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000억 원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불러온 '라임자산운용(라임) 사건'으로 큰 손해를 본 개그맨 김한석 씨와 아나운서 이재용 씨 등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소한 가운데, 29일 서울고법에서 2심(2022나2017964) 첫 재판이 시작된다.
앞서 1심은 민법 제110조를 적용해 라임 펀드 판매 행위를 사기에 의한 계약 체결이라고 판단해 투자자들의 계약 취소 주장을 받아들여 대신증권 측에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2심에서는 펀드 상품의 투자자가 증권사에 투자금 반환을 요구할 경우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책임이 아니라 민법상 사기에 따른 취소가 법리상 가능한지 여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민법 제110조는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1항) △상대방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3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2항) △전2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3항)'고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에서 민법 제110조를 적용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의견과 함께, 1심 판단이 유지된다면 비슷한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을 경우 증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엄태섭(40·변호사시험 2회)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일반적인 사인 간의 계약에서도 민법 제110조가 적용되는 사례가 많지 않은데, 투자계약에 대해 이를 적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사실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투자계약과 관련해 유사 사례 피해자들로부터 민사소송 제기가 이어지는 등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1심은) 증권사와 매매 계약이 성립됐다며 민법 제110조를 인정했는데, 이러한 논리라면 앞으로 금융권에서 펀드를 위탁판매할 경우 매매의 주체가 되어 사기에 따른 원상회복 의무를 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금융권에서 펀드 판매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본시장법이 아니라 일반법인 민법을 적용한 것은 펀드 판매 사업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변호사는 "투자 상품 판매에서는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중요하거나 위험한 고지사항을 알리지 않고 일부러 속이거나 숨겨서 판매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야 1심과 같은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며 "민법 제110조가 적용됐다는 것은 그만큼 대신증권 측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입증됐다는 말"이라고 했다.
이 사건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문성관 부장판사)는 지난 4월 "대신증권은 김씨 등에게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펀드의 실제 거래구조, 수익성 및 위험성 등은 거래의 중요사항에 해당되는데, 대신증권 직원은 펀드의 수익증권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중요사항에 관해 오해를 유발시키거나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사실과 다르게 고지했다"며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각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 착오를 일으켜 대신증권과의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자들이 민법 제110조에 따라 각 매매계약을 취소한다는 의사가 표시된 소장부본이 대신증권에 도달했다는 것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대신증권은 매매계약 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으로서 투자자들이 지급한 매매대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김 씨 등은 지난 2020년 2월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이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손실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완전히 안정적', '확정 금리형 상품' 등의 표현을 사용해 펀드를 판매했다"며 소송을 냈다.
한편, 장 전 센터장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과 벌금 2억 원을 선고 받고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박수연·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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