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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일본이 주장하는 '한국의 국제법 위반상태론'에 관한 법적 검토

    박배근 교수 (부산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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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의 소재

    2018년 대법원은 이른바 강제징용 피해자의 피해 구제에 관한 세 개 판결을 내렸다. 신일철주금 재상고심 판결(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판결)과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 상고인으로 하는 두 개 판결(2018. 11. 29. 선고 2013다67587 판결, 2018. 11. 29. 선고 2015다45420 판결)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입장과 주장을 표명하였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법적 입장과 주장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점들이 있다. 국제법의 관점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주장에 담긴 불명확한 문제들을 분석, 검토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국제법적 쟁점을 명확히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출발점이며 기초가 될 것이다.


    2. 일본 정부의 법적 주장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입장과 주장은 2019년 7월 19일 외무성 담화에 첨부된 사실보고서(Fact Sheet)에 정리되어 있다. 그 중 법적 분석 내지 검토가 필요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 반한다.
    ②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에 대하여 부당한 불이익을 부담시킨다.
    ③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국제법 위반 상태'가 발생하였다.
    ④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 위반이다.
    ⑤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된 하급심 판결은 청구권협정 위반이다.
    ⑥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된 강제집행절차는 청구권협정 위반이다.


    3. '위반'의 이중 의미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 제2조에 '반한다'고 말한다. 이 '반한다'는 표현은 '위반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에 기초하여 일본 정부 주장을 보면 핵심은 한국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 위반'이며 동시에 이들 판결에 의하여 '국제법 위반 상태'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 일본도 '위반'이라는 법 개념을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주장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일본 정부가 '위반'을 둘 중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위반'은 첫째로 의무에 반하는 행위(작위 또는 부작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둘째로 법령 사이의 충돌 또는 저촉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어에서 전자를 violation 또는 breach로, 후자를 conflict로 명확히 다르게 쓰고 있는 점과 대비되는 점이다.


    행위로서의 '위반'에는 법적 책임이 따르며 그것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위반'이라는 충돌 상태는 해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충돌하는 두 규범 중 어느 하나가 우선적 효력을 가지거나 '무효'가 되는 결과만이 있다.


    4. 일본 정부 주장의 검토

    일본의 법적 입장 표명에서 사용된 '위반'이 '행위'를 의미한다면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 '행위'가 청구권협정이나 다른 국제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 행위(작위)가 청구권협정이나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되려면 그러한 판결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청구권협정에 있거나 다른 국제법이 있어야 한다. 청구권협정에는 한국 법원의 일정한 '판결' 행위를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혹 청구권협정 당사국 사법부는 청구권협정 내용에 명백히 반하는 판결을 해서는 안 될 의무를 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의무는 청구권협정상 의무가 아니라 일반 국제법상 의무이다. 


    일반국제법은 국가 사법기관의 '재판거부(denial of justice)'를 금지한다. 보통 재판거부는 절차적 재판거부와 실체적 재판거부로 유형화된다. 절차적 재판거부에 해당하는 행위로는 외국인에게 유리한 판결 집행 거부, 외국인에게 변호인과 소통할 기회를 거부하는 것, 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 재판 기회 제공 지연, 유능하고 성실한 변호사와 외국인의 접촉을 막는 것, 증언 청취 거부, 외국인에게 제기된 제소 내용을 통지하지 않는 것, 외국인을 위한 증인에 관한 권리 부인, 과도하게 신속한 절차 진행으로 통상적인 사법적 구제를 향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거론된다.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절차에서 위와 같은 유형의 행위는 없었다. 일본 정부도 한국 대법원이 절차적 재판거부 행위를 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체적 재판거부'는 보통 '명백한 부정의(manifest injustice)'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 사례로는 국내법을 위반하여 내려진 판결, 국제중재위원회 판정을 무시하고 내려진 판결, 승인된 국제법원칙을 위반하여 내려진 판결, 사법부의 명백한 악의와 신의성실의 결여를 보여주는 판결 등이 거론된다. 


    실체적 재판거부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국제법상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다. 특히 조약이나 국제법 규칙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하여 재판한 결과 발생하는 손해에 대하여 국가는 국제책임을 부담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그러한 견해가 타당하려면 당해 조약에 관하여 명시적인 공식 해석이 먼저 존재하여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이 실체적 재판거부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 대법원이 악의적으로 국내법을 잘못 적용하였으므로 실체적 재판거부를 하였다고 주장할 여지는 있다. 예컨대 한국 대법원이 시효나 제척기간 또는 회사의 동일성 등에 관한 한국 민법 또는 상법을 일본 회사인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하여 악의적으로 잘못 적용하여 판결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에 그러한 악의가 있었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그러한 악의의 입증은 극히 어렵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기 때문에 실체적 재판거부에 해당하는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아베 전 총리는 신일철주금 재상고심 판결 직후 국회 답변에서 이 판결이 '국제법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비판하였다. 한국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을 명백하게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여 실체적 재판거부 행위를 하였다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타당하려면 한국 대법원 판결이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청구권협정에 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에 관하여 있을 수 있는 여러 해석 가능성 중 하나를 취하여 판결하였을 뿐이므로 객관적으로 '명백히' 청구권협정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베 전 총리가 말하듯이 '있을 수 없는' 청구권협정 해석을 근거로 한 판결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국제법 위반 '상태'가 발생하였다는 주장도 한다. 대법원 판결과 청구권협정 사이의 충돌 '상태'가 발생하였다는 의미로 일본 정부가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라면 이는 쉽게 이해된다. 일본 정부가 규범간 '충돌 상태'라는 의미로 국제법 위반 '상태' 발생을 주장하였다면 이는 대법원의 판결 '행위'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5. 맺는 말

    일본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실체적 재판거부 '행위'라고 보고 그러한 행위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실제로 한국 대법원의 실체적 재판거부를 주장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대체로 일본 정부가 말하는 '청구권협정 위반' 또는 '국제법 위반'이란 한국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과 충돌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다고 보고 있다.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에 관하여 한일 양국 사이에 국제법상 분쟁이 존재하려면 일본이 특정 청구(claim, 또는 요구)를 제기하고 한국이 그것을 거부하여야 한다. 분쟁이 발생하려면 특정 청구에 대한 '특정한 이의(objection)'가 제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명확한 요구와 그에 대한 거부가 없는 상태의 공격은 '분쟁'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분쟁의 존재를 전제로 일본이 청구권협정상의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였다면 당연히 한국에 대하여 명확한 법적 청구를 제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정부의 그러한 법적 청구를 확인하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인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강제집행절차'도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이들 판결이 청구권협정의 해석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판결의 '강제집행'이 청구권협정 위반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제법적 근거 없이 외국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국제법상 외국인 보호의무 위반이 된다. 그러므로 '강제집행절차'가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한 일본 정부 주장은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박배근 교수 (부산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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