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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사례

    주점하는 형수 위해 아파트 근저당 설정해 준 게 화근, 형제·부자간 신뢰회복 등 평범한 대화로 실마리 풀어

    분류 : 채권/채무/금전대차/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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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들어가면서

    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은 이렇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나. 헬렌 켈러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보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누리고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2. 사안의 개요(분쟁의 개요)

    가. 원고는 수년전 형수가 운영하는 유흥주점 주류대금의 담보로 주류공급업체 A사에 대하여 원고 소유 아파트에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기로 하였다.그런데, 최근 아파트에 대한 경매가 개시되어 확인하여 보니, A사는 채무자로 되어있고, 근저당권자는 피고 회사로 되어 있었다. 원고는 형수를 위하여 A사에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었을 뿐이고 피고에 대하여는 담보를 제공한 바 없으므로 위 근저당권은 원인무효라고 주장하면서 근저당권 말소소송을 제기하였다.

    나. 피고는 A사 관련자 B로부터 근저당권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받았고, 당시 근저당권자 피고, 설정자 원고 그리고 채권최고액이 모두 수기로 기재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위 근저당권은 적법하게 설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조정의 경위

    가. 원고와 피고는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적법 여부에 관하여 치열한 서면공방을 하였고, 원고로부터 근저당권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받아 피고에게 전달한 B가 법정에서 증언을 하였으나, 쌍방의 질문에 대하여 모두 명확하지 않은 답변을 하였다. 재판부는 증인신문 후 변론을 종결하고, 조정에 회부하였다.

    나. 제1차 조정기일에서 처음 양당사자는 근저당권설정의 적법성에 대하여 변론에서와 같이 공격과 방어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담보제공경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① 형수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유흥주점은 형님 부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원고는 형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담보를 제공하였다. 형수의 A사에 대한 채무는 채권최고액의 20%정도가 남아있다.

    ② 원고의 처는 아직 이 사건 근저당권이 원고가 형을 위하여 제공한 것임을 모르고 있으며, 남편의 사업상 이루어진 일로 원고가 알아서 잘 해결하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원고는 처가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원고가 잘 해결하리라 믿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③ 원고의 부친은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엄격한 분이어서 일정한 조건이 아니면 경제적 원조를 구하지는 않기로 부친과 약속하였기 때문에 형님의 일로 부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는 않다.

    ④ 원고는 경매를 정지시키기 위하여 채권최고액의 40% 정도를 공탁한 상태인데, 이 금액이라면 조속히 사건을 종결하고 가족들을 안정시키고 싶다.

    다. 이와 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피고측에서 원고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일기 시작하였고, 기일의 속행을 구하였다.

    라. 제2차 조정기일에서 피고측은 채권최고액의 30% 정도를 감액하여 주겠다고 제의하였고, 원고는 이를 받아들이되 변제금 마련을 위하여 시간이 필요하니 분할 변제할 수 있도록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피고측은 어차피 원고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양보를 하는 마당에 원고에게 기꺼이 기한을 제공하겠다고 하여 조정이 성립되었다.

    4. 이 사건 조정의 의미

    가. 이 사건 조정이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요소는 가족의 평온을 지키고자 하는 원고의 마음이었다.

    ① 원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 부부를 돕고 싶었다. 그런데, 당초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초래되었고, 본인도 형 부부도 이로 인하여 서로 민망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등기의 추정력이니 표현대리니 하는 말은 정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리인인 변호사로부터 설명을 들어 원고의 주장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판결이 본인에게 불리할 수도 있으리라는 예측은 하고 있다.

    ② 재판에 지는 경우 형님 부부와의 관계, 자신을 믿고 있는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엄격한 아버지는 큰 아들로 인하여 작은 아들이 당한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제적 원조를 할 수는 있을 것이나,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부담한 원고를 질책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생에게 담보제공을 요구하고,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끼친 큰 아들에 대한 실망이 말할 수 없이 크게 될 것이다.

    ③ 원고는 하루 속히 문제를 해결하여, 아내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여 신의도 지키고 싶고, 형님과의 우애도 종전과 같이 유지하고 싶고, 부친의 신뢰(부친과 형님 사이 포함)도 잃지 않고 싶다. 부부간의 신의, 형제간의 우애, 부자간의 신뢰! 어쩌면, 모두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가치들이다.

    나. 피고는 변론과정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원고의 입장을 전해 들으면서 원고에게 일부나마 감액이라는 양보를 할 수 있었고, 이러한 배려를 접한 원고는 금액의 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한을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었다. 피고는 가족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원고라면 피고와의 약속 또한 지키리라는 신뢰를 가질 수 있어 원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한의 유예를 주었다.

    다.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는 조정사건일 수 있다. 단지, 조정실에서의 대화로, 법률적 공방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원고의 입장이 피고에게 전해지면서 상호 감정적 대립상태를 벗어나 피고측은 원고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고, 원고 역시 피고의 이러한 배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적 평온을 찾게 되면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라. 때로는 상호 분쟁에 휘말리게 된 경위에 대하여 이렇게 진솔한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평범한 것을 지켜보고자 하는 원고의 마음이 조정실이라는 평온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대화를 통하여 피고에게 전달되면서 다툼과 분쟁을 이해와 평화로 바꾼 사건이었다.

    마. 평범한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불행해질 수 있는 이유를 사후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사건 원고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누리고 있는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