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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법적 역할 -도덕적 의무의 법적 모델에 관한 성찰-

    손용근 서울행정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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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서언

    사람들은 흔히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가 충족될 때 지도층 인사들을 존경과 신뢰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 지도층 인사들의 존재를 갈구하면서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제, 노블레스 오블리지 등으로 상이하게 사용되어 왔으나, 2002년 4월에 열린 「정부ㆍ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표준어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요컨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의 고위직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상류 지도층 인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바탕 위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하여 앞장서 나감으로써 사회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등 여러 사회적 순기능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가?

    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요 사례

    1. 지성은 그리스인, 체력은 켈트인과 게르만인,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어떻게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지적한다. 로마의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의무를 감당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사회의 본보기가 되었다. 국고가 바닥나자 전시국채를 발행하여 원로원 위원과 고위 관료, 부자들에게만 구입하도록 하였고, 지도층이 먼저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바쳤다. 귀족들은 스스로 자진하여 세금을 낼 뿐만 아니라 국난이 일어났을 때 솔선수범하여 전쟁터에 나아가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실제로 로마의 원로원 등 귀족들 상당수가 전쟁터에서 희생당했다고 한다.

    귀족들이 솔선수범을 보이자 평민들도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고 다투어 전쟁터로 나갔다. 마침내 로마는 명장 ‘한니발’을 꺾고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차례로 정복하여 세계적인 대국을 이뤘다.
    그러나 로마는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종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 몽고 대제국을 건설한 징키스칸은 전쟁터로 출전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네 아들을 선두에 세워 병력을 지휘토록 했으며, 그 결과 3차에 걸친 서방원정을 대승으로 장식하고 광대한 몽고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전쟁사의 미스터리라고 말하고 있는 워털루 전투(The Battle of Waterloo)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설명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절대적 열세에 있었던 영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전사자들의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군의 전사들 중에는 하층민이 많았지만, 영국군의 전사자들 중에는 ‘이튼칼리지(Eton College)’ 출신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들의 자제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440년 헨리 6세(Henry VI)에 의하여 설립된 이튼칼리지는 주로 상류 부유층 자제가 입학하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사관학교 등으로 진학하여 영국의 지도자가 되는 일종의 ‘귀족양성학교’였다. 그런데 이튼칼리지 학교 출신들, 즉 귀족들의 자제들이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앞장을 서게 되자 서민 출신의 군인들도 용감하게 싸워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깊게 배어 있다. 역대 미국의 지도자들 역시 앞장서서 전장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F.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2차 대전 중 미육군에 지원했으나 허리디스크로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여름 내내 맹렬한 허리강화운동을 한 끝에 해군에 입대하여 태평양전쟁에 참가했다.

    6.25 전쟁 중 미장성의 자제만 142명이 참전하여 그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Ban Fleet) 장군은 그가 지휘하던 6.25 전쟁터에서 두 아들을 잃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6.25 전쟁에 자기 아들을 참전시켰는데, 그 아들은 전사했다. 마오쩌둥은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의 시신 수습을 하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주석의 아들이니 그 시체를 찾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을 알고 내린 지시였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탕으로 마오쩌둥은 10억의 중국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3. 우리나라의 경우도 역사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찾을 수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 화랑도(花郞徒)로 대표되는 신라 상류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기 600년 김유신의 동생 김흠춘은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결사대로 인해 수세에 몰리게 되자 아들 ‘반굴’에게 “지금이 충ㆍ효를 함께 이룰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우라고 했다. 이에 반굴은 용감하게 싸움에 임하여 장렬히 전사하고, 이를 본 ‘품일’은 그 아들 ‘관창’에게 반굴처럼 용감히 나가 싸우라고 했다. 관창도 전사를 했다. 두 장수의 아들이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은 신라 군사들의 전투의지를 불러일으켜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경주 최씨 가문의 400년 동안 내려오는 가훈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최씨 가문의 6가지 가훈은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 것(즉 권력의 한계를 가졌던 것이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말 것(재산도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 것.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을 것(부자이지만 젊을 때 3년 정도는 검소하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자기집 사방 백리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등이다. 대대손손 대를 이어 6가지 가훈을 실천한 최씨 가문은 단순한 부자가 아니었다. 9대에 걸쳐 진사를 지낸 지식 있는 양반 부자로 정당하게 부를 축적했으며, 그 부를 사회에 적절히 환원함으로써 민중의 존경을 받았다. 최씨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은 독립운동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자금을 조달했으며, 일본 총독부의 끈질긴 관직 제의도 거부했다.

    Ⅲ.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우리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떠한 의미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까? 사회지도층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는 무엇이며, 과연 어떠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인가? 특히 전문지식인의 한 표상인 교수나 전문직업인의 한 표상인 법조인에게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무엇인가?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 주체에 대하여 알아본다. 과거 고대 로마와 서양의 귀족사회에서는 귀족들과 상류층 인사들이 당연히 여기에 포함이 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왔는데, 귀족제도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는 누가 그 주체가 되어 이를 실천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이 시대에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적인 지위에 있거나 고위층의 인사,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될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가와 고위공직자, 경제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재벌들과 기업가와 부자들, 학자와 교수 등 전문 지식인,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업인, 군의 고급지휘관 등으로서 모든 분야에서 국가를 이끌어 가고,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계층과 사람들은 모두 포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귀중한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국가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또 전쟁에 처하였을 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여하고 또 희생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부(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요즈음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과 불우한 이웃, 장애인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귀중하다고 여기는 재물을 기부하고 봉사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실천해야 할 중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일까? 사회가 극도로 다양화된 오늘의 현실에서 교수가 보여야 할 모범으로서의 최고가치 중 하나는 사회를 진단하고 이론적 처방을 제시함에 있어서 가치종합성, 가치중립성을 지니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미래를 감지하는 탁월한 예지력을 보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가치가 이분적으로 나뉘어 논리적인 투쟁을 사회적 토대 위에서 감행하고 있을 때 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생산적인 미래를 창조할 지식적, 지혜적 모델을 제시할 ‘오블리주’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한번 자성해 볼 일이다.

    또한 오늘날 법조인이 시급히 실천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것이 ‘진실에의 용기’일 것이다. 과거에 진실에의 용기가 부족한 것이 사법부 불신의 단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기관, 소송당사자, 여론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주저 없이 사회공동체가 추구하는 진실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역지사지의 자세’, ‘정직성’,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위한 공정한 법집행’, ‘부정한 청탁의 배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Ⅳ. 결론 - 도덕의 법적 모색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오죽하면 우리 사회지도층은 사회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사회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회지도층 집단이 형성되어 왔지만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화랑도 정신’이나 전통사회의 명문가들이 지켜왔던 ‘선비정신’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사회지도층과 그 자녀들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병역기피, 탈세, 부정입학 등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부패구조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오블리주 없는 노블레스’, 다시 말해 ‘의무를 망각한 상류집단’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자기의 위치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노블레스만 있고 오블리주는 없는 국가는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 사회지도층은 무릇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한 집단이나 국가의 당당한 지도층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에게 감동적이며 공감적인 것을 주어야 한다. 가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은 방어의 최전선에 나서야 하며, 회사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자신의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사장이 진정한 존경과 추종을 얻게 된다. 국가사회에서도 이는 불변의 진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발성과 도덕성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법적 강제성 같은 실천의 강제를 수반하지 못한다는 한계성이 있다. 그 한계성으로 인하여 한낱 입에 발린 구두선, 치장적 교양이나 겉멋이라는 비난에 직면하는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자와 법조인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오블리주에 유의하면서 공직사회와 기업, 근로자의 노사관계 등에 초점을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의해 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서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 및 단결된 근로자 등이 갖는 시회적인 영향력을 감안하여 보면 시의적절한 뜻이 있다고 본다. 도덕과 윤리에 보다 친화적인 개념을 법적인 접근방법으로 논의해 본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모색적 지표제시가 가능하지 않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다만, 법학자와 법조인 스스로도 ‘노블레스’의 하나임을 고려할 때 자신들의 ‘오블리주’를 먼저 논하지 아니하는 아쉬움이 없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