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과 일본이 역시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간혹 있다. 특히 일본으로부터 근대법 체계를 계수한 한국의 변호사 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일본의 형사사법 환경과 관련한 것이었다. 몇 가지 살펴보자. 일본에서 살인사건 등 강력사건이 일어나면, 방송 등 언론 미디어는 그야말로 모두 탐정이 된다. 피의자의 얼굴, 가족내력, 주변 인물, 다닌 학교, 직장, 교우관계 등을 모두 조사하여 까발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피의자의 부모에게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피의자에게 있어 사생활이란 없고 이미 범죄자가 되어 버린다. 언론에선 나름대로 사건을 분석하고, 시뮬레이션 등을 하여가며 사건의 동기 및 실상을 찾아낸다. 그리고 공판이 시작되면 재판을 참관하려는 사람들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물론 모든 사건이 그런 것은 아니다). 긴 기다림 후 번호표를 받아 든 사람들의 밝은? 얼굴도 보인다. 피해자의 가족은 피해자의 영정 사진을 들고 법정 맨 앞줄에 자리를 잡는다. 물론 영정 사진을 들고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 또한 방영이 되고, 공판이 끝나면, 피해자 가족은 기자회견을 연다. 피해자 가족은 대부분, 이러한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읍소하고, 이러한 장면은 전국에 방송된다. 만약 무기징역형이라도 선고되면, 다시 사형을 선고하여 달라고 눈물로 기자회견을 연다. 그리고 이러한 법정 참관을 취미로 하는 오타쿠들이 있고, 이들은 서로 모임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은 구속수사가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아주 경미한 죄(형량이 경미한 벌금, 과료, 구류에 해당하는 죄)가 아닌 경우는 대체로 체포장을 발부하고, 일단 체포된 피의자에게 구속영장 신청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93%에 달한다. 그리고 일본의 법원은 수사기관의 구속영장 청구에 거의 99% 이상 체포장 내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영장기각률과 비교하면 너무도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일단 기소되고 나면 사실상 구속기간의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형사소송법 상, 기소 후 구속기간은 원칙적으로 2개월이나, 계속하여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는 1개월씩 갱신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긴 한데, 우리나라와 같이 구속 후 6개월 이내에 1심 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등의 제한이 없기에, 기소 후에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사실상 무제한으로 구속하여 둘 수 있다. 기억에도 새로운 1995년 지하철 사린가스살포 사건으로 그 해 구속된 오움 진리교의 교주 및 교단 간부 등 13명의 재판이 확정된 것은 2011년 12월이었다. 무려 16년 걸려 재판이 확정되었고, 그 동안 계속 구속상태였다. 물론 위 사건은 그렇다 하더라도 혹시 무고한 사람이 이렇게 장기 구금되어 있다 나중에 어떠한 이유로 무죄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일본에서도 나중에 무죄가 선고되면, 구속기간 동안을 금전으로 보상하여 주는 제도는 있다. 그러나 실컷 구속되어 있다가 이를 금전으로 보상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이에 대하여 일본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은 별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고, 이에 대하여 법률개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치안이 좋은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인구 수에 비하여 형사사건 수는 우리나라 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일반 국민의 지문채취를 하지 않고, 주민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기에, 변사체가 발견되어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사건화 되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일본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경험한 사람은 알지 모르지만, 험한 산 속에 사체를 유기하면 찾기 힘들고 실제로 백골이 된 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변사체가 발견되면 우리나라에서는 검사가 사법부검을 하여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를 판별하나, 일본에선 경찰이 육안으로 먼저 검시를 한 다음 사법부검의 필요가 있다고 자신이 판단한 경우에만 부검을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사고사이나 자연사로 분류되어 묻혀 버리는 사건 수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경찰은 형사고소장을 잘 수리하여 주지 않는다. 형사고소장을 제출하여도 자신들이 움직일 만한 사건, 확실한 사건 아니면 일본 경찰은 고소장을 수리조차 하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소장을 접수시켜도 고소장을 복사하여 복사본을 가지고 원본은 돌려주면서, 자기네들이 검토하고 연락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약 한달 정도 지난 뒤(이 기간에 제한은 없는 듯하여 반년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연락을 하여 사건을 조사하겠다거나 조사하지 않겠다거나 하는 연락을 준다. 특히, 사기, 횡령 등 재산범죄의 경우는 거의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형사사건 수가 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이러한 경찰의 행정편의주의에 대하여 일반 국민들은 거의 함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과 한국은 닮은 면이 많은 것 같으면서 너무도 다른 얼굴을 한 형사사법 환경을 가지고 있다.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수는 없다. 이는 결국 그 사회의 정체성, 그 나라 국민의 사회관, 세계관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고인의 인권보호 측면에서 보면 단연 한국의 형사사법환경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조작 사건 이후, 일본도 수사과정의 비디오 촬영 등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보다 앞서가는 한국의 여러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으로부터 근대법 체계를 계수한 우리나라가 이제는 일본이 배우고 싶어 하는 형사사법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군사정권 등 힘든 시절을 잘 견디며, 인권 보호를 위하여 여러 차례의 법개정을 한 덕분일 것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변호사로서 긍지를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