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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D 선언과 특허침해금지청구권 행사에 관한 EU·美의 동향

    송재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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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들어가며

    최근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침해소송에서 FRAND 선언이 이루어진 표준특허의 경우에도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FRAND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의 약자로, 원래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가 제정한 특허기술 사용 조건에 포함되어 있는 문구였으나, 현재는 표준특허의 라이선스 조건에 관한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표준화기구는 특정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함에 있어 그에 포함된 특허의 권리자에게 FRAND 조건 하에서 당해 특허를 실시허락할 것을 요청하고, 특허권자가 이를 수락하여 당해 특허를 FRNAD 조건 하에 임의의 제3자에게 실시허락할 것을 선언하는 경우 그 특허를 표준으로 채택하게 된다. 표준특허에 독점권을 부여하게 되면 경쟁사업자들의 시장진입 자체가 봉쇄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표준 채택에 있어 FRAND 선언을 요구함으로써 표준특허의 독점을 방지하여 경쟁사업자들이 표준특허를 합리적인 조건 하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 FRAND 선언으로 인해 표준특허권에 기한 침해금지청구권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지 문제되는바, 이에 대해 학설은 FRAND 선언이 침해금지청구권의 포기에 해당하므로 표준특허권자는 손해배상청구만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Shapiro, Miller 등)와, FRAND 선언이 침해금지청구권의 포기는 아니므로 표준특허권자는 여전히 침해금지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견해(Geradin 등)가 대립되어 있었다. 이하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EU와 미국의 최근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2. EU의 동향

    올해 초 EU 집행위원회는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에 대해 최종승인결정을 내리면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이 금지되는 이상 구글에 유리한 라이선스 체결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허침해금지청구권이 남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다. 이와 함께, 표준특허라고 하더라도 침해금지청구권의 행사 그 자체가 반경쟁적인 것은 아니고, 특히 표준특허권자가 FRAND 조건에 관해 성실히 협상하지 않는 상대방을 상대로 금지명령을 청구하는 것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합법적일 수 있으며, 라이선스 협상이 실패한 경우에도 표준특허권자는 종국적으로 상대방을 상대로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EU 집행위원회 결정은 표준특허권에 기한 침해금지청구가 허용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쌍방이 성실한 협상을 실시하였는지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면서도, 더 나아가 FRAND 조건에 관해 성실히 협상하였으나 라이선스 체결에 실패하였을 때에도 특허권자에 의해 침해금지청구가 활용될 수 있는 경우를 배제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국 고등법원(The High Court of Justice)은 위와 같은 EU 집행위원회의 결정과 다소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영국 고등법원은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3G 통신기술에 관한 표준특허권의 침해가 문제된 사건에서, 표준특허권자인 IPCom이 선언한 FRAND 조건에 관해 검토한 후, 상대방인 노키아에 대해 금지명령이 내려져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2012] EWCA Civ 567). 이 사건에서 법원이 금지명령을 거부한 데에는 아마도 IPCom이 실제로는 특허권을 활용한 통신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사건은 일종의 가처분 사건이었는데, 표준특허권자가 직접 표준특허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금지명령의 발부 요건인 '회복불가능한 손해 발생의 우려'가 인정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 종래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에서, 표준특허권자가 요구한 조건이 FRAND 하지 않다는 이유로 침해금지청구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4a O 24/05)와, 표준특허권자가 요구한 조건이 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 체결에 이르지 못한 경우 침해금지청구를 인용한 사례 (4a O 197/07)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2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H.264 비디오 코덱을 윈도우7과 X Box 360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모토로라의 신청을 받아들였다(2 O 240/11, 2 O 287/11). 이 사건에서 법원은 FRAND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FRAND 선언 그 자체는 제3자와의 사이에서 라이선스 또는 계약으로서 효력을 갖거나 또는 계약체결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협상의 개시를 위한 청약의 유인에 해당한다고 보는 한편, FRAND 선언이 모든 잠재적 침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청구권 행사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법원은, 표준특허권자가 상대방의 라이선스 조건을 거절하는 것이 명백한 반독점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침해금지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위와 같은 독일 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표준특허권자의 라이선스 거부가 명백한 반독점법 위반이 아닌 이상, 표준특허권자는 라이선스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경우 (협상이 성실히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막론하고)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 밖에 네덜란드에서는, 지난해 10월 14일 헤이그 지방법원이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소송에서 FRAND 선언이 표준특허권자의 침해금지청구권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나 양 당사자가 합리적인 라이선스 조건을 제시하여 협상을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비로소 표준특허권자가 금지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예가 있다(Case No. LJN: BT7610. 이 사건에서는 삼성이 애플의 FRAND 제안에 대해 합당한 조건을 제시하였음을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삼성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3. 미국의 동향

    미국에서 FRAND 선언이 이루어진 표준특허권에 근거하여 금지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고 있는 최근의 법원 판결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다만 최근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이 시장지배력이 없는 일반특허와 시장지배력을 가지는 표준특허 사이에 법적 취급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을 뿐이다(2012 WL 1672493). 현재 미국의 여러 법원에는 무선통신이나 스마트폰 및 태블릿 컴퓨터에 관련된 표준특허를 둘러싼 침해소송이 상당 수 계속되어 있으므로, 조만간 FRAND 선언과 침해금지청구의 허용 여부에 관한 판결례가 다수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종래부터 표준특허권자의 침해금지청구권 행사 여부를 반독점법 위반 판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 오고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작년에 반독점법 위반 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방책의 일환으로, 표준특허권의 행사 수단으로서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표준특허권에 근거한 침해금지청구는 FRAND 선언에 위반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으며, 미 법무부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노텔이나 노벨 등 제3자로부터 다수의 표준특허권을 취득하는 행위에 대해 반독점행위로서 제동을 걸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지난 6월 2일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마이크로소프트 및 애플을 상대로 제소한 무선통신기기 등의 특허권 침해 사건(ITC case no. 337­TA­745)과 관련하여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FRAND 선언은 표준특허권자가 독점권 행사의 방법보다는 합리적인 조건의 라이선스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증거가 되며, 지적재산권 침해 물품에 대해 수입배제명령(exclusion orders)을 내림에 있어서는 경쟁과 혁신 등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비표준특허와 표준특허를 구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FTC가 위와 같은 의견을 피력한 것은 ITC로 하여금 표준특허에 대한 수입배제명령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이해된다. 같은 맥락에서 FTC는 지난 7월 12일 상원 법사위원회에 표준특허권자가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경쟁제한적 효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FTC의 위와 같은 의견은 향후 표준특허권자들이 ITC 절차 등에서 금지명령을 신청함에 있어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4. 맺으며

    이상에서 살핀 EU와 미국의 최근의 동향을 종합하면, 표준특허의 경우 비표준특허에 비해 특허권자의 권리가 제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대체로 통일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더 나아가 어떠한 요건 하에 FRAND 선언이 이루어진 표준특허권에 기한 침해금지청구가 허용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각국의 입장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EU 집행위원회 결정,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 판결,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 판결 및 미 FTC 의견은 모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의도에서 표준특허권에 기한 금지청구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글머리에 소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도, FRAND 선언 이후 침해금지청구권의 행사가 표준특허 제도의 목적이나 기능을 일탈하여 공정한 경쟁질서와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거나 경쟁제한행위 내지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침해금지청구권의 행사를 허용하고 있는바, 이 역시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FRAND 선언은 그 성격상 구체적인 거래 상대방과 조건이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별도의 개별적인 라이선스 협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청약의 유인'에 해당할 뿐 라이선스의 청약 내지 확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FRAND 선언 자체가 침해금지청구권의 포기라고 해석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특허권자가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해 특허의 실시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른바 'chilling effect'를 발생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표준특허를 실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의 투입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시장진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표준특허권에 기한 침해금지청구권을 제한할 필요성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표준특허권의 남용을 통한 경쟁제한적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FRAND 선언을 한 표준특허권자가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실시료의 지급을 늦추거나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불성실하게 협상에 응함으로써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와 같이, 표준특허권자의 보호를 위해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침해금지청구가 허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FRAND 선언과 침해금지청구권의 허용 여부에 관해서는 각국에서 다른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앞으로 표준특허권에 근거한 금지청구권 허용 여부에 대해 어떠한 판결이 내려질지 계속 주목된다. 다만 FRAND 선언에 따라 표준특허권에 기한 금지청구가 허용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명확하고 확립된 판단 기준이 없고, 이로 인한 분쟁해결을 위해 소송 등의 절차가 요구된다는 사실은,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표준채택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표준화기구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각국 법원의 판결과 별도로, FRAND 선언과 금지청구권 행사에 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표준화기구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