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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대표권 남용이론의 유용성과 한계

    이충상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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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론

    '대표권 남용'(Miβbrauch der Vertretungsmacht)이란 대표이사가 객관적으로는 그 대표권의 범위 내에 속하지만 주관적으로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회사외 이익)을 위하여 대표행위를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이 이론을 활용하는 변호사가 많아져서 이 이론에 관한 판례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 이론에 아직 친숙하지 않은 법관 중에 대표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일부 있다. 그러나 대리권 남용 이론이 '명성 수기통장 사건'(대법원 1987. 7. 7. 선고 86다카1004 판결) 이래 널리 활용되고 있고 대표권의 남용을 대리권의 남용과 구별하여 생각할 이유가 없으므로 대표권 남용의 인정에도 주저가 없었으면 한다.

    2. 대표권 남용의 요건을 오해한 하급심 판례들

    가. 대법원의 판시
    대법원 판결의 다수는, "대표이사가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사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는 유효하지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가 된다"(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7다23807 판결 등)고 판시하고 있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행사한 경우"라고 판시한 경우(대법원 1988. 8. 9. 선고 86다카1858 판결, 1993. 6. 25. 선고 93다13391 판결)도 있다.

    나. 영리목적과 관련하여
    대표권 남용에 있어서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문제의 대표행위가 직접 회사의 이익을 꾀할(영리)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바, 예컨대 시가 200억 원 상당의 회사의 토지를 대표이사의 친구에게 이익을 줄 목적으로 100억 원에 매각한 후 그 매각대금 100억 원을 다른 곳에 투자하여 영리를 도모하였다고 하여 위 토지의 매각이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이는 위 대법원 86다카1858 판결과 93다13391 판결이 "(대표행위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라고 판시한 것("대표행위가 회사의 영리목적으로가 아니고"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에 비추어 알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나2016532 판결은 'A회사의 담보제공행위가 A회사의 이익보다는 관계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A회사의 담보제공행위가 A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유로 A회사의 무상의 담보제공행위를 대표권 남용이 아니라고 판시하였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며, 그 상고심인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4다202004 판결이 대표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필자는 위 다수의 대법원 판결의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라는 판시는 그 의미에 관하여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같은 오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으므로 그보다 위 대법원 86다카1858 판결과 93다13391 판결의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라는 판시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 오로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야 하는지
    "이익을 취득하는 제3자가 같은 계열회사이고, 계열그룹 전체의 회생을 위한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행위로서 그 행위의 결과가 일부 본인을 위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사는 부수적일 뿐이고 이득 또는 가해의 의사가 주된 것임이 판명되면 배임죄의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2006. 11. 10. 선고 2004도5167 판결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에 부분적·부수적·간접적인 이익이 있고 대표이사에게 그러한 의사도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서 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표이사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면 대표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지, 대표권 남용에 해당하기 위해서 대표이사의 행위가 회사에 이익이 되는 측면이 전혀 없고 오로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급심 판결 중에 이 점을 오해하여 "회사의 영리목적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로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만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경우(광주고등법원 2014. 1. 15. 선고 2012나5710 판결), "오로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대표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라고 판시한 경우(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14. 1. 8. 선고 2013가합1463 판결), "제3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으로서 대표권 남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므로"라고 판시한 경우(위 서울고등법원 2013나2016532 판결)가 있는데, 대법원이 멀지 않아 이 점을 명쾌하게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

    라. 일정한 지표가 있는 경우 입증의 필요가 상대방에게 넘어감
    일정한 지표{일본에서는 그러한 지표를 'メルクマル'(메르크마르, 독일어 Merkmal)라고 함}가 있으면 그러한 지표만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표권 남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지표가 있는 대표적인 행위로 회사의 대표이사가 자신의 개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회사 명의의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행위, 변제능력이 상당히 불확실한 제3자에게 대가도 없고 상당하고 합리적인 손실보전조치도 없이 회사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를 들 수 있고, 그러한 지표가 입증되면 그러한 지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사정에 대한 입증의 필요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변제능력이 상당히 불확실한 제3자에게 대가도 없고 상당하고 합리적인 손실보전조치도 없이 회사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면 그것만으로도 일응 대표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지, 그러한 담보제공행위 시에 그 제3자의 재정 상황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어야만 대표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위 서울고등법원 2013나2016532 판결은 위와 같은 점들에서도 대표권 남용의 요건을 오해하였는데 그 상고심은 필자의 견해와 같은 취지로 대표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3. 대표권 남용 이론의 유용성

    예컨대 대표이사가 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제3자에게 시가보다 상당히 싸게 매각한 경우에, 배임행위에 의한 사회질서 위반으로서 무효로 되기 위해서는 제3자가 대표이사의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을 회사가 입증해야 하고,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로 되기 위해서는 제3자가 대표이사의 궁박, 경솔, 무경험을 이용했다는 것을 회사가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한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회사)가 구제되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에 대표권 남용 이론으로 피해자(회사)가 구제될 수 있으므로 대표권 남용 이론이 매우 유용하다.

    윤진수 교수는 "매매계약이 회사 대표이사의 배임행위에 매수인이 적극 가담하여 체결된 것이라면 이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한 판례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대표권 남용의 법리에 의하여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라고 설파하였다{주석, 민법(제4판) 총칙(2) 411면}. 대표권 남용에 관한 수백 개의 판례를 검색해보니, 변호사들이 이 점을 잘 몰라서 대표이사의 행위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는 주장과 대표권 남용이라는 주장을 다 해본 사례들이 많이 보였다.

    반면에 대표권 남용 이론 때문에 거래의 상대방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107조 제1항을 유추적용 하여 거래의 상대방이 대표권 남용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한하여 대표권 남용행위를 무효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거래 상대방의 악의를 요구한 대법원 1987. 10. 13 선고 86다카1522 판결도 있고, 거래 상대방의 중과실을 요구한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2도10822 판결도 있으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통일을 할 필요가 있다.

    거래 상대방의 과실 인정의 기준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4. 대표권 남용 이론의 한계

    대표권 남용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상대방이 거래의 목적물을 제3자에게 양도해버리면 민법 제107조 제2항의 유추적용에 의하여 그 무효를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므로(제3자가 과실이 있어도 선의이기만 하면 대항하지 못함), 대표권 남용 이론으로도 추급을 못 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

    또한 회사의 경영권자가 바뀌지 않는 한에는 대표행위가 대표권 남용으로서 무효라고 회사가 제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때문에 대표권 남용 소송사례가 아주 많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회사가 무자력인 경우에는 그 회사에 대한 채권자가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5. 결론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의 중요한 국가적 화두이고 대표이사의 독단적인 거래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경제민주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권 남용 이론이 독일, 일본에 못지않게 활용되어 경제민주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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