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대리상 법제의 현황
중동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자주 부딪치는 법률문제들 중 많은 경우는 현지 로컬 에이전트(agent)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실무상 에이전트는 좁게는 대리인부터 넓게는 자문기관까지 다양한 의미로 쓰이며, 중동에서는 외국기업의 지사 설립을 돕는 스폰서의 경우 ‘로컬 서비스 에이전트’라고 칭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외국기업이 제조한 상품의 현지 판매를 대리 내지 중개하는 대리상(commercial agent)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UAE를 포함한 중동국가들은 제품 판매를 위한 대리상에 관하여 우리나라 상법과 유사하게 상행위법 등에서 일반적인 규정들을 두고 있으나, 이와 별도로 ‘등록된’ 로컬 대리상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대리상법(Commercial Agency Law)을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별 대리상법의 내용에 따라, 등록된 로컬 대리상은 배타적 독점권의 보장, 판매수수료(commission) 등 보상청구권의 보장, 계약의 임의해지 제한, 로컬 법원의 전속관할 등에 의해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기존 UAE 대리상법에 따르면, 동법에 따라 등록된 대리상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도 본인인 외국기업이 대리상의 동의 없이는 다른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상 해지하는 것이 제한되었고, 대리상과의 분쟁은 UAE 법원의 전속관할에 해당하여 중재합의가 있더라도 강행규정 위반으로 그 효력이 부정되었다. 카타르와 이라크의 경우 대리상법에 따라 등록된 대리상에게는 배타적 독점권이 보장되며, 요르단과 레바논은 UAE와 마찬가지로 중재합의가 불가능하고 대리상과의 분쟁에 대해서는 로컬 법원이 전속 관할을 갖는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대리상 등록이 강제되고 있어, 미등록 대리상에게는 벌금 또는 해산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이처럼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등록된 로컬 대리상에게는 특별법인 대리상법이 적용된다는 점은 동일하므로, 로컬 대리상과 거래를 하는 한국기업으로서는 해당 대리상이 해당 국가의 상공부 등에 등록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에 따라 적용되는 대리상법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대리상의 ‘등록’은 본인인 외국기업과 체결하는 대리상 계약(agency agreement 또는 distributorship agreement)이 상공부 등에 등록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업자등록(commercial registration)과는 별개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UAE 개정 대리상법의 내용과 그 의미최근 UAE 정부는 2022. 12. 15. 기존 대리상법을 40년 만에 전면 개정하는 새로운 내용의 대리상법(Federal Law No.3 of 2022 Regulating Commercial Agencies)을 공포하였다. 종전에 UAE의 로컬 대리상들은 다른 중동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강한 보호를 받았으나, 금번 개정에 의해 그 보호정도가 크게 완화되어 외국기업들의 투자가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정 대리상법은 공포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인 2023. 6. 15.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약기간의 만료는 종전에 대리상 계약의 해지사유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되어 있었으나, 금번 개정법에 따라 계약조건에 따른 일방의 해지(제9조 제1항 제b호)와 함께 계약기간의 만료도 해지사유에 포함되었다(제9조 제1항 제a호). 또한 종전에 대리상 계약 해지를 위해 요구되던 ‘정당한 사유’가 삭제되었고, 계약기간 만료 전 해지 절차, 해지에 동의하지 않는 당사자의 대리상 위원회에 대한 이의신청, 계약갱신을 원하지 않는 경우의 통지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었다(제10조). 종전에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전심기관인 대리상 위원회(Commercial Agencies Committee)에 심판 신청, 행정법원에 소송(우리나라의 당사자소송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을 순차적으로 제기하여 ‘정당한 사유’를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에, 대리상과 합의를 하지 않는 이상 장기간 소송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으나, 개정법에 의해 대리상과의 계약해지가 앞으로는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 대리상법 중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제9조 제1항 제a호) 및 계약조건에 따른 일방해지(제9조 제1항 제b호) 규정은 동법 공포일 전에 등록된 대리상들에 대해서는 동법 발효일로부터 2년간 적용되지 않으므로(제30조 제1항), 기존에 등록된 대리상계약의 경우에는 신법의 적용여부와 범위를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종전에는 대리상과의 분쟁에 대해서 UAE 법원이 전속관할을 가졌고 이에 반하는 합의 또한 무효였으나, 개정법은 중재합의를 허용하고 있는 점(제26조)도 외국기업에게 매우 고무적인 변화이다. 다만, 소송이나 중재 전에 대리상 위원회의 심판은 필요적 전치절차로서 여전히 거쳐야 하는 점(제24조)은 종전과 동일하다.
윤덕근 변호사(Trowers & Hamlins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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