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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박물관이 필요한 시간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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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1일 파리고등법원이 13명의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사법의 대재앙’이라 불렸던‘우트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프랑스 북부의 소도시 우트로에서 1997년부터 2000년 사이 발생한 아동성폭력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프랑스 사법시스템의 취약점과 기능부재, 무죄추정원칙의 실종과 과도한 미디어의 보도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발생한 참사였다. 2000년 9월 국립사법관학교(ENM)를 수료하고첫 발령을 받은 29세의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가 진술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아동 피해자들의 진술을 믿고 18명을 구속했으나 1심에서 자백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이 무죄로 확정되었다. 그중 한 명은 1심 재판이 시작되기 전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프랑스 혁명 후 1808년 형사소송법에 도입된 수사판사제도는‘예심’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때 우리나라에도 시행된 바 있고 독일은 1974년, 이탈리아도 1989년 폐지될 때까지 시행된 제도다. 독립된 판사가 외부의 영향력을 배제한 채 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소추와 판결의 분리가 명확하지 않고‘자백을 받기 위해 계속 구금’해 둔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높았다. 우트로 사건에서도 무죄 확정된 피고인들이 1년~3년간 미결구금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명백한 사법의 실패였고 프랑스 사회가 들끓었다. 파리고등법원 결심공판 때 이례적으로 파리고등검사장이 출석해 사법을 대표해 사과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 개혁을 지시했고 프랑스 의회도 2005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프랑스 법무부도 대대적인 감찰을 진행한 뒤 감찰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사법관 선발과 교육, 인사제도의 결함, 수사판사에 대한 과도한 권한 집중, 장기간 미결구금 상태로 방치될 수 있는 구속제도의 허점, 무죄추정원칙을 담보할 수 있는 대심적(對審的) 방어권 보장 제도 미흡, 아동 진술의 신빙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미비, 법관의 책임 소홀, 선정적인 보도경쟁을 벌인 미디어의 책임 등 많은 문제들이 밝혀졌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듯
    같은 문제 반복되는 일 없게
    범정부적 조사위 구성 등 대책 필요


    프랑스 정부와 의회는 조사 결과 밝혀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사법개혁에 착수했다. 종전의 성적 위주 국립사법관학교 선발을 지양하고 인성과 자질을 겸비한 사법관 후보자 선발과 교육, 사법관 인사제도 개혁, 단독제인 수사판사제도의 3인 합의제 변경, 사법관의 책임 강화, 대심적 요소가 보완된 피고인의 방어권 강화 등 제도개혁이 이루어졌다. 1996년 무렵부터 시작된 아동성범죄에 대한 과도한 정치권의 관여,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에 대한 반성,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와 재판 확보 방안들도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한창이다. 경찰은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켜 수사를 진행중이다. 수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을 보면 염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용산구청장과 불법건축물이 문제된 해밀턴호텔 대표를 출국 금지했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직무유기 혐의 입증은 쉽지 않은 문제다. 호텔 불법증축도 2010년 이루어진 것이라면 공소시효도 경과했고 사고와의 인과관계 입증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집권여당이 갖은 무리수를 동원해 밀어붙인‘검수완박’의 결과 경찰이 경찰을 수사할 수밖에 없는 희극적인 풍경을 지켜보는 것도 불편하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는 ‘바사호 박물관’이 있다. 발트해 패권을 장악하고 스웨덴을 북유럽 대국으로 성장시킨 국왕 구스타프 2세가 1620년대 유럽 최강 함대를 목표로 건조했다 침몰한 바사호를 전시한 공간이다. 바사호는 지나치게 큰 배에 과도한 중장비, 너무 높은 마스트 등 모두 최대이길 바랐던 국왕의 무리한 주문을그대로 수용한 결과 첫 항해 시작 직후 침몰했다. 스웨덴은 1956년 발견되어 인양한 바사호로‘실패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성공에서 보다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세월호 사건 조사 등 목적으로 사회적 참사 특별위원회(사참위)가 구성되어 3년 9개월간 547억 원이 투입되었지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고가 잇달았지만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정쟁과 수사를 뛰어넘는 범정부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는‘실패의 박물관’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