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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특허소송에서 어려워진 '부정직 행위' 항변

    조원희 변호사(법무법인(유)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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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herasense, Inc. v. Becton, Dickins & Co. (N.D. Cal. 2012)

    지난 3월 말경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지난 해 연방항소법원(the Federal Circuit Court of Appeals)이 '부정직 행위(Inequitable Conduct)'의 요건을 엄격하게 변경한 이후(Therasense, Inc. v. Becton, Dickins & Co., 649 F.3d 1276 (Fed. Cir. 2011)), 이를 적용한 첫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연방지방법원은 연방항소법원의 파기환송판결에 따라 사건을 다시 심리하였는데 연방항소법원이 제시한 엄격한 요건에 의하더라도 결론에는 달라질 것이 없다며 환송 전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부정직 행위' 항변은 미국 특허소송에서 자주 사용되는 항변이다. 미국 특허출원절차에서 출원인은 정직 의무(duty of candor)를 부담하는데, 특허가 등록될 때까지 출원인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중요하다고(material) 판단하는 모든 정보를 특허청에 제출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직 의무는 출원인뿐만 아니라 출원을 대리하는 변호사, 변리사와 기타 출원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직 의무에 위반하는 경우 부정직 행위를 구성하게 된다.

    부정직 행위가 성립되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하나는 정보의 중요성(Materiality of inform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기만 또는 오도할 의도(Intent to deceive or mislead)이다. 종래 판례에 의하면 중요성이나 의도에 대한 입증은 보완적인 관계에 있었는데 정보의 중요성이 크다면 의도의 부당성은 추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중요성에 따라 의도에 대한 입증 부담이 비례적으로 완화되어 부정직 행위에 대한 주장·입증이 용이하였다. 그러다 보니 비판도 많았는데, 부정직 행위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도 않아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연방항소법원은 위 판결에서 전원합의체(enbanc)판결로 부정직 행위에 관한 종래 판례를 뒤집고 새로이 엄격한 요건을 제시하였는데, 중요성의 정도가 크다고 하여 의도가 추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기만의 의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에 의하여 출원인이 누락된 자료를 알고 있었고 그 자료를 제출하지 않기로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였음(deliberate decision)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누락된 자료가 "but for(없었더라면)" 자료에 해당되어야 하는데, 그 자료가 제출되었다면 등록이 거절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종래에는 의도적 누락이 특허 등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자료로도 충분했으나, 새로운 판결은 자료의 중요성의 정도를 훨씬 더 엄격하게 설정한 것이다.

    연방항소법원의 위 판결이 선고될 당시 특허업계에서는 향후 특허소송에서 부정직 행위 항변이 거의 이용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출원인 또는 그 대리인 등이 그 자료가 제출되면 특허 등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방지방법원의 환송심에서는 엄격하게 변경된 새로운 요건에 의해 판단하는 경우 '부정직 행위' 항변은 기각될 것이라고 예상되었고 그래서 위 연방지방법원 사건이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을 뒤집고 연방지방법원은 환송전 원심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물론 새로운 요건을 적용하더라도 부정직 행위는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연방항소법원은 파기환송 판결에서 연방지방법원으로 하여금 3가지를 다시 심리해 보라고 하였는데, 명확하고 확실한 증거에 의해, 첫째, 출원인이 이전에 유럽 특허청에 모순되는 진술을 하였고 미국 특허청을 기만하기 위해 그러한 진술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였는지, 둘째, 유럽 특허청에 제출된 진술이 중요한지, 셋째, 만약 기만이 없었더라면 미국 특허청은 특허등록을 거절했을 것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연방지방법원은 판결에서 위 3가지를 하나씩 판단하면서, 유럽 특허청에 제출된 서면은 만약 그 서면이 미국 특허청에 제출되었다면 특허등록이 거절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but for" 자료에 해당되고, 당시 특허 출원에 관여했던 상게라(Sanghera) 박사와 포프(Pope) 변호사는 위 서면을 제출한다면 특허등록이 거절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으며, 나아가 이들은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위 서면을 미국 특허청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 명백하고 분명한 증거에 의해 입증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재미있는 점 하나는 담당 판사인 윌리엄 알섭(William Alsup) 판사가 위 판결의 결론에서 "전문가의 행위에 잘못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족해하는 판사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이 사건에서 분명한 사실이다(No judge takes any satisfaction in finding fault in the conduct of a professional. That is certainly true here)"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알섭 판사는 위 사건 내내 상게라 박사와 포프 변호사가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를 살펴보았을 것인데, 그게 미안해서였는지 어느 판사도 전문가의 행위에 잘못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좋아하지는 않으며 자신은 특히나 그렇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는 특허침해소송이 제기되면 출원 자료를 확보하여 부정직 행위 항변을 할 만한 사유가 없는지를 찾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였다. 그런데 새로운 요건은 피고에게 엄격한 입증 부담을 지우고 있어 이러한 방식의 항변은 매우 힘들어진 셈이다.

    향후 연방지방법원들이 연방항소법원의 엄격해진 요건을 어떻게 실무적으로 적용해 가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특허권의 보호가 두터운 미국에서 특허권의 보호가 더 강화된다는 것은 어쨌든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