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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의 성립요건에 관한 고찰

    지창구 부장판사(전주지법 군산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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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언
    주민등록법 제37조 제1항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부정하게 사용한 자”(제8호)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한 자”(제10호)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정(不正)’의 사전적 의미는 “올바르지 아니하거나 옳지 못함”인바, 위 조항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면 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조항과 유사한 형식으로 규정된 형법 제230조의 공문서부정행사죄에 관해 그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자칫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염려가 있으므로 범행의 주체, 객체 및 태양을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하여 처벌범위를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하여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그 객체를 ‘사용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되어 있는 공문서’, 주체를 원칙적으로 ‘사용권한 없는 자’, 태양을 ‘그 공문서 본래의 용도에 따른 사용’으로 한정하는 해석론을 펴왔다(대법원 2001. 4. 19. 선고 2000도1985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3. 2. 26. 선고 2002도4935 판결 등).

    한편 주민등록증이 공문서에 해당함은 분명한데, 대법원은 주민등록법의 주민등록증 부정사용죄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부정사용한 자를 형법상의 공문서부정행사죄(법정형: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보다 가중처벌하기 위해 규정된 것이라고 본다(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30 판결).

    그러면서 주민등록증의 본래의 용도는 동일인증명 또는 신분확인에 있음을 전제로, ① 피고인이 이동전화기대리점 직원에게 기왕에 습득한 A의 주민등록증을 내보이고 A가 피고인의 어머니인데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고 속여 A의 이름으로 이동전화 가입신청을 하여 이동전화기를 교부받았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신분확인용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공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위 2002도4935 판결), ② 피고인이 A 명의로 할부금융을 받기 위하여 A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행세하면서 A의 주민등록증을 담당직원에게 제시하거나, 남편인 B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하여 B의 승낙을 받은 것처럼 B의 주민등록증을 담당직원에게 제시한 행위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신분확인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주민등록법위반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위 2003도7830 판결).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하려면 법률행위 등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가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우, 즉 법률행위의 경우에는 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가 당사자인 경우(다시 말해 무권대리 또는 무권대행의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에 관한 판례
    그런데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에 관해 "구 주민등록법(2006. 3. 24. 법률 제7900호로 개정되어 2006. 9. 25.부터 시행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1조 제2항 제9호는 공적·사적인 각종 생활분야에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과 같이 명의인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유형적인 신분증명문서를 제시하지 않고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등만으로 본인 여부의 확인 또는 개인식별 내지 특정이 가능한 절차에 있어서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민등록번호 소지자의 허락 없이 마치 그 소지자의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거나 ㉯ 자신이 그 소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그 소지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이용하였다 하더라도 그 주민등록번호를 본인 여부의 확인 또는 개인식별 내지 특정의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이른 경우가 아닌 한 위 조항 소정의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위 번호는 필자가 부기한 것이다)라고 최초 판시(대법원 2007. 10. 11. 선고 2006도7821 판결)한 이래 그 법리가 아래 판결들에서 일관되게 반복 설시되어(구 주민등록법이 위와 같이 개정되면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에 관한 구 주민등록법 제21조 제2항 제9호 중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위하여” 부분이 삭제되어 위 판시 내용 중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부분만 빠졌다) 확립된 판례가 되었다.

    그러면서 ① 피고인이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운영회사의 고객유치업무를 하면서 보유하게 된 고객들(A)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의 직원에게 제공하여 그 보험회사 직원으로 하여금 위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시스템에 보험가입 가망 고객으로 등록하도록 한 행위(위 2006도7821 판결), ② 피고인이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법인 보험대리점 업체인 X회사의 총무과장으로서, X회사가 Y보험회사와 보험모집 법인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Y보험회사로부터 법인대리점의 임원 및 보험 모집 유자격자의 명단 제출을 요구받자 A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A가 이미 X회사에서 퇴사하였음에도 마치 A가 X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처럼 A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X회사 법인대리점 임원 및 유자격자 명부를 작성하여 Y보험회사에 제출한 행위(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4574 판결), ③ 피고인이 A로부터 보관 받은 승용차를 피보험차량으로 하여 X보험회사와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보험계약자: 피고인)하면서 피보험자로 A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게 한 행위(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10도12534 판결), ④ 가요주점을 운영하는 피고인이 그 가요주점의 사업소득세와 부가가치세에서 부당하게 비용을 공제받을 의도로 그 정을 모르는 세무사사무실 직원으로 하여금 위 가요주점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한 사실이 없는 A를 종업원으로 세무서에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A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 행위(대법원 2013. 1. 24. 선고 2012도11076 판결), ⑤ 피고인이 직원채용을 가장하여 허락 없이 A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문서를 X대학교 학적조회팀 담당자에게 발송하여 위 담당자로 하여금 같은 날 학적조회 시스템에 A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한 행위(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3도10461 판결)는 모두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신분확인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이하 순서대로 ‘제1 내지 5 판결’이라 한다), ⑥ 피고인들이 X은행 전산시스템에 입력되어 있던 예금자 또는 대출상환자의 명의를 도용하여 신규대출을 발생시키기 위하여, 직원인 Y를 통하여 대출결재를 위한 전산자료인 피명의도용자들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대출품의서’, ‘대출명세서’ 등을 작성하고, 대출 결재 후 X은행 전산시스템 대출용 프로그램에 위 피명의도용자들의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 등을 입력하여 가장 대출을 발생시킨 행위는 피명의도용자들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의 허락이 없음에도 그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 주민등록번호를 피명의도용자 명의로 대출을 발생시키고 그 명의의 대출계좌 및 예금계좌를 생성하기 위한 개인식별 내지 특정의 용도로 사용한 것이므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10. 17. 선고 2013도6826 판결, 이하 ‘제6 판결’이라 한다).


    3. 검토
    이상의 판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민등록증 소지자의 허락 없이 마치 그 소지자의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더라도 공문서부정행사죄나 주민등록증 부정사용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과 달리 주민등록번호 소지자의 허락 없이 마치 그 소지자의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면(위 ㉮의 경우)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법원이 주민등록증 부정사용죄와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의 성립요건을 달리 보고 있는 것은 주민등록증이 대면(對面)하여 어떤 거래나 행위를 함에 있어서 신분확인을 위해 사용되는 것과 달리 주민등록번호는 주로 온라인 등 대면하지 않고 어떤 거래나 행위를 함에 있어서 신분확인 또는 당사자특정을 위해 사용되는데, 그와 같이 비대면 거래나 행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 경우 자신이 그 주민등록번호의 소지자인 것처럼 행세한 것인지 아니면 그 주민등록번호의 소지자로부터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추측된다.

    그런데 대법원이 위 제1 내지 5 판결에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은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다.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개인 식별을 위한 고유번호인데,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함부로 사용하였고, 이는 묵시적으로라도 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의 허락을 얻은 것처럼 행세한 것으로 볼 수 있음에도(특히 제3, 4 각 판결의 경우) 왜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신분확인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생각건대, 위 판례들의 사안을 검토해 볼 때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하려면 법률행위 등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가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우, 즉 법률행위의 경우에는 그 주민등록번호 소지자가 당사자인 경우(다시 말해 무권대리 또는 무권대행의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제1 내지 5 판결의 경우 행위의 주체(당사자)는 피고인이고, 그 행위의 과정에서 A의 주민등록번호를 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므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하지 않으나, 제6 판결의 경우 대출(= 소비대차계약)이라는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피명의도용자들이므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으로 이해된다.


    지창구 부장판사(전주지법 군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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