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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의 문장은 새로 태어나야

    김세중 (전 국립국어원 연구원·《민법의 비문》 저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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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2023년 업무 보고에서 5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민법과 상법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조인은 아니지만 언어학자로서 《민법의 비문》을 출간한 필자로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법무부가 민법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니 큰 기대를 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12월 8일 국회에서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 12월 27일에 대통령이 이를 공포했고 개정된 민법은 올해 6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된 내용은 나이 계산에 관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민법 제158조가 개정되었는데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가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滿)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年數)로 표시한다"로 바뀌었다.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질적인 제도 변화는 없고 표현이 좀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민법은 1958년 제정 당시부터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이번 민법 개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다만 만 나이 사용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높아진다면 개정의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다지 의미 없는 민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민법은 참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민법 안에 든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문장과 표현에 숱한 오류와 문제점이 있다. 민법에는 크게 보아 무조건 바로잡아야 할 문법적 오류와 될 수 있으면 고치는 게 바람직한 표현상의 문제점이 섞여 있다. 문법적 오류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비문을 가리키고 표현상의 문제점은 고치면 좋지만 안 고쳐도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들이다.

    우선 비문으로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를 들 수 있는데 법조인들은 워낙 익숙해져서 문제를 못 느낄지 몰라도 실로 어이없는 비문이다. '완성하다'는 목적어를 요구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 없이 쓰였다. '완성된다'라야 옳다. '조건이 성취한', '상대방이 확정한' 같은 표현도 모두 '조건이 성취된', '상대방이 확정된'이라야 한다. 민법에 참 많이 나오는 '~에 좇은', '~에 위반한'도 '~을 좇은', '~을 위반한'이어야 하는데 조사가 잘못 쓰였다.

    민법 제77조 제2항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는 쓰다가 만 문장같이 문법의 기초도 갖추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비문인데 제정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민법 제31조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못한다"라야 한다.

    이상 예시한 문장들은 문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무조건 고쳐야 하는 것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민법 안에는 비문은 아니지만 고치는 게 바람직해 보이는 표현들도 많다. '그러하지 아니하다'를 '그렇지 않다'로, '작성하여야'를 '작성해야'로, '~한 때로부터'를 '~한 때부터'로, '변제하지 못한다'를 '변제할 수 없다'로 고친다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수인’을 ‘여럿’으로, ‘최고하다’를 ‘촉구하다’로, ‘구거’를 ‘도랑’으로, ‘몽리자’를 ‘이용자’로 바꾸어도 역시 친근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고치지 않는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요는 왜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명백히 틀린 문장이 지금껏 민법에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법조문도 한국어 문장이고 법조문이야말로 가장 정확해야 하는데 왜 문법을 어긴 문장이 버젓이 법조문에 남아 있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민법은 1950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1950년대 한국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에 일본 민법을 크게 참고해서 우리 민법전을 작성했고 그래서 일본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한자 혼용을 한 점,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게 그렇고 법조문에 사용된 단어들이 일본어 단어인 예가 많았다. 더구나 국어 문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도 희박했던 듯하다.

    그러나 제정 당시야 불가피하게 오류가 있었더라도 그 후 바로잡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법이 지니는 권위에 눌려 오류를 바로잡을 생각을 누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차피 법조문은 해석이 필요한 만큼 법해석을 통해 입법의 취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있으니 법조문에 오류가 있더라도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이렇게 민법의 숱한 문법적 오류가 고쳐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사이 수많은 법학도들의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문장과 표현이 어려워 민법을 ‘영원한 숙적 과목’이라고 한 어떤 로스쿨생의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방치되고 있는 민법의 비문은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니 그들의 인권 문제라고까지 여겨진다. 또한 민법의 비문은 일반 국인의 민법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법조문에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200군데가 넘다니 대한민국을 문명국가라 할 수 있나. 국격이 말이 아니다. 일본어 오역이 지금껏 남아 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법조문이 문법을 지켜야 함은 기본적인 상식인데 상식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민법의 문제점을 정부에서 모르고 있지 않았다. 법제처가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오래전부터 펼쳐 왔다. 민법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에서도 민법 문장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2015년 제19대 국회에 민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임기 중에 통과되지 않아 폐기되었고 2018년 제20대 국회에도 제출했지만 역시 폐기되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법에는 무조건 고쳐야 하는 명백하게 틀린 문장과 이왕이면 고치는 게 바람직한 표현이 섞여 있다. 후자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전 조문을 고쳐야 한다. 이런 전면 개정안을 제19대, 제20대 국회는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의 기본법인 민법은 방대한 법률이다. 이를 반듯하게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두 단계로 나누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조건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백한 비문만을 먼저 고쳐서 오류를 없애고 다음 단계로 민법의 문장을 좀 더 편안하게 읽힐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다듬는 개정을 하는 것이다. 후자의 작업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권위 있는 기구나 위원회에 일임하여 일괄 수정하게 하고 국회가 안심하고 이를 받아들여 개정하면 좋을 것이다.

    민법은 단순히 수많은 법률 중의 하나가 아니다. 국가 기본법이다. 이런 민법에 문법적 오류가 그득한 채 지난 65년을 보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법학계는 물론 국어학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민법을 바로 세울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정에 나서야 한다. 다행히 법무부가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민법의 문장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 최소한 비문만이라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김세중 (전 국립국어원 연구원·《민법의 비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