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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위한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의 의미

    류부곤 교수(경찰대 법학과)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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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문제의 제기
    "저 여성은 성형수술을 했다", 혹은 "저 남자는 대머리인데 가발을 쓰고 다닌다"와 같은 표현이 형법상의 명예훼손행위가 될 수 있을까? 형법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 '사실의 적시'를 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은 사람의 인격가치 또는 행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적 명예라고 할 수 있으므로 명예훼손으로 평가되는 사실의 적시 역시 이러한 외적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일 것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여기에서 적시되는 사실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일차적 요건이 도출된다. 즉 그 내용을 사람들이 인지하였을 때 해당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저하될 수 있는 내용을 적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형법조문은 이러한 외적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을 유형화하지 않고 있으며, 학계나 실무계의 일반적인 해석도,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데 충분한 사실'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반드시 전과사실이나 이성과의 불륜관계 등과 같은 악사(惡事)·추행 등을 지적하지 아니하여도 결과에 있어서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킬 수 있는 사실이면 충분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회적 가치 속에는 인격, 기술, 지능, 학력, 경력 등은 물론, 건강, 신분, 가문 기타 사회생활에서 존중되어야 할 모든 것이 포함된다고 할 뿐이다. 특히 사회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사실'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 상태나 현상을 내용을 하는 경우에 명예훼손행위의 요건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


    Ⅱ.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에 대한 구체적 판단례
    ① '이성관계' 사건(대법원 1991.05.14. 선고 91도420 판결)

    "명예훼손죄에 있어서의 사실의 적시는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으면 족한 것이다. 원심이 교수인 피고인이 학생들 앞에서 피해자의 이성관계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정당한 것이다."

    이 사례에서 적시된 사실은 '피해자의 이성관계'이다. 대법원은 특정인의 이성교제 사실이 그에 대한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해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교제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전혀 부정적인 사실이 아니지만, 이성교제는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어서 공개여부는 개인의 인격과 밀접한 사실이라는 면과, 이성교제 사실이 공개되는 것이 자신이 소속된 집단 등에서 타 구성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대법원은 당사자의 명예와 관련된 사실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의 타당성은 평가시점에서의 사회통념이나 문화에 의해 크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② '동성애자' 사건(대법원 2007. 10. 25. 선고 2007도5077 판결)

    "피고인은 인터넷사이트에 7회에 걸쳐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한 사실이 있는데, 현재 우리사회에서 자신이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 사회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하여 이 사건 글을 게재한 점 등 그 판시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위와 같은 글을 게시한 행위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 사례는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적시한 사례이다. 하지만 동성애가 사회규범적으로 위법하거나 그 자체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동성애자라는 표현이 야기할 '사실적 피해'를 명예훼손의 내용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인격적 가치와 관련한 사실의 속성보다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관계적 측면'에서 그 사실이 가지는 영향력을 판단의 중심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에 보는 바와 같이 그 판단기준이 일정치는 않은 것 같다.

    ③ '소주회사 일본지분' 사건(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8도6728 판결)

    "'㈜진로가 일본 아사히 맥주에 지분이 50% 넘어가 일본 기업이 됐다'는 부분은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소주라는 상품의 특수성 때문에 (중략) 일부 소비자들이 '참이슬' 소주의 구매에 소극적이 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사회통념상 피해자 회사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훼손적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사례는 '특정회사 지분의 구성비율'이라는 내용의 사실을 적시한 사례로, 주식회사의 지분소유관계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에 대한 명예침해성 여부를 다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러한 표현이 사회적인 관계에서 사실상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회통념상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부정하고 있다. 앞서 '동성애자'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히 주목을 받는 점'을 명예침해성의 주요한 근거로 들었고, 사실을 적시한 행위자가 '부정적 의도'를 표출하기 위하여 사용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과 비교해 볼 때,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소주라는 상품의 특성상 소주를 생산하는 기업의 대주주가 일본기업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과 함께 부정적 여론을 형성할 상당한 가능성이 있음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일반인의 적시행위에는 '부정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의문이 남는 판결이다.

    ④ '전경기동대 항명' 사건(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1226 판결)

    "전체적인 내용은 경찰 상부에서 내린 진압명령이 불법적이어서 이에 불복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취지로서, 이러한 진압명령에 집단적으로 거부행위를 하겠다는 것이 이 사건 기동대 소속 전경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객관적으로 저하시키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중략) 한편 이 사건 글을 접하게 된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사회통념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 글로 인하여 이 사건 기동대 소속 전경 개개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근본적으로 변동될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시위진압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동대 소속 전경들에 대하여 '상부의 진압명령을 거부하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한 사례에 대하여 대법원은 사회일반인들의 인식이나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사례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집단의 규범에 의하면 부정적 평가를 받을 여지가 상당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사실의 명예침해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대법원의 명확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유사한 사례로,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한 사람의 고발사실을 적시한 것은 사회일반인의 관점에서 명예를 훼손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도6687 판결). 그러나 '정당한 명령에 대한 명령불복종'은 징계 등 처벌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조직의 규범에 따른 평가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관점에 의해서도 부정적 평가를 받을 여지가 적지않아서 가치중립적 사실의 적시사례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일회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방식은 사실 자체가 부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판단 당시 사회일반의 정황 등에 근거한 일시적인 사실적 평가에 기하여 명예침해의 위험성이 판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형법규범의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의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공통적인 시사점은 명예침해의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라는 것은 ‘사회관계적 측면에서의 인격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 사실’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관계적 인격침해의 가능성은 사회일반인의 객관적·보편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Ⅲ. 결론

    형법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는 명예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공존에 필요한 '인격적 존중과 대우'를 위한 사회적 평가라는 점에서 가치중립적인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인격적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명예침해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일정한 규범적 기준에 의하여 평가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 사실의 적시가 가져올 인격침해적 속성 그 자체에 중점을 둘 것인지(즉 구체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사회일반의 사실적 평가는 부차적 요소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관계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여 이를 중점적으로 고려할 것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논의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여러 판례사례를 분석하여 얻은 공통적인 시사점은 명예침해의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라는 것은 '사회관계적 측면에서의 인격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 사실'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관계적 인격침해의 가능성은 사회일반인의 객관적·보편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의 표현으로 "그 사람의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인간적으로 그 사람에게 싫은 감정이 느껴지거나 가까이 하기가 꺼려진다"와 같은 보편적 반응이 나오는 경우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특정한(한정된) 집단의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사실, 단순히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인간적 특징 등은 명예훼손의 사실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류부곤 교수(경찰대 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