(재심사유조항의 소멸),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조항의 효력 상실 시기가 불명확하게 되는데(장래효조항의 소멸), 이는 심판대상조항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존의 다양한 법률관계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구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상태를 제거함에 있어 재심사유의 범위와 위헌결정의 효력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그 위헌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심판대상조항 자체를 개정할 것인지 또는 국가배상법이나 과거사특별법에 심판대상조항에 관한 특별조항을 신설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의 한도 내에서 입법자에게 재량이 부여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 가운데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의 국가배상청구에 적용되는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하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심판대상조항을 잠정적용하는 주문을 선고해야 한다.
재판관 유남석(재판장),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