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법률정보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연구논단

    인공지능 기술과 법의 연금술

    김성돈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47973.jpg

    Ⅰ. AI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행위를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함에 따라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형사사법 분야에서는 범죄수사 및 범죄예방 활동에 인공지능 기술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긍정적인 잠재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학계에서는 감시의 일상화나 빅 데이터와 결부된 개인정보의 침해 등 디스토피아의 시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법적용의 영역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프로그램 오류나 기계의 오작동 또는 제작상의 과실로 빚어지는 피해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다. 이미 많은 사례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낮잠 자던 여성의 머리카락을 빨아들인 인공지능 청소기, 마약을 거래하다가 체포된 인공지능 로봇, 독일 전 대통령 부인의 이름에 매춘부로 답한 검색엔진, 상대방에게 모욕적 언사를 한 챗봇, 시험운전 중 인명사고를 낸 자율주행자동차, 기업정보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는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 등 사례들의 목록은 증가일로에 있다.


    Ⅱ. 도전받고 있는 전통적 책임컨셉

    전통적인 책임컨셉에 의하면 위와 같은 사례들의 경우 피해에 대한 민형사법적 책임은 전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인간(제조자, 프로그래머, 사용자 등)에게 귀속된다. 인공지능 로봇 등 지능형 에이전트(이하에서는 ‘지능형 에이전트’라 한다)를 단순한 물건 내지 기계로 취급하는 태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의 자율성과 사회적 학습능력을 가진 지능형 에이전트들이 언제까지나 단순한 물건이나 기계로 취급받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지능형 에이전트들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범위가 점점 확장되어감에 따라 인간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할 여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계 배후에 있는 인간 개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임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설령 책임 귀속을 위한 다른 척도들을 찾아내더라도 더 이상 인간의 행위와 관련시키는 일이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바, 그 지점은 바로 책임의 공백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책임을 묻지 못하는 법은 그 기능의 저하를 거쳐 마비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과학기술 발전의 중단’이 아니라 ‘법의 변화’이다.


    Ⅲ. 진화되고 있는 법

    가장 현실성 있고 효과적인 변화 방식은 지능형 에이전트도 현행 법체계 속으로 편입시키는 방식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방식은 이미 법이 인간이 아닌 ‘기업’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태도에서 관철되었다. 물론 이러한 법의 변화는 집단행위자에게 ‘법인’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에 대해 인간에게 적용되는 법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일정부분 법의 ‘굴절’을 도모한다. 예컨대 인간과는 달리 심리학적 의사에 기하지 않은 법인의 활동에 대해서도 불법행위성을 인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책임의 원칙들에 대한 변형을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특히 양벌규정)은 법인이 인간과 같은 차원의 의사자유와 불법통찰능력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법인에게 형사책임을 귀속시킬 정도로 변하고 있다.

    지능형 에이전트들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하기 위한 법의 발걸음은 점점 빠르게 그리고 그 보폭은 점점 커지고 있다. 1999년 제정된 미국의 통일 전자거래법 섹션 14(1)에서는 전자 에이전트(electronic agent)가 인간과 같은 의사를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와 무관하게 계약체결의 주체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자 에이전트에 의해 체결된 계약의 효과는 여전히 그 배후의 개인에게 귀속되고 있다. 2017년 5월 개정된 독일의 연방도로교통법도 독자적으로 도로를 운행할 수 있는 ‘완전히 자동화된 자동차’에게 피해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키고 있지 않고 제조자나 자동차 보유자(Halter)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수준이다. 그러나 2018년 4월 개정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도로교통법은 자율자동차 시스템 자체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이 법률은 긴급 상황을 대비하여 인간 운전자가 항상 운전석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요구를 삭제하고 - 자동화된 자동차의 수준을 넘어 - 핸들과 페달이 없는 ‘자율자동차’를 ‘모든’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5월 유럽의회에서 채택된 로봇에 관한 민법 규칙 보고서 초안에서는 이른바 전자인(E-person)을 구체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까지 구성함으로써 자신이 야기한 피해에 대해 민사적 배상책임까지 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Ⅳ. 두 가지 오해와 법인격의 등급

    이 지점에서 법률가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점을 한 가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 아닌 존재를 의인화하여 법인격을 부여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그 존재가 가지는 ‘존재론적 특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혹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 특징들(마음, 자의식, 성찰능력, 공감능력, 자유의사)을 지능형 에이전트들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은 오해에 기인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와 결부되어 있는 또 다른 오해가 있다. 법인격의 인정은 ‘정도’(등급)의 문제이지 ‘유무’(존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보면 뉴질랜드에서와 같이 강(江)에게도 법인격 부여가 가능하고,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에서 와 같이 생명권 뿐 아니라 복지권도 동물에게 부여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차원의 법인격 부여는 - 민법의 태아의 법적 지위와 같이 - 어디까지나 권리의 주체로서 그 권리의 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차원의 의인화에 불과하다(1단계 법인격). 한 단계 더 나아가면 - 앞서 언급한 예에서와 같이 - 행위능력까지 인정된 차원의 법인격도 인정될 수 있다(2단계 법인격). 여기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법인격을 인정하려면 법은 그 대상에게 책임능력까지도 부여해야 한다. 유럽연합 의회의 로봇에 관한 민법 규칙 보고서 초안에 등장한 전자인은 이미 그러한 수준의 법인격을 부여되고 있다(3단계 법인격). 

     
    문제는 행위능력 뿐 아니라 의무를 부담할 능력, 즉 책임능력의 부여 여부는 각 법체계의 요구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형법은 규범의 유지(안정화)라는 목적 위해 손해의 전보를 수단으로 하는 민법과는 달리 사회윤리적 비난을 의미하는 형벌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 형법이 형사책임의 인정요건으로 행위능력이나 독자적인 재산권으로 충분하지 않고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생물학적 연령으로는 14세 이상의 사람)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되더라도 형벌까지 부과 받을 정도의 성숙된 법인격을 부여받으려면 자신이 위반한 규범의 사회적 의미내용을 이해하고 그 규범위반에 대한 응답으로 부과되는 형벌의 사회윤리적 의미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4단계 법인격). 물론 법은 이 단계의 법인격 부여를 위해서도 인공지능 에이전트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론적 특질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세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사회에서는 동물들도 형사법정에 소환하여 재판을 받게 한 후 목졸라 살해하기도 하고 형무소에 수감하거나 유형을 보내기도 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현대사회에서 전 세계의 법질서는 일정한 조건하에 조직화된 개인의 집단(사단법인) 뿐 아니라 단순한 목적 재산 그 자체(재단법인)에 대해서 형사책임까지 인정하고 있다.


    Ⅴ. 사회 구성의 원리와 법의 연금술

    오늘날 법인 외에 다른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해 형사책임까지 인정하려는 사고방식은 법의 세계에서 추방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법으로 하여금 다양한 지능형 에이전트들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진화하는 외적 계기를 주고 있다. 법이 그러한 존재들을 의인화하여 새로운 행위자로 구성하고 마침내 형사책임을 질 능력까지 부여하는 배경과 조건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사회를 구성하는 내적 다이내믹 내지 사회구성의 원리에 달려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학은 이제 미구에 탄생될 새로운 전자‘인’의 법적 책임을 근거지우기 위해 행위능력과 책임능력이라는 생기를 주입할 수 있는 정밀한 이론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행위자들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장의 문구를 작성하는 - 현대적 의미의 연금술사인 - 입법자가 고대의 연금술사와 같은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김성돈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