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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

    이덕연 교수(연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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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lavoj Zizek의 이데올로기 비판론의 관점에서

    I. 문제의 제기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위헌우려, 책임정치의 실종 등의 이유를 들어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면서 슬그머니 공약을 파기했다. 마찬가지로 공약했었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측도 지난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헤쳐 모이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재삼 확인하였지만, 4월 10일에 '국민과 당원의 뜻'을 명분으로 하여 급반전, 공천을 하기로 번복하였다.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자치의 현실과 그것이 지방분권의 실현과 균형발전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중앙집권적 정당구조와 그에 따른 '하향식 공천'의 관행 및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과잉개입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공약, 그것도 핵심공약을 파지(破紙) 버리듯이 파기하는 정치권의 무경우의 행태와 이로써 야기되는 대의정치와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냉소도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대의민주정의 불가피성과, 대의제도의 요소인 정당의 존재와 '정치적 도관기능'의 필수불가결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 말하자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심정적으로는 기대고도 싶은 무정부주의와 현실적인 정치통합체로서 국가를 해체하는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무관심과 외면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시민 모두가 '관찰자'가 아니라 '관계자', 즉 참여자로서 관심을 갖고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다. 불신과 냉소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비이성적인 현실'로 인해 야기된 불신과 냉소에 함축되어 있는 소망과 기대, 그리고 분노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수렴하여 '현실적인 이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II.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론

    오늘날 이데올로기 비판의 담론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젝은 에코(U. Eco)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핵심테제, 즉 전체주의가 '공식적인 단어에 대한 독단적인 집착'과, '웃음 내지는 냉소적인 초연함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인식을 정반대의 역설로 반박한다〔『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역), 2013, 59면 이하〕. 민주주의건 전체주의건 오늘날 '냉소적인 거리두기'가 일종의 '게임의 일부'일 뿐이지, '냉소적 초연함'이 이데올로기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 거짓을 간파하지 못하는 '순진한 의식'을 극복한 징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테제, 즉 "그들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행한다"(Sie wissen das nicht, aber sie tun est) 는 이데올로기 비판의식이 적어도 현대사회의 현실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오늘날 이데올로기적 왜곡은 사태의 본질 자체에 내장되어 있고, '냉소'는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의 지배적인 기능양식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행한다"(Sie wissen das, aber sie tun est). 요컨대, '냉소적 이성'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러한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을 토대로 하여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무용성을 논증하면서 이른바 '증상적 독법', 즉 "이데올로기로 하여금 스스로가 구성되기 위해, 즉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해야 했던 것, 다시 말해 자신의 빈 구멍을 대변하게 하는" 텍스트 해석방법이 더 이상 유효한 독법이 될 수 없음을 단언한다.(위의 책, 64면) 라캉(J. Lacan)을 경유하여 헤겔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함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지젝은 이를 통해 우리가 '탈-이데올로기의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post-modernism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으면서 오늘날 보편화된 냉소주의, 전체주의, 허약한 민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현상들을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위의 책 31면)
    이러한 기대와 전망 속에서 지젝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현실과 그에 따른 주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전제하면서, 동시에 이 한계 자체를 주체의 구성적인 힘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보이고자 한다. 하지만, 헤겔에 의존하여 라캉을 누비고 난 후 지젝이 제시하는 '전제의 정립'과 '정립의 전제'의 논리, 특히 '주체폐기'의 명제, 말하자면 철저히 무의미한 우매함 속에서 받아들이는 실재와 이것이 상징화된 것 사이의 간극을 열어놓기 위해서는 주체가 더 이상 자신을 주체로 전제하지 않는 것, 즉 자신의 주체성 자체를 폐지하는 대가를 지불해만 한다는 사변적인 이데올로기 이론 역시, 긍부정의 입장을 떠나서, 독해능력의 한계를 절감케 할 뿐이다.
    다만, 올바르게 독해하였는지 잘 모르겠다는 전제 하에 또는 적어도 얼토당토않은 해석은 아닐 것으로 믿는 입장에서 읽건대, 역사와 세상 속에 존재하는 또한 주체가 문화활동을 통해 생산한 기호들을 거쳐서(라캉의 말을 빌린다면 '누벼서') 주체에 이르는 반성, 즉 리쾨르(P. Ricoeur)가 말하는 '구체적인 반성'의 필수성과 당위성을 인식론적으로 확인하는 동시에 그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 핵심논지가 아닌가 추측해본다.〔『해석의 갈등』, 양명수(역), 2001, 514면〕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단순한 인식론적 관점에서 수직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이른바 '강한 전체론'(starker Holismus)이 아니라 실제를 토대로 하여 '형태와 지평'의 수평적인 구도로 파악하는 '약한 전체론'(schwacher Holismus)과 연접해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III. 오인과 집착에 따른 잘못된 의제설정

    현실적으로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단순히 지면의 제약을 이유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방식'(?)으로 생략하는 중간의 '누빔논의'는 독자의 독법에 맡기고, 무식한 작자만이 취할 수 있는 과감한 비약의 논법으로 떠오르는 상념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작금의 기초선거 정당공천페지의 의제는 원천적으로 상정에서부터 공론의 중간과정 및 그 종결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하향식 공천의 관행과 국회의원의 과도한 개입 등이 지방자치 민주화에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와 정치환경의 개혁과 개선방안을 모색해야지 정당공천제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향식의 비민주적인 인식에 따른 성급한 즉응적 문제제기에 지나지 않는 바, 전술한 이데올로기 비판론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강한 전체론'의 수직적인 인식론과 연접한 이른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명제와 본질이 다르지 않다. 지젝의 말대로, 모든 민주주의에서 부패하고, 무능력한 보통사람들에 의해 통치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부정과 비효율의 위험도 마찬가지이다. 관건은 근원적인 흠결의 위험성을 직시하면서 완화와 개선의 노력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원래 좀 야비하고, 비능률적인 것이 민주정치이다. 사람과 세상 자체가 그럴진대, '순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따라서 실제적이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젝이 단언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내재적인 위험과 결함이 제거된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차제를 폐기해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순정성'은 철저하게 전체주의의 명제이다.(위의 책, 28면)   
    또한 근본적으로 '불순한' 헌법의 관점에서 보아도 기초선거 정당공천의 여부는 '연불연'(然不然)의 '불구부정'(不垢不淨)의 문제이다. 오히려 정당의 '정치도관의 순기능'을 주목하고, 지방자치의 정치형성적 기능이나 정당의 지방선거참여를 전향적으로 평가하는 헌법재판소의 판례 경향에 따르면(특히 2003.1.30, 2001헌가4 참조), 정당 스스로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은 몰라도, 기초선거 정당공천의 금지가 법제화된다면 그것은 위헌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정당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인 기초지방자치를 격리 및 단절시키는 공천폐지가 얼마나 진지한 검토를 거쳐 이른바 '정치개혁' 또는 '새 정치'의 핵심의제로 설정되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과거의 심각한 폐단에 대한 기억과 함께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인식을 전적으로 공유하는 전제 하에 재삼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극히 소박한 정략적 계산법이나 순정한 허위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현실과 당위로서 '정치'와 정치법인 '헌법'을 제대로 보고 '사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즉 '구체적인 반성'을 거치지 않고 내린 '비정치적인 결정'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반복에 대한 금지는 사유로부터 오는 것이지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곱씹어봄직한 알랭 바디우(A. Badiou)의 말이다.〔'세기', 박정태(역), 20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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