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염소 두 마리가 뿔을 맞대고 싸우다가 모두 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우화는 ‘순서를 정해 건넜다.’거나 ‘한 마리가 엎드리고 다른 한 마리가 그 위를 먼저 건넜다.’는 등으로 변질되어 오다가 요즘에는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 같다.
실생활에서도 이해관계가 이렇게 조정되어 공멸을 막고, 나아가서는 충돌하는 일조차 없어지는 것으로 바뀐다면 참 좋겠다.
2. 사건의 개요
가. 피고는 1997년경 건축한 다가구 건물의 소유자이고, 원고는 2003년경 인접 건물을 구입하여 이사 온 사람이다. 피고 건물의 정면 출입문이 원고소유 주차장 방향으로 나 있는데, 공교롭게도 현관 바로 앞이 경계선이어서 피고측은 원고의 토지를 밟지 않고는 도로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나. 피고는 건물 옆 부분에 새로 출입문을 내면 도로에 출입할 수 있었으나, 피고는 건축당시 원고 건물의 전소유자에게 상당한 금액을 주고 주차장 사용 승락을 받고 출입문 방향을 현재처럼 만든 것이었다.
다. 원고는 종전 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피고측에게 통행금지 및 사용료 청구를 하였고, 피고는 이를 거부하였다. 원고측은 점차 실력행사를 하여 경계선부근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자전거를 여러 대 세워 놓았고, 피고측이 이를 치우면 다시 놓기를 반복하였다. 원, 피고의 가족들은 여러 차례 말다툼을 하는 등 수년간 다투다가, 감정이 상해 급기야 상호 폭행을 하는 단계까지 악화되었다.
라. 원고는 결국 토지사용금지 및 사용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재판부에서 조기에 조정에 회부하였다.
3. 조정 경위
가. 쌍방 이야기 경청 단계 : 첫 조정기일에 원고 부부와 딸, 피고 부부와 아들이 나왔는데, 상호 감정대립이 격심한 상태라서 조심해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원고, 피고 및 가족까지 순서대로 사정을 설명하고 각자 유리한 주장을 하고, 상대방이 반박하고 재반박하는 과정을 거치되,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고 반박 내지 비난하는 것은 제지하고, 각자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순서대로 충분히 말하게 하였다. 주로 경위 설명과 분쟁상황 묘사, 상대방에 대한 비난 등이 주류였으나 내용에 대하여는 제지하지 아니하였다. 양측이 다투려고 하면 당사자들을 분리하여 말을 들으면서 충분히 사정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주자, 당사자들은 할 말을 거의 다 한 듯하고, 감정도 다소 누그러지게 되었다.
나. 진심 확인 단계 : 당사자들을 분리하여 본심을 묻자 원고는 피고가 건물 옆에 문을 내서 해결하기를 원하고, 피고는 정문 출입문을 못쓰게 한다면건물가치는 형편없이 저하되고 임대차도 불가능하게 되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피고에게 그렇다면 원고의 주차장 부지를 구입하거나 사용료를 내야할 것 아니냐고 설득하니, 피고는 이를 수긍하되 자금사정상 최소한의 부분만 분할하여 매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일부만 매각하면 주차장 기능을 상실하므로 전부 매매하여야 한다고 하여, 이 해결방법은 실패하였다.
다. 조정과 설득 단계 : 결국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법만이 가능하였는데, 양측 모두 이 방법으로 조정할 의사가 있었다. 기일을 속행하면서, 가족들이 상의하여 구체적방안과 조정조건을 마련해 오라고 하였다. 속행기일에는 양측 모두 감정이 많이 풀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였으나 조정안이 구체화되었다. 사용할 토지면적, 향후 사용료, 과거 사용료, 사용방식, 기타 조건 등에 관하여 각각 제안을 하고 항목별로 조율을 거쳤고, 합의가 어려운 부분은 조정관이 상황에 맞는 조정안을 제시하고 설득하여 최종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4. 이 사건 조정의 의미
가. 이 사건은 당사자 사이의 감정대립이 극심하여 과연 조정이 될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나, 이들의 속마음은 수년간에 걸친 분쟁에 염증을 내고 어떻게든 합의를 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당사자들이 직접 협상을 하였다면 자존심싸움이 되어 합의는 결렬되고, 장구한 소송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두 마리 염소처럼 될 가능성이 컸다.
나. 여러 시간에 걸친 어려운 조정이었으나, 조정이 성립되어 오랜 분쟁이 해결되자, 당사자들은 즉시 감정을 풀자고 하면서 관계회복을 시도하였고, 밝은 얼굴로 돌아가 평화로운 이웃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 이 사건은, 외나무 다리에서 맞닥뜨리게 된 경우에도 우회도로를 찾아 같이 점검을 하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니, 쉽게 조정을 포기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조정은 분쟁해결방법으로서 매우 효율성이 높다는 점을 절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