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한국법조인대관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법률신문 심층 인터뷰

    심층인터뷰

    [인터뷰] "헌법재판관 중요한 덕목은 중립성과 용기"

    임기만료로 퇴임한 서기석 헌법재판관

    박수연 기자 sypark@lawtimes.co.kr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해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화합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8일 임기만료로 물러난 서기석(66·사법연수원 11기) 헌법재판관은 정치적·이념적으로 중립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옳은 주장을 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신념으로 지난 6년을 보냈다고 했다. 

     

    서 재판관의 호는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의 '정원(正原)'이다. 나라의 근본인 헌법을 바로 세우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6년 동안 헌법재판에 매진한 서 재판관을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집무실에서 만나 소회를 들었다.

     

    152396.jpg

     

    1981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처음 법복을 입은 서 재판관은 32년의 법관 생활과 6년의 헌법재판관 생활 등 38년 동안 우리사회에 주춧돌이 될 만한 판결들을 했다. 특히 1999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헌재에 파견돼 연구부장을 지내는 등 헌법재판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 자타공인 '준비된 헌법재판관'이었다. 그는 헌재 연구부장 재직 시절 '기회가 닿는다면 재판관으로 근무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와

    헌법적 정의구현이 과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헌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된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 타당성이나 정의를 실현하는 면에서는 법원과 비슷하지만, 개개 사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 권리를 구제하는 일반 재판과는 달리 헌법재판은 국가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심판하고 그 효력이 일반 국민 모두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보다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 사건처럼 헌재 결정은 그 효력이 국가와 국민 전체에 미친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이렇게 중차대한 헌법재판을 시작하던 날 그는 '임기를 마쳤을 때 후회할 재판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고, 6년 간 모든 사건마다 신중하게 접근했다. 

     

    결론은 물론 결론에 이르는 논리도

    수긍 받게 노력


    "6년 동안 결론은 물론 그 결론에 이르는 이론이나 논증에 있어서도 수긍받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업무에 매진했습니다. 우리 5기 재판부는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 권한쟁의심판 뿐만 아니라 (대통령)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까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헌법재판 5가지를 모두 했습니다. 특히 권한쟁의심판 사건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부족한 면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더 훌륭하신 후임 재판관들께서 잘 해주시라고 믿습니다."

     

    서 재판관이 재임한 5기 재판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과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탄핵심판까지, 우리 사회와 헌법재판사(史)의 큰 획을 긋는 사건들이 유달리 많았다. 

     

    모든 사건에서 개인의 이념만

    관철시키려하면 안 돼

     

    "많은 분들이 5기 재판부를 떠올릴 때 위헌정당해산심판과 대통령 탄핵심판을 회자하시는 것 같습니다. 재판관 모두 정말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들입니다. 탄핵심판 당시에는 기록이 5만여 쪽에 달해 한 번 읽는 데에만 50일가량이 걸렸습니다. 선고가 있기까지 92일 중 90일을 출근하고, 대부분 자정을 넘겨가면서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시 모든 재판관들이 함께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웃음)"

     

    서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헌재는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 3(각하)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반면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불응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4(합헌)대 4(일부위헌)대 1(각하)로 합헌 결정을 했다. 당시 서 재판관은 '일반적인 병역기피자를 처벌하기 위해 처벌조항이 필요하다는 취지일 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였다.

     

    기회가 된다면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

     

    "가장 고민했던 사건 중 하나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었어요. 5년을 고민한 끝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처벌조항에 대해서는 숙고 끝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처벌을 하면 안 되지만,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기에 합헌'이라는 법정의견을 냈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 고민을 했기 때문인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낙태죄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요.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결정을 내릴 때 생각하는 시간이 다른 재판관님들보다 긴 편이었습니다. 법관 생활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생각을 많이 하기'였는데, 생각하는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더 어려웠습니다. 헌재에 오는 사건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해 오는 것들입니다. 쉽게 말해 사용자와 근로자,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사건들이지요. 헌재는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곳이 아닐 뿐더러 그런 식의 접근으로는 그 어떤 분쟁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에서 누구의 주장이 보다 헌법정신에 부합하는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판단이 늦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152396_1.jpg

    서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중립성'과 '용기'라고 했다. 헌재의 결정은 청구인인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효력이 미치는 만큼 충분한 고민과 더불어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이다. 

     

    "재판관에게는 자신의 판단에 따른 '중립성'과 이를 지켜내고자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양 당사자 모두에게 비판을 넘은 비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모든 입장으로부터 칭찬을 받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가 절대 아닙니다. 재판관 스스로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서도 합리적인 납득을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해야 할 뿐 아니라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헌법적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소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충돌하는 가치관 사이에서 공평무사한 헌법적 결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모든 사건에 개인적인 이념적 성향만 관철시키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성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건에서 A사안에서는 보다 진보적인 판단을 내렸더라도, B사안에서는 보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재판관이 가져야 하는 '중립성'입니다. 저는 외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서는 보수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더군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판단과 이를 실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소신과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적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사회가 다변화되고 국민들의 생각이 다양해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헌재는 이런 부분을 알맞게 조정해 앞으로도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판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5년간 고민한 양심적 병역거부사건

    가장 기억 남아


    서 재판관은 퇴임 후 후배 법조인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꿈꿔왔지만 기회가 된다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경험과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아니면 공익활동을 하거나 변호사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고 싶고요. 많은 분들이 '일에만 매진한 38년'이라고 제 인생을 정리해주시곤 합니다. 그만큼 가족들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헌재에서도, 법원에서도, 삶의 대부분을 업무에 쏟았고 집에서는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그래서 퇴임 후에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하지 못해서인지 어떻게 하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합니다.(웃음)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가며 저라는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법관은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본연의 임무 다해야

     

    서 재판관은 후배 법조인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최근 사법부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을 싸고 내홍을 겪고 있는 만큼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법관들이 잘해온 것처럼 지금 닥친 어려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지 말고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법원장 경험이 있기 때문에 후배 법관들이 얼마나 업무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으며 열심히 노력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사람들이 바로 법관들입니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매몰돼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쭉 잘 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