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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건축
- 대법원 2020. 10. 15. 선고 2017다204032 판결 -
유치권 제도의 불합리성 및 이에 대한 법원의 태도 변화
1. 사실관계 정리 및 원심 판단 피고들은 이 사건 경매절차의 집행법원에 ① 피고 B는 이 사건 부동산 중 4층, 5층 공사와 관련한 2억8000만 원 및 증축 관련하여 2억6000만 원의 공사대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유치권 신고서를 ② 피고 C는 이 사건 부동산과 관련한 3억5300만 원의 공사대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유치권 신고서를 각 제출하였으나, 피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 중 점유하는 부분이나 유치권의 범위를 특정하는 내용을 기재하지는 않았다. 원고는 피고들이 이 사건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유치권을 신고한 것을 전제로 "피고들의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이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라는 청구취지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피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의 등기부와 현황이 일치하지 않아 현황을 기준으로 하면 피고 B가 이 사건 부동산 4층, 5층 전부와 7층, 8층 각 일부를, 피고 C는 이 사건 부동산 중 2층, 3층 각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원심 역시 피고들이 점유하는 부분을 대체로 일치하게 인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위와 같이 '일부 점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유치권 부존재확인 청구 '전부'를 기각시켰다. 2. 대법원 판단 대법원에서는 위와 같이 분명하게 점유가 구분되고 '일부분에 한'하여 점유하고 있음이 자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부동산 전체'에 대하여 피고들이 적법한 유치권자라고 판단한 원심에 관하여 이를 지적하면서 파기 환송 판결을 선고하였다. 즉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의 취지는 유치권자의 일부 점유가 인정된다면 그 일부 인정되는 점유를 특정하여 판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존재확인 소송이라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3. 평석(유치권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 흐름과 이유) 1) 유치권은 사실상 담보물권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있는 제도이다. 우리 법에서 유치권제도는 권리자에게 그 목적인 물건을 유치하여 계속 점유할 수 있는 대세적 권능을 인정한다(민법 제320조 제1항, 민사집행법 제91조 제5항 등 참조). 그리하여 소유권 등에 기하여 목적물을 인도받고자 하는 사람은 유치권자가 가지는 그 피담보채권을 만족시키는 등으로 유치권이 소멸하지 아니하는 한 그 인도를 받을 수 없으므로 실제로는 그 변제를 강요당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우리 법상 저당권 등의 부동산담보권은 이른바 비점유담보로서 그 권리자가 목적물을 점유함이 없이 설정되고 유지될 수 있고 실제로도 저당권자 등이 목적물을 점유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어떠한 부동산에 저당권 또는 근저당권과 같이 담보권이 설정된 경우에도 그 설정 후에 제3자가 그 목적물을 점유함으로써 그 위에 유치권을 취득하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당권 등의 설정 후에 유치권이 성립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유치권자는 그 저당권의 실행절차에서 목적물을 매수한 사람을 포함하여 목적물의 소유자 기타 권리자에 대하여 위와 같은 대세적인 인도거절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실제 경매절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으로 부동산유치권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실상 최우선순위의 담보권으로서 작용하여 유치권자는 자신의 채권을 목적물의 교환가치로부터 일반채권자는 물론 저당권자 등에 대하여도 그 성립의 선후를 불문하여 우선적으로 자기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유치권의 성립 전에 저당권 등 담보를 설정받고 신용을 제공한 사람으로서는 목적물의 담보가치가 자신이 애초 예상·계산하였던 것과는 달리 현저히 하락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치권제도는 '시간에서 앞선 사람은 권리에서도 앞선다'는 담보물권의 최우선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담보물권의 기본질서가 유치권이라는 물권으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다84298 판결). 2)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유치권의 성립범위를 해석을 통해서 제한하여 왔다. 유치권이라는 제도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실무적으로는 사실상 담보물권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부득이 해석을 통하여 그 범위를 제한하여 왔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대법원 2005. 8. 19. 선고 2005다22688 판결 사건에서 강제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된 이후 발생된 유치권에 관하여는 그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바 대법원은 그 논거로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의 처분행위를 가지고 채권자 및 낙찰자에 대항할 수 없다는 조항(민사집행법 제83조 제4항, 제92조 제1항)을 인용하여 강제경매개시결정의 기입등기가 경료되어 압류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 부동산의 점유가 이전되어 유치권을 취득한 경우 처분금지효에 반하는 처분행위로 해석하여 유치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유치권자가 부동산을 점유하는데 있어서 채무자의 법률행위 개입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치권 성립을 채무자의 처분행위로 간주하여 낙찰자에 대하여 대항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위 판결은 채무자가 점유를 이전한 경우이지만 실무에서는 채무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유치권자의 점유가 개시되게 된다). 그리고 실무에서 유치권자들은 대부분 경매 개시 이후에 점유를 시작하기 때문에 유치권 사건의 거의 70% 이상이 본 대법원 판례로 유치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1다96208 판결에서는 유치권의 성립요건 중 견련관계에 관하여 건축 공사와 관련된 채권 중에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만이 견련관계가 인정되는 채권으로 한정하여 해석함으로써 유치권의 성립범위를 극단적으로 줄였다. 채권자가 시멘트와 모래 등 건축자재를 공급하여 해당 건축 자재가 사용되어 건물에 부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시멘트와 모래를 납품한 것, 즉 말 그대로 '매매대금 채권(해당 판례에서는 이와 같이 표현)'에 불과하고 건물 자체에 생긴 채권은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결국 견련관계가 인정되는 채권의 범위를 건물 '자체'의 물리적 가치 상승에 일조한 채권으로 한정하여 견련관계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한 것이다. 3) 이러한 기조에서 대상판결은 대법원 2013다99409 판결과 더불어 유치권 '부존재확인'소송의 불합리성을 해결한 판례로서 대상판결 역시 유치권자에게 불리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이 제기되었을 경우 ①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금액' 중 일부가 인정되는 유형 ② '점유'의 일부가 인정되는 유형 두 가지가 있었다. 종래의 법원은 소송물 자체가 유치권이라는 점, 더 나아가 유치권은 불가분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만 인정되더라도 피담보채무의 범위 또는 점유의 범위에 따라 유치권의 존부나 효력을 미치는 목적물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 점 등을 이유로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이나 점유의 구체적인 범위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고 유치권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금액이나 점유 중 일부가 인정되면 유치권 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를 선고하였는바 극단적으로 유치권자가 주장하는 수억 원의 공사대금채권 중 단 1원이라도 인정된 경우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였고 실제로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 판결이 나오기까지 모두 유치권 부존재 확인청구를 기각시킨 것이다(서울고법 2013. 11. 15. 선고 2013나13421판결 등 다수). 또한 점유 역시 마찬가지로 유치권자가 일부만 점유하고 있더라도 유치권이 존재한다는 점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전부패소 판결을 선고한 것이고 이러한 판단이 대상판결의 원심이었다. 그 이후 유치권자의 일부 '금액'이 인정될 경우와 관련하여 이미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 판결에서 정리하였는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유치권 전부의 부존재뿐만 아니라 이 사건 경매절차에서 유치권을 내세워 대항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는 유치권의 부존재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등의 이유로 대법원은 금액이 부정되는 부분에 하여 일부패소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어느 정도의 불합리한 부분은 해소되었다. 결국 유치권 부존재 확인 사건에서 '일부 점유'가 인정될 경우 어떻게 판결 선고를 하여야 하는지 문제가 남아 있었고 대상판결에서 이를 정리하였던 것이다. 4. 결어 대상판결은 '금액'과 관련된 유치권 부존재확인판결(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3다99409)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대법원은 어찌되었든 유치권 부존재확인 소송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일부 인정된 부분만큼만 유치권을 인정하여야 할 뿐 원고의 유치권 부존재확인 청구 전부를 기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하급심 판례가 들고 있는 법리는 유치권의 불가분성 조항(민법 제321조)이었는 바 유치권 즉 담보물권의 불가분성은 일부 점유를 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유치권 금액 전부에 관하여 주장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서 위 조항이 관련 판결이나 대상판결에는 적용될 여지는 없다. 대상판결로서 유치권부존재확인판결의 불합리성은 모두 정리되었고 그에 더하여 대법원의 유치권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취지 역시 명확해졌다고 보인다. 권형필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경매
유치권
일부점유
권형필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2020-12-24
교통사고
형사일반
- 대법원 2018. 7. 24. 선고 2018도3443 판결 -
특수폭행치상죄의 처벌례
Ⅰ. 사실관계 피고인 A는 2016년 12월 4일 오후 4시 56분 경 쏘나타 승용차를 운전하여 서울 광진구의 편도 1차로의 도로를 진행하던 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피해자 B(15세)가 경적을 울려도 길을 비켜주지 않고 욕을 하였다는 이유로 시비하여 중앙선을 좌측으로 넘어 B의 자전거를 추월한 후 다시 중앙선을 우측으로 넘어 자전거 앞으로 승용차의 진로를 변경한 후 급하게 정차하여 충돌을 피하려는 B의 자전거를 땅바닥에 넘어지게 함으로써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측 족관절부 염좌 등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 Ⅱ. 소송의 경과와 쟁점 1. 제1심과 제2심 제1심(서울동부지법 2017. 10. 16. 선고 2017고단1891 판결)에서는 "형법 제258조의2 제1항에 따르면 이 사건에 대하여 반드시 징역형을 선고하여야 하나 형법규정의 문언과 체계, 연혁(형법 제258조의2 규정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및 형법의 개정으로 인하여 2016. 1. 6. 신설된 점 등) 등에 비추어 보면 제258조의2 제1항이 아닌 제257조 제1항을 적용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바 피해자와 합의한 정상 등을 참작하여 벌금형을 선택하여 처벌하기로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항소하면서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특수폭행치상죄에 대하여는 제262조에 의하여 제258조의2 제1항의 특수상해죄의 예에 따라 형을 정하여야 하고 제258조의2 제1항에서는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고 벌금형이 선택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사건 특수폭행치상의 점에 대하여 제258조의2 제1항의 특수상해죄의 예에 의하지 않고 제257조 제1항의 상해죄의 예에 따라 벌금형을 선택하여 선고함으로써 특수폭행치상죄의 적용법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이유를 제시하였다. 항소심인 제2심(서울동부지법 2018. 1. 26. 선고 2017노1618 판결)은 "이 사건 특수폭행치상죄는 제258조의2가 신설된 이후 저지른 범행인 점, 제262조에서 특별히 제258조의2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 점, 특수폭행치상죄에 대하여 제258조의2의 예에 따라 처벌하더라도 형벌체계상의 부당함이나 불균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제257조 제1항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A에게 제258조의2 제1항을 적용하여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채택하면서 "제258조의2 특수상해죄의 신설로 특수폭행치상죄에 대하여 그 문언상 특수상해죄의 예에 의하여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제258조의2 제1항의 예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법정형의 차이로 인하여 종래에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경미한 사안에 대하여도 일률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해야 하므로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갖추기 위함이라는 위 법 개정의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다. 또한 형의 경중과 행위자의 책임, 즉 형벌 사이에 비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형사법상의 책임원칙에 반할 우려도 있으며 법원이 해석으로 특수폭행치상에 대한 가중규정을 신설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죄형법정주의원칙에도 반하는 결과가 된다"는 이유로 제2심 판결을 파기하여 환송했다. 이는 제1심의 판결과 결론을 같이하는 판단이다. 3. 쟁점 본건에서는 A에게 인정되는 폭행치상죄(제262조), 그 중 특수폭행치상죄(제262조, 제261조)의 처벌을 제257조 제1항(상해)과 제258조의2 제1항(특수상해) 중 어느 예에 의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되고 있다. 제2심 판결에서 소송법상 문제인 공소장변경의 쟁점이 등장하였고 이 점에 관한 제2심의 무리한 판단이 대법원의 판결 결과에 미친 현실적·간접적 영향도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본건의 본래 논점인 실체법적 문제에 관해서만 검토하도록 한다. Ⅲ. 평석 1. 목적론적 해석의 한계 대법원 판결이유의 맨 앞에서 인용되고 있듯이 형벌법규의 해석에서도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입법연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본 사안에서 대법원의 판단은 목적론적 해석에 토대한 것인 바 설사 그것이 A에게 유리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해석이 과연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이라는 목적론적 해석의 한계 내지 전제요건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여기서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는 명문의 규정에 관한 문리해석을 통해 밝혀지게 된다. 제262조의 "…의 예에 의한다"는 문구는 제258조의2의 신설(2016년 1월 6일) 전까지는 행위의 결과인 '상해', '중상해', '사망'을 기준으로 하여 적용규정을 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제258조의2가 신설됨으로써 이제는 행위의 결과뿐만 아니라 행위의 방법·수단도 처벌례 판단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한다. 각칙상 다른 규정들에서 "…의 예에 의한다"는 문구가 행위의 결과 외에 주체·객체·방법도 처벌례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보면(제154조, 제253조, 제263조, 제299조, 제305조, 제335조 참조), 이는 당연한 문리해석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상해죄와 특수상해죄의 법정형이 같은 것을 보면 입법자는 행위의 방법의 불법을 중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위험한 물건의 휴대'가 '폭행'의 방법이 되었을 뿐인 경우와 '상해'의 방법이 된 경우는 동일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폭행'에 그친 게 아니고 '상해'까지 야기된 특수폭행치상에 있어서 '위험한 물건의 휴대'는 '(고의)상해'의 방법인 '위험한 물건의 휴대'와 불법에 있어서 대등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즉 제262조의 '제257조 내지 제259조의 예'에는 제258조의2의 예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기본적인 문리해석을 도외시한 채 목적론에 지나치게 치우친 주관적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제258조의2 신설 전 규정에 따르면 폭행을 범하여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와 특수폭행을 범하여 상해에 이른 경우가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되었고 또 폭행을 범하여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와 특수폭행을 범하여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도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되었다. 이제 제258조의2 신설로 폭행 방법의 불법을 고려하여 특수폭행으로 상해나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를 동조 제1항과 제2항에 의하여 새로운 법정형에 따라 처벌함으로써 죄형균형의 원칙을 구현하고 있다. 2. 행위시법주의의 원칙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행위시 전에 있었던 법률이 행위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현행법으로의 개정취지를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을 통하여 행위시 전의 법률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법원에서는 특수폭행치상에 대하여 개정전 형법에서는 벌금형을 선고할 수도 있었지만 개정후의 문언에 따르면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게 되어 가중규정을 신설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형법의 신설규정은 종전에 당해 죄의 처벌규정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있었을 때보다 법정형을 가볍게 하여 '형벌체계의 정당성과 균형'을 구현하고 있으며 설사 특수폭행치상에 관해서는 종전 형법규정의 해석에서보다 형을 가중하는 결과가 된 입법이라고 할 수 있더라도 입법자의 선택에는 무리가 없다. 본건에서 A의 행위는 제258조의2 규정 신설입법의 시행일(2016년 1월 6일)로부터 10개월 이상이 지난 후에 있었으므로 형벌불소급의 원칙과 무관하며 대법원판결은 오히려 형법 제1조 제1항과 헌법의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서 특수폭행치상의 처벌례가 다시 문제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대법원 판결과 명문의 형법규정 사이의 괴리는 차츰 더 커질 것으로 본다. 형법제정 당시에 비하여 자동차나 각종 과학이기의 사용이 크게 보편화된 오늘날 사회현실의 변화를 고려하면 형의 가중개정은 가능하다. 본건의 선고형 여하는 2차적인 문제이다. 대법원에서는 입법자의 불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단하고 무리한 법적용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감이 있다. 특수폭행치상에 대한 가중처벌규정은 '법원이 해석으로' 신설한 것이 아니고 입법자의 판단에 기하여 선택된 입법이다. 관련규정의 신설 내지 개정으로 인하여 기존의 특정 규정의 의미에 변화가 야기되었다면 설사 기존 규정의 문언에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기존 규정도 함께 개정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제258조의2가 신설되면서 제262조도 함께 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영일 명예교수(경희대 로스쿨)
특수폭행치상죄
징역형
행위시법주의
정영일 명예교수(경희대 로스쿨)
2020-12-14
지식재산권
-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8후736·743 판결 -
선택발명의 진보성 법리 관한 대법원 판결의 변경
I. 들어가며 선택발명은 그 발명의 구성요소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선행기술이 개시하는 넓은 범위 중 일부인 좁은 범위를 선택하여 특정한 것이다. 선택발명이 일반발명과 차별될 특별한 이유가 없고 다른 기술분야에서는 차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제약분야에서는 오랫동안 일반발명과 달리 취급되어왔다. 그러한 차별적 법리를 제시한 대법원 2008후736·743 판결('대상 판결')을 간단히 소개한다. II.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8후736·743 판결 대상 판결은 아래의 두 점을 설시하였다. 1. 선택발명의 진보성 판단에서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점 일반발명에서는 선행기술의 구조와 대상 발명의 구조를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특정한 후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기술의 구조로부터 대상 발명의 구조를 용이하게 도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대상 판결에 따르면 선택발명에 있어서는 그러한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직 이질적 효과 또는 동질의 현저한 효과만이 고려된다. 2. '출원후효과증거(post-filing effect evidence)'를 배제하는 점 대상 판결은 명세서가 그 '효과'를 명확히 기재하여야 한다는 점, 그 명확한 기재는 이질적 효과에 관한 구체적 기재나 동질의 현저한 효과에 관한 정량적 기재이어야 한다는 점을 설시하였다. 그러한 법리로 인하여 출원 후에 제출되는 해당 선택발명의 효과를 증명하는 정량적 증거(출원후효과증거)는 고려되지 않는다. III.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산업정책적 관점에서의 판단 가. 대상 판결의 법리가 용인되어 온 그간의 사정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및 다른 법의 발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특허법 법리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왔다. 이제 우리 특허법의 법리가 주요국 특허법의 법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되어 소위 국제적 조화가 달성되었다. 그런데 유독 제약 특허법의 분야에서는 주요국의 법리와 다른 우리나라의 독특한 법리가 아직까지도 잔존하고 있다. 그러한 독특한 법리는 다수인 국내 제약회사의 목소리가 소수인 외국 제약회사의 목소리를 덮어왔다는 점, 우리 제약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용인되어 왔다. 그 독특한 법리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선택발명을 진보성이라는 칼로 죽이게 하는 대상 판결의 법리인 것이다. 대상 판결이 선고된 2009년 당시에는 그 법리가 나름 용인의 이유를 가진 것이었으나 2020년 현재에는 더 이상 그러하지 않다. 나. 사정의 변경: 국내 제약회사에 의한 신약의 개발 우리의 자동차·반도체·영화·음악 등이 전세계를 누비듯 우리의 의약품이 전세계를 누비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고 그럼으로 인하여 외국의 신약 특허권자로부터 우리 제약회사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다소 국수적인 관점에서 특허법리의 왜곡이 용인되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의약품의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우리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 선택발명에 대한 진보성 법리는 우리 제약회사가 개발한 신약발명을 진보성이라는 칼로 죽이게 한다. 우리 제약회사에 의한 신약개발을 조장하기 위해서도 선택발명을 특허로 제대로 보호하는 법리로 변경하여야 한다. 2. 선택발명의 진보성 판단에서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오류 예전에는 (좁은 범위를 선택한) 선택발명이 (넓은 범위를 개시한) 선행기술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것이므로 신규성은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법리가 운영되었다. 넓은 구조와 좁은 구조를 동일하게 보는 관점으로 인하여 진보성 판단에서도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었고 효과만이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상 판결은 그러한 잘못된 신규성 법리를 타파하고 선행기술이 선택발명을 구체적으로 개시하여야 한다는 소위 '구체적 개시'의 신규성 법리를 정립하였다. 즉 선행기술이 개시한 넓은 구조와 대상 선택발명이 선택한 좁은 구조의 비동일성을 인정한 것이다. 선행기술과 선택발명의 구조적 비동일성을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서는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구조적 비동일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신규성 법리가 변경되었으므로 그에 상응하게 진보성 판단에서 구조적 용이도출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최근 특허법원 판결에서는 그러한 법리를 적용한다{특허법원 2020. 10. 16. 선고 2020허1052 판결 12면("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고려하면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발명 1로부터 이 사건 제1항 출원발명의 구성을 도출하는 것 자체는 쉽다고 봄이 타당하다"); 특허법원 2020. 10. 29. 선고 2019허7863 판결; 특허법원 2020. 10. 29. 선고 2019허8323 판결}. 상식적으로도 선행기술이 개시한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어려움과 선행기술이 개시한 만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어려움의 차이가 외면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 외 다른 요소도 종합적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정차호·신혜은, '선택발명인 거울상 이성질체 발명의 신규성 판단', 서울대 법학 제49권 제3호, 2008, 394면). 3. 선택발명에서 '출원후효과증거(post-filing effect evidence)'를 배제하는 오류 대상 판결은 선택발명의 진보성 판단에 있어서 출원후효과증거의 제출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법리를 설시하고 있다. 그 법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변경되어야 한다. 가. 주요국 및 우리나라의 출원실무와 배치됨 선출원주의에 따라 해당 발명의 효과가 어느 정도 확인되면 출원이 이루어지고 그 후 효과의 추가확인이 진행되는 것이 주요국 및 우리나라의 출원실무이다. 그러한 실무는 선택발명에서도 동일하다. 어떤 발명이 일반발명인지 또는 선택발명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으므로 출원실무도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주요국이 그런 출원실무를 인정하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선택발명에 대하여 다른 실무를 고수하며 주요국의 모든 출원인에게 우리만의 실무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의 법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함 미국·유럽 등이 출원후효과증거의 제출을 허용하고 있음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제약산업의 발전수준이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정도의 법리를 운용하고 있음은 주목되어야 한다. 우리가 적용하여 온 선택발명의 법리는 애초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것이나 일본도 그 선택발명의 법리를 변경하였다. 일본 지적재산고등재판소 2010. 7. 15. 선고 平成21(行ケ)10238호 판결이 (명세서 또는 도면의 기재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출원후효과증거의 제출이 허용됨을 설시하였고 일본 특허청 심사지침서(제3부 제2장 항목2, 3.2.1(2))가 동일한 법리를 설명하고 있다. 다. 중국마저 국제적 조화를 이루었음 중국도 과거에는 선택발명의 진보성 판단과 관련하여 출원후효과증거의 제출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 법리로 인해 미국 및 유럽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특허청은 2017년 심사지침서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였다. 중국 내에서는 그 개정이 국제실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며 그 개정으로 인해 예측가능성·합리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평가된 바 있다(Yuqing Feng, et al., China may lift curbes on software patents: SIPO proposed revisions to Examination Guidelines, Dec. 1, 2016). "출원일 후에 제출되는 실험데이터에 대하여 심사관은 심사하여야 한다. 그 제출된 실험데이터로 인하여 증명되는 기술적 효과는 그 기술분야의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출원이 개시한 내용으로부터 용이하게 도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중국특허청 심사지침서 제2부분 제10장 3.5절, 291면. 라. 상충하는 법리를 제시한 대법원 판결의 존재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1후2740 판결은 "선택발명의 상세한 설명에는 선행발명에 비하여 위와 같은 효과가 있음을 명확히 기재하면 충분하고 그 효과의 현저함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비교실험자료까지 기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만일 그 효과가 의심스러울 때에는 출원일 이후에 출원인이 구체적인 비교실험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에 의하여 그 효과를 구체적으로 주장·입증하면 된다"고 설시한 바 있다. IV. 나오며 선택발명에 대한 특허성 법리는 초기에는 진보성 법리는 물론이고 신규성 법리도 일반발명의 법리와 다른 독특한 것이 운용되었다. 그 독특한 법리는 넓은 범위를 개시하는 선행기술과 좁은 범위를 청구하는 선택발명이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오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즉 선택발명을 '중복발명'이라고 본 것이었다. 대상 판결이 그 잘못된 신규성 법리를 바로잡는 소위 '구체적 개시' 법리를 재확인하였다. 선택발명에 관한 법리의 오류 중 일부가 시정된 것이다. 이제 그 시정의 연장선상에서 진보성 법리의 오류도 시정되어야 한다. 미국·유럽이 선택발명의 진보성과 관련하여 출원후효과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중국 및 우리나라의 법리를 비판하여 왔다. 그런데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마저 출원후효과증거를 인정하는 법리로 변경함에 따라 이제는 주요국 중에서는 우리나라만이 그 잘못된 법리를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 영화·음악·방역 등의 덕분으로 우리나라의 국격이 괄목상대 높아졌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미흡한 점을 발굴·정비하여 일류 선진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 특허법의 법리도 그러한 걸음에 동참해야 한다. 미국·유럽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는 선택발명의 진보성 법리가 조만간 변경되기를 기원한다. 정차호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선택발명
진보성
출원
특허
정차호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2020-12-07
조세·부담금
- 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6두62726 판결 -
명의를 빌린 공급 상대방에 발급한 세금계산서와 매입세액 공제
I. 도입 부가가치세법 제39조 제1항 제2호는 공급의 상대방이‘발급 받은 세금계산서에 필요적 기재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가 사실과 다르게 적힌 경우의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실제 발생한 매입세액이 세금계산서 기재 미비로 불공제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결과는 매출 자체에 대한 과세이고 납세자에 큰 불이익이 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이 평석의 목적은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6두62726 판결을 대상으로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 보는 것이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타인의 명의를 빌린 공급 상대방에 발급한 세금계산서와 매입세액 공제, 조세법연구 제26권 제2호(2020. 8), 91면 이하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II. 대상판결 1. 사실관계 광고대행업을 하는 원고회사는 직원의 이름을 빌려 사업자등록을 하고 세금계산서 발급이나 부가가치세 신고도 하였다. 2. 쟁점 부가가치세 납세의무는 거래가 실질 귀속하는 원고회사에 생긴다. 과세관청은 원고회사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면서 세금계산서에 직원 이름이 적혔다는 이유로 매입세액을 불공제하였다. 기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거래 상대방의 성명·명칭과 사업자등록번호로 쟁점이 또 나뉜다. 3. 판결 요지 (1) 대법원은 공급 상대방의 성명 등이 임의적 기재사항에 불과하여 사실과 다르더라도 매입세액은 공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공급하는 사업자의 성명 등이 필요적 기재사항인 것과 구별하는 입장이다. (2) 사업자등록번호의 쟁점에서는 사업의 실질적 주체가 원고회사이므로 등록번호를 누구 이름으로 받든 달리 혼동의 우려가 없는 한 이는 원고회사의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업자등록번호는 사실과 다르지 않고 성명 등이 잘못 적힌 것은 불공제 사유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파기환송, 원고승소 취지). III. 평석 1. 논의의 배경 매입세액이 불공제되면 부가가치세는 이제 '부가가치'가 아니라 매출에 대한 세금이다. 그만큼 이는 예사롭지 않은 조치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고 또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다. 대상판결도 그러한 논의의 연장이다. 2. 첫 번째 쟁점 (1) 도입 대상판결은 세금계산서 기재사항 특히 공급하고 받는 사업자에 관한 법의 문구에서 결론을 끌어낸다. 그러나 문언의 차이가 반드시 결론의 다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제도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2) 세금계산서 제도의 의의 '실체적' 측면에서 볼 때 부가가치세의 핵심은 각 사업자 단계의 '부가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이는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함으로써 달성된다. 그런데 현실의 법은 나아가 납세의무를 지는 사업자들에게 일정한 협력의무를 지운다. 사업자등록과 세금계산서 수수가 그것이다. 과세행정을 위한 것이지만 법은 위반이 있으면 매입세액 불공제의 불이익으로써 아예 '핵심'을 건드린다. 현실의 세제는 세금계산서를 그만큼 중요히 여긴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의 '납세자 간 상호검증'과 '소득세 등 세원포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이 제도의 의의라고 하고(대법원 2002두5771 전합 판결) 대상판결도 같다. 곧 매입세액 공제의 판단에도 이러한 '상호검증'과 '세원포착'의 고려가 필요하다. (3) '비례의 원칙' 필요적 기재사항 중 하나라도 사실과 다르면 기재된 매입세액을 전혀 공제할 수 없다 함이 과세실무의 기본태도이다. 그러나 필요적 기재사항도 다양하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혔다 해도 세금계산서의 기능을 해치고 과세행정에 어려움을 야기하는 정도는 같지 않다. 기재된 작성일이 실제와 다르더라도 일정한 경우 매입세액을 공제하는 시행령 규정(제75조 제3호)은 이를 감안한 사례이다. 또 공급하는 사업자가 '사실과 다르게' 적혔다는 사실에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이면 공제가 가능하다는 오랜 판례(대법원 83누281 판결)는 당사자들의 관여 정도를 감안한다. 즉 '사실과 다르다'고 늘 공제를 일절 불허하지는 않는다. 이때의 매입세액 불공제가 담세력과 무관한 일종의 제재이므로 '비례 원칙'의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상호검증'이나 '세원 포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개별적 검토의 필요가 있다. 또 그러한 정도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입법이나 해석에 타당성이 있음도 물론이다. 반대로 공제를 허용하는 몇몇 경우가 법에 존재하므로 그밖에는 늘 공제를 불허해도 비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많다. 또 예외조항의 경우 말고도 고려할 만한 사정이 다양하므로 비례 원칙에 따른 추가적 입법이나 해석론이 필요한 공간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판결도 그러한 인식과 관련을 맺는다. (4) 구체적 검토 1) '상호검증' 측면 이쪽에서 매입세액으로 공제 받은 금액과 저쪽에서 매출세액으로 신고한 금액이 같은지 맞추어 보는 일이 '상호검증'이다. 이때 공급하는 사업자와 상대방을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2) '세원포착' 측면 '세원포착'이란 숨어 있는 납세의무자를 찾아낸다는 의미일 터이다. 매입세액 공제를 미끼로 공급 상대방이 공급자로부터 제대로 된 세금계산서를 수수하게 함으로써 공급자의 납세의무가 드러나도록 유도한다. 여기서는 공급 상대방보다 공급자의 정보가 충실하게 세금계산서에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 (5) 소결론 세원포착의 측면에서 공급자에 관한 정보와 공급 상대방의 정보가 제대로 적히지 않은 세금계산서 중 전자가 세금계산서 제도에 더 큰 해를 끼친다. 즉 둘을 달리 취급하는 대상 판결의 결과는 정당화될 수 있다. 3. 두 번째 쟁점 (1) 도입 대상판결은 사업자등록번호의 문제에서 판단의 주요기준으로 세금계산서에 적힌 공급 상대방의 '사업'이 누구의 것을 가리키는지 따진다. '사업'이 실질 사업자의 것이라면 직원에 부여된 등록번호도 경우에 따라 실질 사업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 관련 판결 이러한 명의차용에 관하여는 먼저 나온 대법원 2014도14990 판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세범처벌법 적용이 쟁점인 이 형사판결은 이때 부가가치세와 관련된 모든 행위는 명의 차용인에 귀속된다고 본다. 즉 비록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할지언정 사업자등록번호를 부여 받거나 세금계산서를 수수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이러한 차용인의 것이다. (3) 판례 입장의 분석 이러한 입장은 대상판결에 이어진다. 명의대여인 고유의 사업과 혼동될 우려가 없다면 원고회사는 본래의 사업자등록번호와 명의를 빌려서 받은 번호를 모두 자기 것으로서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물론 그러한 혼동 가능성의 유무는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판단할 일이다. (4) 검토 이 문제를 세금계산서의 기능과 연관시켜 살펴 보자. 직원에 부여된 사업자등록번호라 해도 공제된 매입세액과 신고된 매출세액의 상호검증에 별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또 공급자는 제대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세원포착에도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도 대상판결의 결론은 정당화된다. 다만 이때 원고회사가 직원 이름으로 매출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이고 판례(대법원 2016두43077 판결)에 따를 때 공급 상대방의 매입세액 공제로 이어질 수 없다. 이 비대칭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법의 문구만으로 이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추가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IV. 맺음말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 문제에서 현재의 법이나 실무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은 흔하다. 부가가치세 도입 초라면 몰라도 모든 면에서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현재에도 그러한 태도가 계속되고 있음은 의문이다. 게다가 가산세와 형사처벌까지 있어서 종종 가혹한 결과가 생기고 탄력적 운용도 쉽지 않다. 공제의 범위를 넓힌 대상판결은 이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나아가 비례 원칙을 현실에서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일반론의 정립이 필요하다. 특히 더 넓은 시각에서 관련된 정황에 따라 결론을 달리할 수 있는 입법·해석론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러한 논의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닫아 버린다는 점에서도 현재의 '경직'된 법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상판결이 그러한 이론 정립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 평가한다면 그 의미와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가치가 있다. 윤지현 교수(서울대 로스쿨)
세금계산서
부가가치세법
국세기본법
윤지현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0-11-30
민사일반
- 대법원 2019.11.28., 선고 2017다257869 판결 -
단체협약상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의미 및 한계
Ⅰ. 문제의 제기 대상판결은 단체협약에 '쟁의기간 중에는 징계나 전출 등의 인사 조치를 아니 한다'는 이른바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을 두는 경우 이 규정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즉 당해 규정이 징계의 원인이 된 비위사실이 쟁의행위와 무관한 근로자의 개인적 일탈행위에 불과하고 이 징계로 인해 단체행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사용자는 징계 등 일체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 된 사안이다. II. 대상판결의 판단요지 이 사건 단체협약의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은 "회사는 정당한 노동쟁의 행위에 대하여 간섭방해, 이간행위 및 쟁의기간 중 여하한 징계나 전출 등 인사조치를 할 수 없으며 쟁의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문언 자체로 징계사유의 발생시기나 그 내용에 관하여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므로 위 규정은 그 문언과 같이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사유를 불문하고 피고가 조합원에 대하여 징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만일 이와 달리 비위사실이 쟁의행위와 관련이 없는 개인적 일탈에 해당하거나 노동조합의 활동이 저해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도 피고가 징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여 해석하게 되면 위 규정의 문언 및 그 객관적인 의미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해석은 쟁의기간 중에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한 징계 등 인사 조치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위 규정의 도입 취지에 반한다.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앞서 본 취지에 따라 도입된 것임에도 쟁의행위와 무관하다거나 개인적 일탈이라 하여 징계가 허용된다고 새기게 되면 사용자인 피고가 개인적 일탈에 해당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에 임의로 징계권을 행사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요컨대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정당하게 개시된 쟁의행위의 기간 중에는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므로 피고가 이 사건 쟁의행위 기간 중에 원고를 징계해고한 것은 위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 III. 평석 - 단체협약상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의 의미 및 한계 '쟁의 중 신분보장'규정에 대한 대상판결의 판단(해석)에 대해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협약자치의 한계와 단체협약의 해석 단체협약이란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자주적으로 노사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협약자치의 산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쳐 체결되는 협정 즉 계약을 말한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내용에 관하여 계약 당사자 사이에 해석상 견해의 차이 내지 다툼이 생긴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합리적 해석과 단체교섭의 실질적 의미를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두 가지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09다102452 판결;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86287 판결 등). 이에 따르면 단체협약은 문언에 따라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는 조합원과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내용의 명료성과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협약자치는 헌법 제33조 제1항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자치의 한 영역이므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단체협약의 목적도 헌법과 노조법 이외에 사법상의 일반원칙 예컨대 민법 제2조, 제103조 등에 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용된다. 그렇다면 대상판결이 쟁의행위와 무관한 개인의 비위사실을 이유로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까지 쟁의행위 기간 중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고 해석한 것은 위 단체협약 해석 기준 중 후자 즉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기준은 준수하였지만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해석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단체협약의 해석에 있어서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헌법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단체협약에서 당사자의 의도, 단체협약 체결 경위, 단체협약이 규율되어 온 노사관계 등에 맞게 강행법규나 사회적 타당성을 결여하지 않도록 해석하여야 함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특히 판례는 협약 당사자인 사용자의 징계권의 근거를 사용자의 고유권 내지 경영권에서 구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경영권은 전속적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헌법 제119조 1항, 제23조 1항 및 제15조를 그 법적 기초로 하고 있다(대법원 2000. 9. 29. 선고 99두10902 판결 등). 이러한 경영권은 근본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 사항이 아니며 인사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협약으로 제한 또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는 사회생활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일반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반규범이면서 사적자치·계약자치에 대한 부당한 개입금지 또는 개입의 정당화에 대한 법적 근거로 이해할 수 있다. 정의 관념에 반하는 행위, 인륜에 반하는 행위,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행위 등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에 해당된다. 신분보장 규정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위한 제반 상황이 이와 같다면 신분보장 규정의 도입 취지인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 영역을 벗어난 범위에까지 사용자의 헌법상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일체의 징계를 금지한다는 해석은 적어도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신분보장 규정을 해석할 때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한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2. 기본권 충돌의 해결- 과잉금지의 방법 적용 이처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일체의 징계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사용자의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침해할 여지가 있다. 즉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으로 인하여 근로자의 근로3권(구체적으로 단체행동권)과 사용자의 경영권(구체적으로 징계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기본권의 충돌에 관한 헌법상의 해결방법이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기본권 사이의 충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실제적 조화(Praktische Konkordanz)론이 원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조화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인데 실제적 조화론은 '과잉금지의 방법'을 구체적 해석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잉금지의 방법'이란 충돌하는 기본권 모두에게 일정한 제약을 가함으로써 모든 기본권을 양립시키되 기본권에 대한 제약을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도록 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제한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고(필요성), 제한의 방법은 적합하여야 하며(적합성), 제한된 기본권 간에는 비례관계(비례성)가 성립되어야 한다{허영, 헌법이론과 헌법, 457면; 계희열, 헌법학(中), 128면}. 그러므로 이 해석기준에 따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을 둘러싼 사용자의 징계권과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이 모두 최대한으로 그 기능과 효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적정한 조화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검토 결과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에 대해 문제는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 예컨대 쟁의행위와 무관한 개인적 비위 내지 일탈행위까지 일체의 징계를 금지함으로써 단체행동권의 보장을 극대화한 결과 사용자의 징계권에 대한 제한의 정도가 최소한도에 그치는지(필요성), 즉 제한의 정도가 비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필요성 및 비례성의 의미는 달리 표현하면 충돌하는 두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두 기본권의 원심영역(Randzonen)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느 한 기본권이 절대적인 효력을 나타내거나 반대로 완전히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쟁의 중 신분보장' 규정이 '정당한 노동쟁의에 대해 쟁의기간 중' 사용자의 징계권을 제한함으로써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사용자의 기본권의 침해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해석처럼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보장과 관계없는 개인의 비위행위에 대해서까지 일체의 징계를 금지하는 것은 사용자의 징계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필요성 및 비례성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김희성 교수 (강원대 로스쿨)
노동조합
신분보장
쟁의행위
김희성 교수 (강원대 로스쿨)
2020-11-23
형사일반
-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
Ⅰ. 공소사실의 요지 36세의 남성인 피고인은 2014년 7월 중순경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알게 된 14세의 여성인 피해자에게 다른 사람의 사진을 마치 자신의 사진인 것처럼 가장하여 전송하면서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생인 A(가상의 인물)'라고 거짓으로 소개하고 채팅을 통해 피해자와 사귀기로 하였다. 피고인은 2014년 8월 초순경 피해자에게 "사실은 나(A)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나의 선배와 성관계를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하여 스토킹 여성에게 보내주면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피고인의 제안을 승낙하였고 피고인은 마치 자신이 A의 선배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Ⅱ. 판결이유 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등(이하 '종전 판례')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형법 제302조의 '위계'의 개념에 대하여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오인·착각·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착각·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착각·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원심에서는 본 사안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법리에 따를 때 피고인의 행위가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의 위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그 자체인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오인·착각·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Ⅲ. 평석 1. 종전 판례에 대한 학계의 비판 종전 판례의 입장에 대하여는 위계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그 요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김성천·박찬걸·이덕인·조국·최은하 등). 첫째,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처벌하는 취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능력을 발달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는 미성년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도 종전 판례는 그러한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능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될 정도의 미성년자만을 본 죄의 보호대상으로 삼았다. 둘째, 대법원에서 형법 제302조 등에서 위계와 병렬하여 행위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위력'의 개념에 대하여는 비교적 폭넓게 해석하면서도 '위계'에 대하여는 그와 반대로 제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균형 있는 해석이 아니다. 셋째, 삭제된 구 형법 제304조에서는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위계에 의한 간음을 범죄화하면서 혼인을 빙자한 경우를 위계의 구체적인 행위 태양으로 명시하였는데 혼인의 빙자에 의한 오인·부지·착각은 성행위의 동기 부분에서의 착오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형법 입법자의 의사는 '위계'의 개념에 동기의 착오를 일으킨 경우도 포함하고자 하였던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가.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학계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위계' 개념에 대한 종전 판례의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타당한 방향의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남기고 있다. 나. 종전 판례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입장의 단초는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5항의 법정형이 제1항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의 경우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의 필요가 크다 하더라도 폭행·협박에 의하여 성관계를 맺는 행위와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에서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의 불법의 정도가 동일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종전 판례는 그와 같은 형벌체계상의 불균형을 위계의 개념을 축소해석하는 방법으로 해소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같은 취지로, 한영수). 물론 대상판결에서도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야 함을 지적함으로써 위계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해석되는 결과를 방지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무엇이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루는지는 개별 판단자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성행위의 상대방이 사이버 공간의 1인 2역 연기를 통하여 가상의 인물로 가장한 경우 '위계'를 인정하는 결론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아마도 그러한 사안의 힘이 만장일치에 의한 판례 변경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명문대생을 동경하는 고등학생에게 명문대 재학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유혹한 경우 상대방과의 배타적인 애정 관계가 성행위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 고등학생에 대하여 양다리임을 속이고 성행위로 나아간 경우 등은 어떠한가? 이러한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에 있어서 착오를 일으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한 사안이 최소 2년 6월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정도에 이르는 것인지에 대하여 대상판결 사안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죄형균형의 원칙에 합치되는 법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무엇이 위 조항에 따른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동기'의 착오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분별해 낼 수 있는 추가적인 판단기준이 요청된다. 종전 판례는 일단 동기의 착오를 일으킨 경우를 위계 개념으로 끌어들이게 된다면 그 안에서 가벌적인 동기의 착오 유발 행위와 불가벌적인 동기의 착오 유발 행위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전제 하에 구체적 타당성을 양보하고 경직되어 보이나마 제한해석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대상판결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느슨한 판단기준 하에 사안별로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최적의 판단을 얻어 나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상판결에서 '중대한 동기'에 관한 사안별 유형화 작업마저도 구체적 타당성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보는지는 반드시 분명하지 않다. 만일 미성년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구체적 타당성 확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여서 유형화 작업조차도 그러한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처벌의 하한 또한 유연하게 열어두는 입법적인 시정이 필요할 것이다. 다. 대상판결은 위계에 의한 간음이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능력이 취약한 피해자를 보호 대상으로 하는 것임을 위계의 개념을 확장하는 강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실정법상 처벌 근거의 부재는 별론으로 성년자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이 반드시 가벌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행사능력을 가진 주체의 자기책임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자기결정권의 행사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데 위계는 이러한 자율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인간의 성관계에서 사용되는 위계는 '낭만적 유혹'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서 국가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라는 관념 또한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예컨대 원치 않는 임신을 우려하여 콘돔을 착용하지 않으면 성관계를 가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상대방이 그에 응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콘돔을 뺀 상태에서 삽입을 한 경우 성인 여성이 성관계에 이르게 된 판단의 착오가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자기책임의 영역에 있는 위험으로 치부되는 것이 타당한가? 물론 성인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의 가벌성을 인정할 경우에는 그 위계의 범위는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의 경우보다 좁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판단자에게 또 다른 구분선을 요구한다. 이미 하나의 구분선을 긋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또 다른 구분선을 긋는 것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이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실정법상 성인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모두 폐지한 현 시점에서는 즉각적인 고민의 대상이 아니지만 추후 비동의간음죄의 입법이 현실화된다면 곧바로 수면 위의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홍진영 교수 (서울대 로스쿨)
간음죄
미성년자
성관계
홍진영 교수 (서울대 로스쿨)
2020-11-19
형사일반
-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
술에 취한 자에 대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I. 사실관계 군인신분의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처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새벽 처가 먼저 잠이 들고 피해자도 안방으로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그 후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아니하여 준강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만취되어 항거불능상태에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피해자를 1회 간음하였다. II. 소송경과 및 판결요지 군검찰은 피고인을 강간혐의로 기소하였다. 이후 제1심 공판과정에서 공소장을 변경하여 준강간혐의를 추가하였으며 보통군사법원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고 준강간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지 않았다는 사정 등을 이유로 항소하였고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에 군검사는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 준강간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준강간미수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였다. 고등군사법원은 준강간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는 대신 준강간미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지만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죄의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행위 당시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은 있었으므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III. 평석 1. 대법원 다수의견의 취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잠이 들어 있어서 그러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을 하였는데 피해자가 실제로는 그러한 상태에 있지 않았을 경우 이와 관련해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대상판결은 이 조문을 동 사안에 적용하고 있다. 즉 이 사안은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의 '결과발생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면서 동시에 '위험성'이 인정되므로 불능미수 법리로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라는 것이다. 2. 다수의견에 대한 반론의 검토 (1)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의 의미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논거로 미수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실행행위를 종료하지 못하거나 실행행위를 종료했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대상사건은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실행행위도 종료되었고 그로 인하여 결과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반대의견도 기본적으로 같다. 준강간죄는 구성요건결과의 발생을 요건으로 하는 결과범이자 보호법익의 현실적 침해를 요하는 침해범이므로 준강간죄에서 구성요건결과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간음이 이루어졌는지, 즉 그 보호법익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수란 실행에 착수하여 범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모두 충족시킨 경우를 말한다.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는 행위주체·실행행위·인과관계·결과 등이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총칭하여 '구성요건적 결과'라고 한다. 형법 제25·26·27조 각각의 미수범의 성립요건에서 결과의 의미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의 일부로서의 결과나 결과범에서 말하는 결과가 아니다. 이때의 결과는 '구성요건적 결과'를 뜻하는 것이다.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미수범 처벌규정이 존재하는 때에는 미수범이 성립된다. 피해자를 협박하여 그의 재산상의 처분행위로 재물을 영득했다고 하더라도 만일 피해자가 의사의 자유가 침해되어 재산상 처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행위자를 불쌍하게 여겨 재물을 교부한 것이라면 공갈죄는 미수에 그친다. 침해범과 위험범의 차이에 주목하고자 하는 반대의견의 관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침해범과 위험범의 구별은 범죄의 성질이 법익침해를 본질적 요건으로 하는가에 따른 것에 불과하고 현주건조물방화죄처럼 위험범이지만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요하는 구성요건도 존재하며 따라서 준강간죄가 위험범이 아닌 침해범이기 때문에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여부를 간음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논증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요컨대 침해범이라는 특성이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을 다르게 해석해야 할 합당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침해범의 경우 대체로 행위자가 '의욕한 바', 예컨대 사망이나 간음이 곧 '구성요건적 결과'인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법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2)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의 판단방법 대법원 반대의견은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는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을 착오한 행위자가 아니라 통찰력이 있는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아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결과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따라서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결과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지만 특별히 행위 당시의 사정으로 인해 결과발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는 불능미수가 아니라 장애미수가 될 뿐이라고 하며 대상사건은 불능미수로 의율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그 취지는 일반적으로 혹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만취한 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간음은 실행행위가 종료되기 전에 사전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준강간의 실현가능성에 있어서 결과발생이 가능한 경우에 해당하지만 사안의 경우 사후적으로 밝혀보니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아서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우연한 사정이 개입하여 그렇게 된 것일 뿐 규범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결과발생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밝혀진 결과에 따라서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가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의견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그렇게 되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모든 미수범 사안은 애당초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미수유형으로 분류되어 불능미수범으로 의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위자가 실행행위를 할 당시에 결과발생이 불가능했는지 여부는 그 당시 행위자에게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가 있었는지 여부의 판단문제로 귀결되며 이는 일반적으로 결과가 발생할 수 없음을 알면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관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행위자의 인식을 넘어선 사정들, 즉 사후적으로 밝혀진 점들에 의해 확정되는 문제이므로 불능미수 조문의 적용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사실판단 문제이다. 따라서 결과발생의 불가능 여부는 실행행위 당시 행위자의 예측이나 인식과는 무관하게 사후적으로 증거에 의해 밝혀질 수밖에 없다. 소송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불능미수는 법률상 형의 가중·감면의 이유되는 사실로서 이는 범죄사실 자체는 아니지만 범죄사실의 존부만큼 피고인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유이므로 법률상 증거능력이 있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에 의한 입증을 필요로 하는 '엄격한 증명'의 대상이고 따라서 불능미수가 인정되기 위해서 입증되어야 할 사실인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은 사후적 판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반대의견의 논지대로 사전적 관점에 의해서 결과의 실현가능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 실제로 불능미수가 성립될 수 있는 사안은 매우 축소되어 발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위 통찰력 있는 평균인의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행위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사례는 그에게 '현저한 착오'가 없는 이상 관념하기 힘들다. 만일 이처럼 '현저한 착오'가 있는 경우만 불능미수가 인정된다면 피고인에게 불리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바 착오의 의미를 '현저한 착오'로 축소해석하는 것은 법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유추해석하는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3. 맺음말 불능미수는 실행의 착수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이미 결과발생의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결과불법이 거의 소멸했거나 '법익평온상태의 교란'이라는 가장 약한 형태의 결과불법만 인정된다. 다만 행위자의 의사를 고려했을 때 착오가 없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합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법익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은 인정되며 이러한 결과불법의 구조로 인해 결과발생이 가능해서 법익에 대한 '현실적' 위험성이 있는 장애미수에 비해 결과불법이 감경된다.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를 보면 피고인은 간음의 고의로 실행의 착수를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발생의 불가능성이 인정되며 대법원의 판단에 의하면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으므로'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성립될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따라서 피고인을 준강간의 미수범으로 의율한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할 것이며 그 처벌은 합당한 법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안성조 교수 (제주대 로스쿨)
준강간죄
장애미수
불능미수
준강간미수
취업제한
간음
안성조 교수 (제주대 로스쿨)
2020-11-16
민사소송·집행
조세·부담금
-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 -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Ⅰ. 서론 원천징수란 소득금액을 지급하는 자(원천징수의무자)가 그 상대방(원천납세의무자)으로부터 세액을 과세관청을 대신하여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원천납세의무자는 국가에 대하여 조세법상의 법률관계를 갖지 않으나 원천징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원천징수의무자가 소득금액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면 원천징수의무자의 원천납세의무자에 대한 채무는 모두 변제로 소멸한다(대법원 2001. 7. 10. 선고 2001다16449 판결). 원천납세의무자가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가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인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인지에 대한 다툼이 있다. 이는 잘못 징수·납부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과도 관련된 문제다. Ⅱ. 원천징수와 부당이득 반환 1.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 원천납세의무자에게 지급된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경우 그 반환은 근본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이다. 원천납세의무자는 실제로 지급받은 돈을 반환하면 되고 원천징수세액으로 공제된 돈에 대하여는 아무런 이득을 취득하지 않았으므로 반환의무가 없다. 이는 변제자가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무자의 제3자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였는데 그 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에게 변제금원 반환의무가 없는 것과 같다.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8다290436 판결은 주식회사가 법률상 원인 없이 대표이사에게 특별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하였다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액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 사안에서 대표이사는 원천징수세액을 제외하고 실제 지급받은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2.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가. 국가의 부당이득반환의무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하여 세액을 징수·납부하였거나 징수하여야 할 세액을 초과하여 징수·납부하였다면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이를 납부 받는 순간 아무런 법률상의 원인 없이 그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부당이득을 보유하게 된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따라서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 나. 환급청구권의 귀속 관계 국세기본법은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한 세액에서 환급받을 환급세액이 있는 경우 그 환급액은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에 충당하고 남은 금액을 환급하되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그 환급액을 즉시 환급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나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이 없는 경우에는 즉시 환급한다고 정하고(제51조 제5항) 환급금은 납세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면서(제51조 제6항) '납세자'란 납세의무자와 세법에 따라 국세를 징수하여 납부할 의무를 지는 자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제2조 제10호). 이에 따르면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납세자인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되고 원천납세의무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대법원도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원천납세의무자가 아닌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Ⅲ. 원천징수와 가지급물 반환 1. 대상판결: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 가. 사안 지급자가 제1심의 가집행선고에 따라 임의로 지연손해금 100을 가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 20(기타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 20%)을 공제한 나머지 80을 실제로 지급하였는데 상소심에서 지연손해금 70이 의무 없는 것으로 확정되고 그 부분에 대한 가집행선고가 취소됨에 따라 가지급물 반환범위가 문제된 사안이다. 나. 판시요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하고 지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지연손해금을 실제로 지급하면서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2. 평석 가. 가지급물 지급과 원천징수의무 1) 대상판결의 판시요지 수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의하여 지급자로부터 실제로 지연손해금에 상당하는 금전을 수령하였다면 비록 본안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의 실현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정도로 성숙·확정된다고 해야 하므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제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지연손해금 100이 가지급물이다. 2) 검토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임의지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을 실제로 지급하여야 하고 소득세액 징수는 본안판결 확정 후 다른 절차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원천징수세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상판결의 판시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는 판례평석이 공간되었고 실무상 대상판결의 적용에 의문이 없다. 나.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과 원천징수세액 1) 가지급물 반환의 법적 성질 가집행선고에 따른 변제의 효력은 그 가집행선고가 취소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발생한다(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38127 판결). 따라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금원을 지급받았다가 그 가집행선고가 실효됨에 따라 금원의 수령자가 부담하게 되는 원상회복의무는 성질상 부당이득 반환채무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1다81320 판결). 2) 대상판결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방법 가지급물 액수가 100(= 실제로 지급된 소득 80 + 원천징수세액 20)이므로 이 금액에서 정당한 지연손해금 30(= 실제로 지급된 소득 중 정당한 24 +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중 정당한 6)을 뺀 나머지 70이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라 법률상 원인이 없게 되는데 이 70은 실제로 지급된 소득 56(= 80-24)과 과다하게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14(=20-6)로 구성된다. 따라서 수급자가 실제로 지급받은 가지급물 중 56을, 국가가 원천징수세액으로 납부된 가지급물 중 14를 각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지급자가 원천징수세액 14를 국가로부터 환급받기로 하여 가지급물 반환신청에서 제외한 까닭에 이 부분 가지급물 반환주체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판시가 없었다. 3) 검토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만을 지급하더라도 전체 소득금액 지급채무에 대한 변제로 유효하고(대법원 2001. 7. 10. 선고2001다16449 판결) 이는 가집행선고에 따른 지급이라 하여 달리 볼 것이 아니다. 따라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이 지급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때 원천징수세액 20은 실제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지급된 것으로 인정될 뿐이므로 그 인정효과가 상실되었을 때 실제로 지급된 것과는 달리 취급된다.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가 아니라 변제금원을 수령한 제3자가 변제자에 대하여 부당이득 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처럼(대법원 1990. 6. 8. 선고 89다카20481 판결) 가집행선고가 취소되어 가지급물 지급의 변제효과가 상실된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실제로 수령한 국가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공제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고 하여 수급자에게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하여도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발생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대상판결은 원천징수세액 부분도 가지급물 지급의 효력이 있고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고 이를 종래의 대법원판결에 비추어보면 지급자에 대한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가지급물 반환의무(세액환급의무)는 국가에게 있음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상판결이 별다른 설명 없이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피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라고 설시한 까닭에 수급자의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어 아쉽다. Ⅳ. 결론 수급자가 지급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을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할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을 반환하면 되고 이는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도 같다.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수급자에 대한 실제 금원의 지급과 국가에 대한 원천징수세액의 납부가 모두 가지급물 지급에 해당하고 가집행선고 판결이 취소된 경우 가지급물 반환의무로 수급자는 실제로 받은 돈을, 국가는 납부된 원천징수세액을 지급자에게 반환(환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원천징수세액
가지급물반환
가집행선고취소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2020-11-09
기업법무
형사일반
-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6도18858 판결 -
채용비리와 업무방해
I. 대상판례 회사의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 피고인(상무이사 D) 외 3인의 면접위원(A·B·C)이 면접을 실시하였는데 A가 채점표를 제출하고 먼저 면접장소를 떠난 후 D가 면접점수와 무관하게 자신이 임의로 순위를 정한 명단을 B·C에 제시하여 이들의 동의를 받고 그에 따라 최종합격자를 결정하였으며 대표이사인 E도 이러한 채용을 양해한 사안에서 검사가 A 또는 E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는데, 대법원은 (i) 직원채용업무는 대표이사에 귀속되고 A의 업무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직원채용에 관한 업무'가 아니라 직원채용을 위한 '면접업무'이며 (ii) 채점표를 제출하고 면접장소를 이탈함으로써 A의 면접업무는 종료되었으므로 그 후 D가 합격자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더라도 A에게 오인·착각·부지(이하 '오인')를 일으켰다고 할 수 없고 (iii) 대표이사 E도 위와 같은 채용방식을 양해하였으므로 E에게 오인을 일으켰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무죄 취지로 판단하였다. II. 검토 1. 판례의 유죄법리 채용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종래 판례는 이를 업무방해죄로 의율하여 왔다. 그리하여 점수조작으로 필기시험에 합격시켜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면접위원으로 하여금 응시자의 정당한 자격 유무에 관하여 오인을 일으키게 하는 위계로 면접업무의 적정성 또는 공정성을 저해하여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고(2009도8506) 특정인이 부정하게 포함된 사정안에 대해 심의·의결을 하게 하는 것은 교무위원들의 입학사정업무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을 방해한 것이라고 한다(2017도19499). 요컨대 심사(면접이나 사정)의 대상자나 심사자료의 내용에 조작이 있으면 이를 토대로 하는 심사위원에 대한 업무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비록 채용권한은 대표자에게 있고(2005도6404) 심사위원의 업무는 그로부터 위임된 업무이지만 이는 독립된 업무로서 대표자와의 관계에서도 타인의 업무에 해당하여 대표자의 지시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라 한다(2017도19499, 2009도8506, 92도255). 2. 채용비리는 업무방해 문제인가 가. 엄격해석의 요청 이와 같이 우리 판례는 채용비리를 업무방해죄로 의율하고 있지만, 업무방해죄를 형법상 구성요건으로 규정한 입법례는 일본형법 정도가 발견되고 독일형법도 프랑스형법도 그러한 규정이 없다. 일본형법의 업무방해죄는 원래 노동쟁의를 대상으로 만들어졌었다. 우리 형법은 법문상 그러한 제한이 없지만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가 많았는데 근자에 이르러 실무상 채용비리로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채용비리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업 및 경제활동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되기 때문에 법률에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기업은 누구를 고용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가령 특정한 사상이나 신조를 이유로 고용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위법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이다. 미국법에서도 업무방해죄 규정이 발견되지 아니하고 나아가 사기업이 부정한 고용을 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되는 사례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사기업에서의 채용비리를 형사처벌하는 것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업무방해죄를 운용함에 있어 가급적 그 적용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며 이를 채용비리에 적용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 공정성과 불법의 주소 우리 판례는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법리가 확고하다(2006도1721 등). 그러나 업무방해죄의 연혁과 입법례들을 살펴볼 때 이러한 법리가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업무수행 자체가 방해된 경우들이 실무상 문제되고 있으며 학설도 업무의 내용적 적정이나 공정이 방해된 경우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채용비리가 사회적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다른 지원자들 나아가 공정함이 저해된 사회가 피해자이다.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채용비리를 행한 회사나 면접위원들의 이익이 침해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판례가 이들을 피해자로 한 업무방해죄로 의율하는 사이 정작 채용비리의 트리거가 된 청탁자(대체로 유력자)들은 처벌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있다. 공정성이라는 명분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공정의 피해자라기보다 오히려 가해자라 할 수 있는 회사 등을 보호하는 업무방해죄로 달려간 것이다. 사회적 분노는 불법을 구성할 수 있지만 그 불법을 담는 구성요건이 아닌 엉뚱한 구성요건을 끌어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만일 채용비리의 불법이 회사나 면접위원들에 대한 것이라면 이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방해되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법상 이러한 청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매우 의문이다. 채용비리의 불법은 업무방해에 있지 않다. 3. 판례 유죄법리의 이론적 난점 나아가 판례에 따라 채용비리를 업무방해로 의율한다 하더라도 그 법리(이하 '유죄법리')에는 여러 난점이 있다. 가. 업무의 타인성 채용절차는 다양하지만 필터링-서류전형-1차 면접-2차 면접의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평가자(이하 '면접위원')의 평가를 토대로 인사팀이 사정표를 작성하고 이 표를 토대로 결정권자가 단계별 합격자를 결정하는 구조가 전형적이다. 유죄법리는 면접위원의 업무는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독립된 타인의 업무이므로 대표이사나 인사팀의 점수조작은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한다. 위 법리는 결국 위임인(대표이사)의 방해로 수임인(면접위원)이 수임업무를 적정하게 행하지 못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임인의 방해로 수임인의 업무가 적정하지 못한 결과로 되었더라도 선관의무(민법 제681조) 위배가 있다고는 할 수 없어 위임계약상 책임질 일이 없는 수임인이 어떠한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도 없다. 면접업무는 적어도 공정성에 관한 한 타인의 업무라고 하기 어렵다. 나. 업무의 내용범위 면접위원의 업무는 공정한 채용업무가 아니라 면접업무 자체이다. 대상판례는 이를 인정하고 면접업무가 종료된 이후에는 그 단계 채용절차가 끝나지 않았더라도 당해 면접업무에 대한 방해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면접종료 후 사정표를 조작하여 결국 불공정한 채용업무가 되더라도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에 유죄법리는 다음 단계의 면접위원에 대한 위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최종면접에 부정이 있는 경우나 특별채용 또는 서류전형만 있는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채용업무의 공정성은 면접업무가 아니라면 면접업무는 주어진 대상자에 대한 면접평가 자체에 그치지 나아가 전단계에서의 대상자 선정이 정당했는지 여부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죄법리가 말하는 응시자 자격에 관한 위계는 업무범위 밖의 사항에 대한 것이고 이로써 면접업무의 공정성이 저해된다고도 할 수 없다. 유죄법리를 관철한다면 전단계의 조작은 이후의 모든 업무에 대한 방해가 된다고 하게 된다. 회사의 업무는 대체로 많은 사람이 협동하여 수행되는데 누군가 자신의 업무를 부정하게 행하였다면 이후에 관여하는 수많은 직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게 되며 회사에 대하여 범죄(가령 배임)를 저지른 사람은 언제나 업무방해죄를 동시에 범한 것이 된다. 이러한 결론은 타당하지 않다. 다. 위계의 상대방 대표자의 의사는 법인의 의사로 평가된다. 대표자가 기망행위자와 동일인이거나 공모하는 등 기망행위를 안 경우에는 착오가 있다고 할 수 없어 법인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2016도18986). 마찬가지로 대표자가 채용비리에 관여한 경우에 회사에 대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면접위원에 대한 죄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유죄법리에 의하더라도 면접위원이 공모·양해한 경우는 그에 대한 업무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2009도8506). 사장과 직원이 공모하여 점수를 조작하여 면접시험을 보게 한 사안에서 위계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판례(2005도6404)도 같은 궤에 있다. 이 판례는 면접위원들은 공모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이들에 대한 위계도 부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회사(인사팀)의 부정이 면접업무에 대한 방해는 아니라는 것으로 위계인데 양해했다기보다 위계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저변에서 발견된다. III. 결론 채용비리는 비난받을 행위이다. 그러나 이를 회사나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로 구성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상판례가 업무방해죄의 적용을 엄격하게 한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면접위원에 대한 업무방해죄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모든 관여자가 똘똘 뭉쳐 비리를 저지른 경우에는 오히려 무죄가 되고 관여자가 적을수록 많은 죄가 성립하는 역전현상은 해결하지 못하였다. 채용비리는 업무방해로 의율할 것이 아니다. 이상원 교수(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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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0-10-29
형사일반
-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도13696 판결 -
친작 여부에 관한 기망과 사법자제 원칙
1. 서론 필자는 일전의 기고(본지 2020.10.19.자 판례평석)에서 이 사건의 두 가지 큰 주제 - (a) 이 사건 그림들이 피고인의 창작인지, (b) 친작이 아닌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인지 - 중 첫째에 대해 논하였다. 본고에서는 두 번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친작’이다. 법률적 평가인 ‘창작’과 달리 ‘친작’은 순수히 사실의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작품제작에서 조수의 사용은 관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평론가 반이정 등이 펼친 이 주장에 의하면 다빈치, 렘브란트 등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아는 거장들도 조수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미술계에 그러한 관행이 존재해 온 이상 작품이 친작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미술론’과 함께 ‘조수 사용 관행론’은 이 사건 기소를 공격하는 주요 논리이다. 그러나, 조수 사용이 관행이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친작의 중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 글은 먼저 고지의무를 논하기 위해 작품이 친작인지가 거래상 의미있는 사실인가부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대법원의 사법자제 원칙이 추구하는 결론의 과도함을 지적한다. 2. 친작 여부의 중요성 몇백년간 사라졌다가 최근에 발견된 다빈치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그림이 2017년 경매에서 미술사상 최고가로 판매된 경위는 미술작품의 제작관행과 시장의 상관관계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스튜디오는 공동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거장이 중심이 되어 조수, 도제 등 보조자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일부 고객은 거장의 손길이 더 들어갈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싼 그림을 찾는 고객들은 누가 실제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구세주>를 감정한 전문가들은 이 그림의 얼마만큼이 다빈치의 손으로 그려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이 작품을 경매한 크리스티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 작품이 다빈치의 것이라는 “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정도였다. 이 작품의 제작을 둘러싼 의문은 매수자의 구매의사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정이었지만, <구세주>는 중동의 한 부호에게 미술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매수자의 구매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종합하자면, (ㄱ) 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는 거래상 유의미하다는 것, 그리고 (ㄷ) 모든 매수자들이 친작 여부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동기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참인 명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전제 사실들로부터 친작 여부의 고지의무에 관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3. 고지의무의 인정 여부 고지의무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잘 알려진 문예비평가인 메이어 아브람스에 따르면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형식주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감상해야 하고 다른 외부적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2) 표현주의: 작품은 작가의 특별하고 심오한 감정의 표현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3) 모방주의: 작품은 실제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입장이다. (4) 실리주의: 작품의 가치는 감상자가 얻는 교훈과 정서를 통해 평가된다는 입장이다. (1) 내지 (4)의 어느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친작의 중요성은 달라진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던 미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형식주의였다. 이 논리를 관철하면 대작이란 사실은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술가의 고뇌와 승화를 생각지 않고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입장(2)에서는 그림이 대작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예술이 실제의 모방(3)이라고 보면 작가보다는 작품의 사실성에 더 큰 관심을 둘 것이다. 실리주의(4)에서 보면 친작의 중요성에 대해 작품의 내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고지의무의 인정근거에 관하여는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는 원칙이 있다. 앞에서 살펴 본 사정을 종합하면, 친작 여부는 “경험칙상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대법원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동기나 목적, 용도 등이 다양하고 이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질 수 있으므로, 친작 여부는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는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즉, 친작 여부에 대해 침묵한 것만으로는 기망이 되지 않는다. 4. 사법자제 원칙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결국,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있어서 친작 여부는 고지의무로 격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고지의무에 대하여 판단하는 도입부에서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법관이 법률의 기준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필자는 그 사법관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지면상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한다). 친작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면 사법자제 원칙은 훈시적인 언급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지의무의 유무는 굳이 사법자제 원칙을 동원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자제 원칙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법자제 원칙의 내용은 실제로는 원심의 다음의 언급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심은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작품이 피고인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그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에 의하여 기망당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원심은 단순히 고지의무를 부정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착오 자체를 부정하였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피고인이 그림의 전부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가격에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런데 원심은 그 진술만으로는 친작임을 전제로 매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어서 위 인용된 설시를 하였다. 그 핵심은 ‘위작 또는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실제 사실과 피해자의 인식 간의 괴리가 있었다 해도 착오나 기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이상 작품의 가치에 대한 착오나 기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인데, 일회성에 불과한 이 설시를 굳이 하나의 도그마로 완성한 것이 사법자제 원칙이다. 대법원은 ‘위작 여부나 저작권 다툼 등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5. 적극적 기망 이 사건에는 소극적 기망 외에 적극적 기망의 요소가 있다. 피고인은 각종 언론, 전시, 판매과정에서 자신이 친작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공소사실은 소극적 기망과 적극적 기망의 요소들이 섞여 있었는데, 1심과 원심은 공소사실의 요체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공소사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고심에 이르러 검찰은 피고인이 작품의 저자인 것처럼 행세했다는 ‘묵시적 기망’의 부분에 대해 원심이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묵시적 기망은 작위에 의한 기망의 일종이다. 그것은, 피고인이 그 행위를 통해 친작이라는 외관을 창출했고 피해자들은 그 때문에 원래는 사지 않았을 가격에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은, 원심은 공소사실을 부작위에 의한 기망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기망행위에 의해 적극적으로 착오가 야기된 측면은 고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답은 그 점은 원심이 이미 판단했다는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으로 어떻게 작위에 의한 기망을 이미 판단했다는 것인가? 관건은 착오의 부정에 있다. 원심은 위작이나 저작권 문제가 아닌 친작 여부만 가지고는 착오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대법원은 사법자제 원칙으로 이를 ‘원칙’의 수준으로 격상했다. 그 결과, 피고인이 친작 행세를 했다 해도 피해자는 착오상태에 있지 않고 기망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작 문제도 아니고 저작권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친작 여부의 소극적 기망에 있어 고지의무를 부정한 대법원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기망에 대한 일률적 면책까지 시사하는 사법자제 원칙은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친작 여부가 기망·착오·처분과정의 중요한 고리였고 가해자는 의도적으로 이를 이용하였을 수 있다. 사법자제라 하여 이를 모두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사법의 기능을 지나친 것이다. 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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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용 변호사 (서울회)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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