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2.]
I. 서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가 2021. 5. 5. 발표한 역외보조금 규제 법안(Foreign Subsidies Regulation, FSR)의 시행이 2023. 7. 12.로 임박한 가운데, 지금까지는 주로 기업결합 등의 관점에서만 리스크 분석이 이루어져왔고 아직까지 해당 법안이 해외에서 EPC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검토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하에서는 EU의 역외보조금 규제법안이 우리 기업의 해외 EPC 사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이슈들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살피며, 추후 우리나라 건설사 등 EPC 기업들의 선제적인 리스크 대비에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II. EU의 역외보조금 제도 개요
1. 입법배경
EU는 회원국의 국가보조금을 경쟁정책 차원에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 등 제3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은 역외기업은 EU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EU의 국가보조금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i) 외국에서 받은 역외보조금은 기업결합 심사시 고려 요소가 아니었고, (ii) 비 EU국가의 보조금은 국가보조금 심사대상에서 제외 되었는바, 이로 인한 역내 기업이 역외 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비판과 불만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EC는 2021. 5. 5. ‘역내시장 왜곡 역외보조금에 관한 유럽의회 및 이사회 규정안’(역외보조금 규제 법안, Proposal for a Regulation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n foreign subsidies distorting the internal market)을 발표하였고, EU 이사회는 2022. 11. 28. 역외보조금 법안 최종안을 승인하였습니다. 이 법안은 2023. 1. 12. 발표되어, 2023. 7. 12.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2. 주요내용
1) 역외보조금 제도: 일정 요건 하에 역외 기업이 ① EU 기업을 인수(M&A)하거나 ② 공공조달(public procurement)에 참여하는 경우, 사전에 EC에 신고하고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③ 신고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보조금 지원을 받은 역외 기업이 유럽연합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EC는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습니다.
2) 보조금 범위: 무이자 대출, 대출 보증, 재정 인센티브, 세금 면제 등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기업에 재정적 기여를 하는 경우가 포함하는 등 매우 포괄적입니다. 역외 기업들이 자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경우는 물론, EU 역내 기업이 역외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우도 포함합니다
3) 경쟁 왜곡: ‘역외보조금으로 인해 EU 시장에서 기업의 경쟁상 지위가 개선되고 이로 인해 실제 또는 잠재적으로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 구조조정 계획이 없고 기업의 상당한 자구노력이 없는 유동성 위기 기업에 대한 지원, ② 규모·기간의 제한이 없는 무제한적인 채무 보증, ③ 기업결합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 ④ 공공조달에서 과도하게 유리한 입찰을 가능하게 하는 보조금의 경우 경쟁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과거 3년간 5백만 유로 미만인 경우에는 경쟁왜곡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III. 해외 EPC 사업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제도
EU의 역외보조금 관련 법안 중 해외 EPC 건설 및 조선 업계 등에서 특별히 유의하여야 할 제도는 공공조달 참여 사전신고 및 직권조사와 관련한 것입니다.
1. 공공조달 참여 사전신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의 사업은 공공조달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공공조달 참여 사전신고 제도가 어느 경우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신고요건
공공조달 가액이 250백만 유로 이상인 경우 입찰 참여기업은 최근 3년간 보조금 수혜내역을 계약당국에 신고하여야 합니다. 수혜내역을 신고 받은 계약당국은 이를 EU 집행위에 전달하게 됩니다.
신고요건 중 EPC 프로젝트 등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공조달 해당 여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이나 해당 국가의 공공조달 관련 법령에 따른 입찰 절차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사 시설 관련 프로젝트나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의 프로젝트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속한 입찰 절차 진행이 필요하거나 보안이 요구되는 프로젝트 등의 경우 공공조달 관련 법령의 예외를 적용 받을 수 있는데, 해당 국가의 공공조달 관련 법령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절차라도 EU 역외보조금 규제의 적용 대상에는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 설령 발주자가 자국의 공공조달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EU 역외보조금 규제 법령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는 FSR 상 공공구매절차의 정의 규정(FSR 제2조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법문상 모호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용 시점 관련 사항
FSR 제53조 제4항은 본 규정의 발효일인 2023년 7월 12일 이전에 낙찰된(awarded) 공공조달계약 또는 해당 일자 이전에 시작된 절차(procedures initiated)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낙찰(awarded)의 의미가 계약의 실제 체결 시점인지 또는 낙찰통지서(letter of award)가 발급된 시점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정함이 없으므로 두 기준에 따라 적용 시점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 및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편, 공공조달절차의 시작 시점을 공고 시점으로 볼 인지, 공고 시점에는 사전공고도 포함되는 것인지 등과 관련해서도 불명확한 측면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공고의 내용,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 심사 단계 및 기간
심사는 예비조사 접수일로부터 60일, 심층조사 접수일로부터 200일이며, 기업결합 심사와 달리 영업일(working day) 기준이 아닌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3) 절차위반시 제재의 내용
허위자료 제출 시 매출액의 1%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되고, 미신고 시 매출액의 10%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4) 시정조치
보조금으로 인해 저가 입찰 등 부당한 혜택(unduly advantageous)을 누린 경우 계약체결이 금지되고 차순위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2. 직권조사(ex officio review)
1) 적용범위
직권조사의 경우 신고요건 미만의 기업결합·공공조달을 포함하여 보조금에 따른 경쟁왜곡이 의심되는 모든 상황(all other market situation)에 적용됩니다.
EPC 프로젝트의 경우 주시공사(main contractor)는 주기기 공급 업체 등 다양한 업체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가령 이러한 업체들이 자국으로부터 현저한 보조금을 받고 있고 해당 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서 EPC 프로젝트 금액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공공조달 계약자로 선정되는 것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면 이는 결국 EU 역외보조금 제도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됩니다.
한편 컨소시엄 또는 Joint Venture (JV)를 이루어 EPC 프로젝트에 입찰하는 경우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령 컨소시엄 또는 JV 구성원 중 한쪽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EU 역외보조금 규제의 적용 대상이 된다면 해당 컨소시엄 또는 JV 자체에도 규제의 영향이 미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컨소시엄 또는 JV 구성원 중 일부터 자국 보조금으로 인하여 현저한 이익을 얻고 있다면, 그 영향은 컨소시엄 또는 JV 전체에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규제의 영향은 해당 JV가 법인인 경우(incorporated JV)와 계약으로만 JV를 구성하는 경우(unincorporated JV)에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EU 역외보조금 제도가 어떻게 실무에서 적용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직권조사 제도의 목적을 고려할 때 특정 행위가 EU 역외보조금 제도의 취지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의심이 있는 경우, 관계 당국이 직권조사 권한을 발동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 조사절차 및 수단
직권조사의 경우 예비조사 후 경쟁왜곡이 의심되는 경우에 심층조사를 실시하게 되는데 경쟁왜곡 효과와 투자의 긍정적 효과를 비교하여 위법성을 판단합니다.
조사 수단은 자료제출 요청 및 현장조사 방식이 모두 활용 가능하고, 피조사기업과 제3국 정부가 동의하는 경우 제3국 현장조사도 가능합니다. 특히 특정 분야 등에서 보조금에 따른 경쟁왜곡이 의심될 경우 해당 분야의 기업, 사업자단체 등에게 대한 시장조사도 가능합니다.
3) 절차 위반 제재
자료 미제출 및 허위자료 제출 시 전체 매출액의 1% 이내 과징금이 부과되며, 일일 평균매출액의 5%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됩니다.
한편, 시정방안(commitment), 임시조치(interim measure) 불이행 시에는 처벌이 가중되어 전체 매출액의 5% 이내, 일일 평균매출액의 5%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특히, 피조사기업이 자료 미제출 등 조사를 방해할 경우 이용 가능한 사실관계만을 기초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4) 시정조치
피조사기업이 시정방안을 제출하거나 EU 집행위가 제재를 부과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제3국에 보조금 반환(이자포함), 투자제한 등이 포함됩니다.
3. 잠재적 이슈
한편 EPC 프로젝트의 금융조달 등이 국책은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 이행보증(performance bond) 발급 등에 공공 금융기관이 관여하는 경우의 경우도 그 규모 및 사안에 따라 EU 역외보조금 규제의 적용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관련 사항에 대한 EU 당국의 판단은 금융 조건, 당사자의 소명 여부 및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만약 프로젝트가 EU 지역에서 진행되고 관련하여 판단이 불명확한 소지가 있는 사정이 존재한다면 사전에 면밀한 검토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아가, EU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에 있어 협력업체가 EU 경쟁 당국으로부터 역외보조금을 받는다고 지적 받을 수 있는 업체는 아닌지, 이와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업체가 있는지 등에 대한 사전 조사도 진행하여 만약의 경우 직권조사 등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지 미리 법률 검토 등을 통해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우재 변호사 (woojae.kim@bkl.co.kr)
김상철 변호사 (sangchul.kim@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