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자치에 기반한 법률 행위에 대하여 규율하는 일반법인 ‘민법’은 1960년에 제정 시행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정이 있었지만 타법 개정의 반영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법 내용의 개정이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민법은 사적 행위의 근간이 되는 사항들을 규율하기에 가급적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변경에 신중을 기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 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뒤따르기 위한 친권자의 징계권 폐지(2021. 1.),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침해에 대한 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 중단(2020. 10.), 친생부인의 허가 추정 규정의 수정(2018. 2.), 면접 교섭권의 확대(2017. 6.), 후견인 결격 사유 조정(2016. 12.) 등의 개정은 계속되었고, 이에 비하여 재산권적인 사항에 대한 개정은 많지 않았다. 그러한 점에서 법무부가 작년 말에 입법 예고한 디지털콘텐츠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내용을 규율하는 민법 개정안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이 개정안은 민법 제2장(채권)의 제3편(계약) 내에 제16절 디지털제품 제공계약을 신설한 것이다. 그 내용은 디지털콘텐츠에 관한 거래에 있어서 제공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기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을 제공할 의무 및 계약기간 동안 이러한 기능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업데이트 의무를 부여하고(합리적 품질 제공 및 유지 의무), 하자담보책임의 존속기간을 통상의 매매계약에서 인정되는 1년보다 긴 2년으로 정하며(하자담보책임), 계약 종료 이후의 당사자간의 법률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율하고(종료 이후의 법률관계), 합리적 범위 내에서 디지털 콘텐츠 제공자가 제공 제품 등을 변경하여 제공할 수 있는 권한(제공자의 변경권)을 신설하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 2019년에 소위 EU디지털콘텐츠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내용의 입법 절차를 이미 진행한 바 있는데 이러한 외국의 사례를 단순히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에 특별법인 약관 규제법이나 전자상거래법에서 다루어지던 내용을 민법을 통하여 원칙적인 사항을 규율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긍인하였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정부가 이 개정안을 설명하면서 소위 ‘가챠 게임’에서 확률정보의 거짓 제공, 확률 조작 등에 대한 적절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굳이 해당 조항을 도입하여야만 이러한 규제가 가능한 것인지, 민법의 개정 이유를 일종의 사업자 규제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한지 등의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실상에서 많이 이루어졌지만 전통적인 계약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 온라인상의 거래 내지 법률행위에 대하여 일응의 기준을 마련한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향후 개정안에 대한 많은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태욱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