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edu
  • 법률신문 법률정보

    우크라이나 전쟁과 진퇴양난에 처한 국제사법재판소

    정하늘 대표(국제법질서연구소·외국변호사)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81287.jpg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반년을 넘어가면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군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도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이미 지난 5월에 역대 최대규모의 조사단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여 전쟁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된 국제재판소는 국제형사재판소뿐이 아니다. 국제공법의 최고법원이라 할 수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심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제소의 배경 및 심리 진행상황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2월 24일) 직후인 2월 27일 국제사법재판소에 러시아를 제소하였다. 그로부터 20여일 후인 3월 1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1)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을 즉각 중지하고 (2) 러시아가 지원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모든 단체, 개인, 무장세력 등에게도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의 무력행위를 중지토록 하고 (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분쟁을 악화시키거나 연장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중단할 것을 임시적으로 명령(provisional order)하였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구하는 본안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원래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국제연합 헌장('UN 헌장') 제94조 제2항에 따라 필요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집행할 수 있다. 그 경우 안보리 결의에 따른 강제력이 부여되지만 현실적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한 안보리 결의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언적 효력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한 제소장(application instituting proceeding)에는 특기할 점이 있다. 당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소위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하기 전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집단살해(genocide)’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제소장에서 이러한 주장이 러시아의 침공을 국제법상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고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제노사이드 협약')’에 의해 금지되는 ‘제노사이드’(협약상 집단살해행위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인권탄압행위를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됨)를 자행한 바 없고, 따라서 러시아의 소위 특별군사작전이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라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러시아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 대한 독립 승인행위가 제노사이드 협약상 근거가 없으며, 나아가 러시아에 제노사이드 협약을 근거로 한 어떠한 조치도 취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달라고 청구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제노사이드를 이유로 자행한, 무력사용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불법행위를 금지토록 명령하고, 러시아가 제노사이드를 이유로 취한 군사조치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발생한 모든 손해를 복원하도록 명령해줄 것을 청구했다. 요컨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2월 24일 자 침공을 정당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체약국들이 '제노사이드 행위를 국제법상의 범죄행위로서 방지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규정한 제노사이드 협약 제1조뿐이라고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바 없으므로 러시아의 침공은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해석, 적용, 달성(interpretation, application, fulfillment)과 관련해 당사국들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한다고 정한 제노사이드 협약 제9조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한 것이다.

     
    러시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한 입장서에서 우크라이나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취지로 반박한다. 즉,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의 국제법적 근거는 제노사이드 협약 따위가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을 포함한 천부적 자위권(inherent right of self-defense) 행사의 적법성을 확인한 UN 헌장 제51조 및 관련 국제관습법이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는 제노사이드 협약과 상관이 없는 이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침공 직전 연설을 통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특별군사작전이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단 취지였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침공 직전 연설에서 특별군사작전이 UN 헌장 제51조에 따른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했을 뿐 아니라 2월 24일 당일 러시아가 UN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신에도 러시아의 군사조치는 UN 헌장 제51조에 따른 조치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이 주장은 그저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3월 16일에 명령한 임시적 처분 중 1번과 2번 처분에 대해 15명의 재판관들 중 중국과 러시아 국적의 재판관 2명이 반대의견을 냈는데, 그들은 제노사이드 협약이 자위권을 원용한 무력행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력행사 그 자체가 ‘제노사이드’를 구성한다고 볼 수도 없으며,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대한 국가승인은 제노사이드 협약과 관계가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제노사이드 협약에만 근거한 우크라이나의 제소를 국제사법재판소가 심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특히 무력행사 그 자체의 적법성 판단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노사이드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르비아 폭격으로 촉발된 분쟁이나 인도-파키스탄 간의 무력충돌에 따른 분쟁 등 다수의 판례에서 인정된, 확립된 법리(jurisprudence constante)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제노사이드 협약을 침공의 근거로 인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노사이드 협약만을 근거로 하여 제소장을 작성한 우크라이나 측의 대응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으나, 우크라이나에도 사정이 있었다. 러시아는 국제사법재판소 규정(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제63조에 따른 강제관할수용선언을 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는 한 UN 헌장 제51조 및 국제관습법의 위반을 이유로 한 일반적 제소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가 아무런 유보(reservation) 없이 비준한 제노사이드 협약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규정에 근거해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쟁점과 딜레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 중 하나는 이 전쟁이 냉전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대표적인 성격 중 하나는 ‘규범에 기초한(rule-based)’ 국제관계인바, 이에 도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재판소들의 반응은 자연히 단호할 수밖에 없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즉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였고, 국제사법재판소도 침공 20여 일 만에 임시적 처분을 명령했다. 임시명령을 채택한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 재판관들은 러시아가 여러 계기를 통해 루한스크 및 도네츠크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를 우크라이나 침공의 이유로 들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전체 맥락을 볼 때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제노사이드가 실제 존재하였는지 여부와 러시아 무력사용의 적법성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제노사이드 협약상 갖는 권리와 우크라이나가 청구한 임시적 처분 간에도 연관성이 인정될 수 있다며 잠정적으로 관할권을 인정했다. 이는 임시적 처분을 구하는 단계에서는 관할인정요건이 엄격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었기도 하다(임시처분을 위해서는 본안에서 다투어질 사안에 대한 관할이 존재한다는 확인까지는 필요가 없고 관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일응(prima facie) 인정될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한편 소위 특별군사작전이 UN 헌장 제51조 및 국제관습법에 근거하였기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관할이 없다는 러시아 측 주장에 대해 다수 재판관들은 특정 사안이 1개 이상의 조약과 연관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제노사이드 협약에 근거한 심리 진행이 불허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다수 재판관들은 러시아의 무력사용이 '국제법상 매우 심각한 문제들(very serious issues of international law)'을 야기한다면서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된 사건의 범위는 제노사이드 협약에 관한 것으로 한정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임시적 관할권의 판단과 관련해 적용한 기준에 큰 오류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동일한 관점을 그대로 확장하여 최종 판결을 내릴 경우 정치적 판결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체약국이 제노사이드 협약 제1조를 명시적으로 인용하는 경우에만 동 조항의 위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국제사법재판소가 임시적 처분을 위해 채택한 기준에 의거해 우크라이나에 승소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한 모든 조치가 협약 제1조에 의해 준거된다는 일반적인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러한 판단에만 근거해 곧장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의 중지나 피해보상과 같은 구제를 명령한다면 제노사이드 협약 제1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는 조치는 UN 헌장 제51조와 같은 다른 법적 근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금지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즉, 국제사법재판소가 UN 헌장 제51조와 관련된 문제를 회피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구제청구를 승인할 경우 근본적인 흠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러시아가 실제로 제노사이드 협약 제1조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는지 여부는 엄밀히 말해 조약의 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닌 사실관계의 문제이다. 러시아가 정치적인 이유로 심리에 불참하여 궐석재판을 통해 우크라이나 측 주장이 무난히 인용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나, 적극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러시아는 3월 7일에 있었던 심리기일에는 불참했으나 서면 입장서를 제출하였다). 그 경우 정황증거밖에 제출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에 비해 직접 증거인 내부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러시아 측이 유리할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청구가 여하간의 이유로 기각되거나 각하될 경우 세부 논리와 상관없이 국제사법재판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이에 따른 정치적·형평적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이미 영국(8월 22일), 뉴질랜드(7월 28일), 리투아니아(7월 25일), 라트비아(7월 21일)가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 규정 제63조에 따른 소송참여선언(declaration of intervention)을 하였다. 이래저래 국제사법재판소가 진퇴양난에 처한 셈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형식적 구제의 제공보다 사안의 본질을 판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는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의 UN 헌장 제51조 위반여부를 심리할 관할이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제노사이드 협약에 근거한 우크라이나의 청구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안의 본질을 다룰 관할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든 우크라이나의 손을 들어줄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민감한 사건일수록 법치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심리의 중립성과 법리의 엄정성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세계의 패권질서가 좌우되는 거대한 사건에 대해 사법판단이 직접적인 규제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이 선언하는 바는 분명 인류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가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전쟁의 법적·도의적 정당성과 직결되어 있기에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판단만을 근거로 러시아에 무력사용을 중단하고 피해보상을 하라고 판결하려면 법리적으로 많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제법적 본질은 어디까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력사용에 관한 국제법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UN 헌장 제51조에 관한 문제이다. UN 헌장 제51조는 특정 상황에서의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안보리 결의가 있기 전까지는 오로지 자위권에 근거한 무력사용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제사법재판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UN 헌장 제51조에 따른 ‘집단적 자위권’의 적법한 행사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를 정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제노사이드를 자행하였는지 여부와 러시아의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는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에 대한 심리를 통해 후자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관계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그렇게 확인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러시아의 UN 헌장 제51조 위반여부에 대한 의견을 간결하게라도, 그러나 명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견은 설사 방론(obiter dictum)의 형식으로 제시되더라도 충분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러시아의 UN 헌장 제51조 위반을 원인으로 한 구속력 있는 명령을 내릴 관할권은 인정되기 어렵겠지만, 러시아가 심리과정에서 UN 헌장 제51조를 항변사유로 인용한 이상 그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사안의 본질에 관한 쟁점을 회피하면서 어떻게든 우크라이나가 청구한 구제를 제공하기 위해 실체적인 오류를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특히 이미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다수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러시아를 제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법재판소의 형식적 구제명령이 더해진들 달라질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국제공법의 정의를 역사의 한 켠에 바로 세우는 한편, 그렇게 세운 정의가 정치적인 공격에 훼손되지 않도록 법적 정당성을 갖추는 것이다.

     

     

    정하늘 대표(국제법질서연구소·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