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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否認)할 권리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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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자백할지, 아니면 부인을 할지를 묻는다면 변호인에게는 다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라”고 조언할 수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우답(愚答)이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자백일 수도 있고, 부인일 수도 있고,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어 원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의 경험은 자백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자백은 판단자의 심리적 부담을 해소하여 주어 부인에 비해 중한 결과를 가져올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자기부죄(自己負罪) 금지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으면 무죄가 선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2년 1월부터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배제되자 검찰은 그에 대한 대책으로 수사단계에서 범행을 자백하였으나 이후 법정에서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해 구형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판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구형량을 높인다는 것이 검찰에서의 자백을 참작하여 기준보다 낮추어 구형량을 정하였는데,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여 부인하는 경우에 원래의 기준에 맞는 구형을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준보다 무겁게 구형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부인을 구형량을 높이는 요소로 삼았다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의 판결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피고인에 대한 형을 가중하는 이유로 언급하기도 한다. 대법원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나 행위가 피고인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고(대법원 2001도192 판결), 여러 판결에서 형을 가중할 때 이를 인용하기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검찰과 법원의 태도는 자백을 형의 감경사유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을 형의 가중사유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의하면 ‘진지한 반성’은 감경사유로 이해되지 가중사유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지한 반성’이나 ‘현저한 개전의 정’은 집행유예 선고의 긍정적 요소이나, 부인이 집행유예의 부정적 요소로 되어 있지는 않다. 부인을 형의 가중사유로 한다면 이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부인하고 있으므로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자백과 부인의 경계가 언제나 명확한 것도 아니다. 과실범, 특히 대형안전사고와 같이 다수인의 과실이 중첩되고 부분적 과실만으로 전체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에는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과실은 주의의무 위반이므로 사실관계보다는 주의의무 위반이라는 규범적 요소에 대한 다툼이 많은데, 이를 범행을 부인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의 감경사유가 없다는 것이지 형의 가중사유가 있다는 주장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고 다투고 있어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나오고 있고, 피고인은 다투면서도 다투는 모습으로는 비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법정 현실이다. 부인한다고 형을 가중하고, 자백한다고 형을 감경한다면 기준이 되는 형은 자백도 부인도 하지 않을 경우라는 논리적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부인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지 자백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Nemo tenetur se ipsum accusare’(누구도 자신을 고발할 수 없다)는 법격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