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법률정보

    연구논단

    피해자 권익 보호 관련 법률 입법에 대한 고찰

    - 가습기살균제특별법을 중심으로 -

    양문식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64073.jpg

    1. 서론

    최근 피해자 권익 보호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관련 법률 입법이 활성화되고 있다. 시민의 안전 및 보건상의 위해사고 발생으로 인한 인명 피해 방지를 위해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고 기업의 행위로 인하여 다수의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적 또는 건강상의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하여 4개의 집단소송법 관련 법안도 발의된 상태이다. 이러한 법률이 입법적 목적을 실현하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헌법 테두리 안에서 제정됨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가해자들에게 위헌성에 대한 빌미를 주어 신속한 피해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해구제 법률 등에서는 가해기업의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간의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하는 조항들이 추가되고 있다. 2016년도에 시행된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및 2017년에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가습기살균제특별법' 또는 '특별법')에서는 '상당한 개연성'에 따른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규정하였다. 또한 2017년에 개정된 제조물책임법에서도 제조물의 결함 및 인과관계에 관한 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추정 규정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피해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에게 무거운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지우려는 입법적 조치이다. 

     

    이러한 추정을 통한 입증책임 완화를 법률에 규정함에 있어 원고의 입증책임을 어느 정도로 완화시키는지가 입법적 측면에서 형평성과 합헌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징벌적 목적으로 원고의 입증책임을 지나치게 완화시켜 피고의 반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원고와 피고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원고가 입증해야 하는 결함 및 인과관계에 대한 정황이 경험칙상 높은 개연성을 내포하지 않는다고 할 경우 그러한 추정 조항은 우리의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가습기살균제특별법과 인과관계 추정 규정

    특별법에서는 '상당한 개연성'을 증명할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함으로써 피해자의 소송상 입증책임을 상당히 완화하였다. 그런데 2020년 3월 24일 개정되어 같은 해 9월 2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별법에서는 인과관계 추정 요건을 다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낮추었다. 즉 '노출 사실'과 '노출 이후 질환의 발병 또는 악화 사실'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조사·연구에 따라 노출과 결과 발생 간의 역학적 상관관계가 확인된 사실'만 입증되면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법의 개정 내용 특히 '역학적 상관관계'라는 개념은 헥터 맥도널드의 저서 '만들어진 진실'에 나오는 "연관성을 보이는 두 자료는 당연히 인과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오보자를 조심하라", "가능성 있는 다른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하나의 인과관계만 강조함으로써 진실을 편집하는 것을 경계하라"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3. 역학적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연구 결과를 통한 일반적 인과관계의 추정의 문제점

    역학적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연구 결과는 질병의 일반적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로서 원천 자료의 신뢰성, 연구방법, 분석 및 해석 등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역학적 상관관계'라는 개념은 입법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에 도입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8월 27일 입법예고된 개정 특별법 시행령안에서는 '역학적 상관관계'의 구체적인 정의나 개념을 수범자들이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일정 부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환경부장관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이나 그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은 기관이 역학조사, 건강모니터링 등을 통하여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발생 간의 역학적 상관관계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장관의 위임을 받은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이나 그로부터 인정받은 기관이 조사·연구를 통하여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법원이 해당 조사·연구의 신뢰성 및 타당성에 대한 심리를 하지 않고 피고로 하여금 곧바로 인과관계 없음을 반증하게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원인에 대해 다양한 추론이 존재할 수 있는 인과관계라는 과학의 영역에 대해 법률이 특정 결론을 추론하도록 하는 것은 자칫 자연 및 과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정보의 대칭성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 등은 피고 기업들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제조물의 결함이나 과실의 경우 피고가 원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에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나 질병 발생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인과관계는 이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과학적 인과관계의 입증은 추정 규정보다는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보건학적 연구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 자료, 유병자와 노출자들의 건강기록, 그리고 관련 통계자료 등도 조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피고는 이러한 자료 및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 있어서 위와 같은 조사·연구에 따라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 피고가 반증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 등은 특별법 제6조의 2에 따른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의 대상으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피고가 위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구조이다.

     

    대법원도 고엽제 피해 소송 사건(2006다17539 판결), 흡연 피해 소송 사건(2011다22092 판결), 자동차배출가스로 인한 천식 피해 소송 사건(2011다7437 판결) 등에서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그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개인 또는 집단이 그 외의 다른 위험인자에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이상 그 역학적 상관관계는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면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거나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칠 뿐 그로부터 그 질병에 걸린 원인이 그 위험인자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는 비특이성 질환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여 왔다.

     


    4. 개별적 인과관계 추정의 문제점

    특정 인자와 질병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려면 일반적 인과관계 및 개별적 인과관계가 모두 존재해야 하는데 개정 특별법은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 일반적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개별적 인과관계도 추정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특정 요인이 특정 질병을 유발한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천식이나 폐렴과 같은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 그 원인이 개인의 유전, 생활습관, 다른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해당 질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개별적 인과관계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는 경험칙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피고로서는 해당 질환이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음을 입증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데 이는 유전, 생활습관, 기저질환 존재여부 등 원고의 지극히 개인적 영역이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들은 일관되게 비특이성 질환에서의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시기,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하는 등으로 그 위험인자에 의하여 그 비특이성 질환이 유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5. 결론

    개정 특별법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과학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인과관계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법률에 정해진 특정 요건만 충족되면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한 점이다. 피해구제를 원활하게 한다는 순기능은 있으나 과학의 영역을 인위적인 요건으로 규정한 법규로써 추정하도록 하여 사실상 특정 결론을 강제한다면 법이 과학적 진실에 반하는 결론을 강제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 피해 재원이 공적 성격을 띠는 정부 재원이 아닌 사인의 재산이라면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산권 침해에 해당할 수도 있다. 과학적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의 영역이며 법관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검토하고 의견을 청취한 후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토록 하는 것이 우리의 법제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사안은 여러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안으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하고 공정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 피해자들에게 혼선을 최소화하고 유사 사회적 이슈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문식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