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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재판지연에 대한 입법적 대응의 필요성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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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문제의 제기-재판지연에 대한 권리보호의 공백상황

    헌법 제27조의 재판청구권의 기능이란 포괄적인 사법적 권리보호의 보장에 있다. 즉 그것을 통해 효과적인 권리보호의 보장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법통제가 지닌 사후적·진압적 권리구제로 인해 권리보호의 실효성은 결과적으로 의문시될 수 있다. 너무 늦게 강구된 권리보호는 그 중간에 행정이 기성사실을 조성하거나 원고가 사망하여 사실상 효과가 없게 되거나 그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권리보호의 효과성은 시간의 요소에 좌우되기에 헌법 제27조 제3항에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지연된 재판과 관련해서 강구할 수 있는 구제수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가배상법상의 공무원의 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헌법소원심판청구의 차원에서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특별규정(민법 제839조 제2항 제2문)이 없는 이상 일반적인 국가배상책임의 법리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재판상의 불법의 성립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없는 데 비춰 배상책임의 인정은 이론상의 가능성에 머물 뿐 기대할 수 없다. 헌법소원심판의 경우에도 '헌법 제27조 제3항 제1문에 의거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입법형성이 필요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한 어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청구권이 이 헌법규정으로부터 직접 발생하지 아니 한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 1999.9.16. 선고 98헌마75 결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인용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법원에서 재판지연은 존재한다. 그런데 유럽과 독일의 경우에는 우리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Ⅱ. 유럽의 법상황

    유럽최고재판소(EuGH)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상당한 절차기간의 원칙을 인정하여 비단 행정절차만이(EuGH, Slg. 1997, I-1503) 아니라 재판절차에서도(EuGH, Slg. 1998, I-8417) 인정하였다. 유럽인권협약(EMRK) 제6조 제1항은 '공평한 절차에 관한 권리'의 표제하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민사법적 청구권과 의무와 관련한 분쟁이나 자신에 대한 형사소추에 관해서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법률에 의해 성립한 법원에 의해 공평한 절차에서 공개적으로 상당한 기간내에 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유럽법원은 동 규정에 의거하여 상당한 절차기간의 원칙을 유럽연합법의 일반적 법원칙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유럽기본권헌장(GRCh) 역시 제41조 제1항(좋은 행정에 관한 권리)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용무가 연합의 기관, 기구, 그리고 기타 부처에 의해 공평하고 적합하게 그리고 상당한 기간 내에 처리되는 데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며, 제47조(효과적인 권리구제와 불편부당한 법원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건이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하며 법률에 의해 사전에 설립된 법원에 의해 공평한 절차에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상당한 기간 안에서 심리되는 데 대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제2문). 현재 유럽법원은 유럽인권재판소가 상당한 절차기간과 인권협약 제13조에 따른 권리구제제도와 관련해서 정립한 요청을 목표로 삼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인권재판소(EGMR)는 상당한 기간내에 판결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때에는 유럽인권협약 제13조에 의한 효과적인 권리구제가 회원국 국내법에 존재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EGMR, NJW 2001, 2694 Rn.146 ff). 

      

    과도하거나 지연된 절차진행은 특히 관련인을 위하여 절차에서 중요한 이익, 사건의 복잡성, 참가자의 행태에 의거하여 판단된다. 이들 기준은 완결적이지 않고 절차의 진행이 이들 기준에 의거하여 정당화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면 충분하다. 사건의 복잡성만으로도 일견 장기간의 진행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참가행정청의 행태만으로 과도한 절차진행을 성립시킬 수 있다(EuGH, Slg. 2002, I-8375). Groupe Gascogne 사건의 판결(BeckRS 2013, 81119) 이후에 행정절차 및 유럽1심법원에서의 과도한 절차진행은 해당 결정이나 판결이 폐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과도한 진행이 절차의 결론에 영향을 미친 것을 특히 관련인의 방어권을 축소한 것을 조건으로 한다. 만약 이런 요건이 존재하지 않으면 유럽연합법상의 손해배상청구권으로 나아간다(EU법상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해서는 김중권, EU행정법, 2018, 192면 이하).


    Ⅲ. 독일의 법상황

    독일 연방정부를 상대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기된 인권심판청구의 다수가 있었는데 유럽인권협약 제6조 1항의 위배를 이유로 한 이들 다수의 재판의 정점이 2006년 6월 8일자 유럽인권재판소의 Surmeli 판결이다. 여기서 유럽인권재판소는 그 당시에 재판지연에 대해 유럽인권협약 제13조상의 유효한 권리구제가 독일법상으로는 의무에 반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NJW 2006, 2389). 나아가 2010년 9월 2일의 Rumpf사건에서(NJW 2010, 3355) 유럽인권재판소는 독일에서의 지연된 절차진행은 구조적인 문제에 해당한다고 확인하면서 독일 연방정부에 대해 동 판결의 확정력이 발생한 후 늦어도 1년 내에 재판지연에 대한 권리구제제도를 도입할 것을 과하였다. 독일의 경우에 비록 민법 제839조 제2항이 재판지연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의 가능성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호응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럽인권재판소의 이상의 판결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것이라 여겨진다.


    유럽인권재판소의 일련의 압박에 의해 산물이 '지연된 재판절차와 형사수사절차에서의 권리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2011년 11월 24일에 발효한 이 재판지연보상법은 2011년 12월 3일부터 독일 법원에 관한 일반법인 재판소기본법(GVG) 제17절에 편입되고 그 내용이 연방헌법재판소법과 행정법원법 등이 준용되고 있다. 재판지연보상법에 의해서 독자적인 국가책임법적 손실보상청구권이 도입된 셈인데 법적으로 동법은 사법보장청구권의 범주에서의 효과적인 권리보호에 관한 청구권을 구체화한 것이다. 다만 국가배상책임과는 양립한다. 재판지연보상법은 양면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재판절차의 지연에 대한 질책의 가능성이 제공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손실보상으로 그 지연을 제재한다. 즉 재판지연보상법의 기본구상은 예방적 조치와 제재적 조치의 결합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국가배상책임과는 달리 유책성의 요청을 버리고 손실보상의 구제방도를 취하였으며 국가배상책임에서의 완전배상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고 상당보상의 원칙이 통용된다. 손해발생에 대신하여 불이익의 발생을 요건으로 하며 해당 법원의 상급법원이 관할한다. 핵심물음인 재판기간의 과도함(비상당성)은 개별사정에 따라 특히 소송절차의 곤경과 의의, 소송참가자와 제3자의 행태에 따라 가늠된다(재판소기본법 제198조 제1항 제2문).
    재판지연보상법은 입법사적으로 확실한 정곡에 해당한다. 가령 독일 연방헌재가 처음으로 헌법소원심판절차의 과도한 지속을 이유로 심판청구인에게 연방 헌재법 제97조의 a에 의거하여 손실보상을 하였다(BVerfG Beschl. NJW 2015, 3361, 3362). 5년 6개월의 헌법소원심판절차기간은 헌재의 임무와 지위에서 바로 과도한 지연이라 여겨지지는 않지만 각 원의 소관의 문제가 불분명하고 사건배당도 되지 않아 소요된 약 30개월의 재판지연은 상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독일 연방헌재는 형사사건의 본안에서의 신속화명령(원칙)을 헌법적으로 기본법 제2조 제2항 제2문의 자유의 불가침에서 도출하였다(BVerfGK 17, 517, 523). 연방의회에서 동법률이 가결될 때 결정한 것처럼 동법은 시행 2년 뒤에 평가하도록 되었는데 완전히 새로운 법적 대상의 전환과 모든 사법기관을 다룸에 있어서 전형적인 곤란함을 고려하면 중간평가에서 소송의 홍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 손실보상소송의 건수가 통계상의 지연불평의 조사치보다 훨씬 적었다고 하면서 예방적인 권리구제가 사실상으로 재판의 신속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Benjamin Schmidt, NVwZ 2015, 1710(1711)). 비록 재판지연의 과도함과 같은 개념의 불확실성, 다른 소송구조와의 차이점 등 여전히 다투어지고 있지만 관련 판례에 대한 평가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조만간 제도적 틀이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Ⅳ. 맺으면서 -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에 머물 수는 없다

    시간은 금이다. 재판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는가? 자력구제금지와 평화의무를 위해 국가는 그 자신을 위한 권력독점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자력구제금지와 평화의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재판지연에 대한 책임 역시 국가가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재판지연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재판지연보상법은 효과적인 권리보호의 요청과 법관의 독립성의 요청간의 충돌에서 나름의 조화로운 해결책의 산물이다. 언제까지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에 머물 수는 없다. 헌법 제27조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외국의 입법례를 참고하여 우리의 현실에 맞춰 적극적인 입법적 해결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비단 재판절차만이 아니라 행정절차에서도 과도한 시간의 소요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의의 지체가 문제되지 않을 사전의 방책 역시 요구된다. 하루속히 행정소송에서 집행정지의 원칙이 채택되어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명제가 행정소송에서도 운위되지 않길 기대한다(상론, 김중권 재판지연에 대한 국가책임에 관한 소고, 공법연구 제47집 제2호, 2018. 12. 31).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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