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민법 제393조에 의하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하고,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 위 규정은 민법 제763조에 의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준용되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도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하고,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불법행위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차량이 파손되는 손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가 불법행위자 또는 그가 가입한 보험회사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때 {보험회사를 상대로 한 청구는 상법 제724조 제2항에 규정된 제3자의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판례는 이를 손해배상채무의 병존적 인수로 보므로(대법원 2014. 9. 4. 선고 2013다71951 판결 등), 청구원인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가 된다} 손해배상의 범위가 어디까지 미치는지에 관해 살펴본다.
2. 판례의 입장
이에 관해 판례는 ① 수리가 가능한 경우는 ‘수리비’, ②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는 ‘교환가치 감소액’, ③ 수리를 한 후에도 일부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수리비 + 수리불능으로 인한 교환가치 감소액’을 각 통상손해로 본다(대법원 2001. 11. 13. 선고 2001다52889 판결).
그러면서 수리가 가능한 경우 수리비 이외에 교환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한다고 한다(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2다115298 판결).
앞서 본 민법규정에 의하면 통상손해는 당연히 배상의 범위에 포함되나, 특별손해는 불법행위자가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범위에 포함되는데, ① 대법원 1992. 3. 10. 선고 91다42883 판결(밑줄 및 괄호 부분은 필자가 기재, 이하 같다)에서는 원고 자동차의 수리를 요하는 부위나 부속품에 관한 내용과 파손부위를 살펴보고 수리에 소요된 비용의 액수(428만9800원)에 비추어 보면, 원고 자동차의 파손부위를 수리한다고 하여도 그 교환가치의 감소가 있을 것으로 보이고(손해발생 사실 인정), 이 사건과 같은 정도의 사고로 인한 자동차의 파손이 있는 경우에는 그 교환가치가 감소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치된다(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 인정)라는 이유로 수리가 가능한 경우 수리비 이외에 교환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인정한 반면, ② 위 2012다115298 판결에서는 파손 부위도 차량 후미 트렁크 및 양쪽 사이드 패널 등일 뿐 엔진룸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며 손괴된 부품은 모두 교체되었으므로 위 파손 부위를 수리한다고 하여 당연히 교환가치가 감소된다고 할 수도 없다(손해발생 사실 부정)라는 이유로 수리비 이외에 교환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지지하였다. 선박 파손의 사안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대법원 1979. 2. 27. 선고 78다1820 판결에서는 사고로 선가의 100분의1 상당의 교환가치가 감소되는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특별손해인데 특별사정의 존재와 그 사정을 피고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선박이 충돌로 인하여 경미한 손상을 입어 수리가 가능한 경우 수리 후에도 언제나 선령이 단축되어 교환가치가 감소된다는 경험칙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3. 비판
가.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의 개념에 관해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에 있어 통상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종류의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사회일반의 관념에 따라 통상(보통)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범위의 손해’, 특별손해는 ‘당사자 사이에 있어서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에 의한 손해’라고 설명된다(곽윤직, 채권총론, 신정수정판, 박영사, 148~150면). 이를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에 적용해보면 통상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종류의 불법행위가 있으면 사회일반의 관념에 따라 통상(보통)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범위의 손해’, 특별손해는 ‘피해자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에 의한 손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로 고가의 도자기를 운송하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인해 그 도자기가 파손된 경우 그로 인한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해자동차의 운전자가 차량 외부에 그와 같은 운송사실을 기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법행위자가 그 도자기 운송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해 그 도자기 가액이 손해배상범위에 포함된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인해 차량이 파손된 경우 수리가 가능하더라도 수리비 이외에 교환가치 하락(이는 곧 차량의 중고시세 하락을 의미한다)이 있는가는 피해자의 개별적·구체적 사정과 전혀 무관하다. 이는 수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사고전력이 있는 차량의 경우 중고시세가 하락하는가라는 시장에서의 거래현실에 의한 경험칙의 문제일 뿐이고, 불법행위자가 그러한 경험칙을 인식할 수 있었는가에 따라 손해배상범위를 달리 보아야 할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는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의 개념정의에 의할 때 통상손해에 속하지 특별손해라고 볼 수 없다.
나. 수리를 한 후에도 일부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아있는 경우와의 불균형
앞서 본 것과 같이 위 경우에는 ‘수리비 + 수리불능으로 인한 교환가치 감소액’이 통상손해가 되고, 이 경우 ‘수리불능으로 인한 교환가치 감소액’은 ‘차량의 사고 전 중고시세 - 차량의 수리 후 중고시세’의 방식으로 산정한다. 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다28719 판결에서는 원고 소유 그랜저승용차의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사고 전의 평가액인 2120만원에서 수리 후 피해현상에 따른 평가액(실제매도액)인 1350만원을 뺀 차액 770만 원으로 산정하였다(대법원 2001. 11. 13. 선고 2001다52889 판결도 마찬가지이다).
위 91다28719 판결의 사안에서 원고 소유 승용차의 수리가 가능하나 수리를 하더라도 사고전력으로 인해 중고시세가 2000만원으로 떨어졌다고 할 때 앞서 본 판례 입장에 의하면 120만원(= 2120만원 - 2000만원)의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하여 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한하여 배상책임이 있는데 반해,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교환가치 감소액 770만원 전액을 통상손해로 보아 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 유무와 무관하게 배상책임이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교환가치 감소액 전액을 통상손해로 보면서 수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교환가치 감소액을 특별손해로 보는 것은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취급이다.
다. 실익이 없음
수리가 가능한 경우 교환가치 감소액을 특별손해로 보면 불법행위자가 그러한 교환가치 감소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해 배상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앞서 본 것과 같이 이는 피해자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이 아니고, 따라서 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을 따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앞서 본 판례들은 결론적으로 사고의 정도가 중하고 엔진룸 등 자동차의 중요부위가 파손된 경우에는 교환가치 감소액을 손해배상범위에 포함시키고, 사고의 정도가 경미하고 트렁크 등 자동차의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부위가 파손된 경우에는 교환가치 감소액을 손해배상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다.
결국 실제 사건에서는 교환가치 감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것이지, 교환가치 감소라는 손해의 발생사실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불법행위자가 인식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범위에서 배제한 판례는 필자가 검색한 바로는 존재하지 않는다(위 91다42883 판결에서는 교환가치 감소사실을 인정하면서 불법행위자가 인식가능성도 인정하여 손해배상범위에 포함시켰고, 위 78다1820 판결, 2012다115298 판결에서는 교환가치 감소사실을 부정하여 손해배상범위에서 배제하였다).
이와 같이 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 유무를 개별?구체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달리 내리지도 않는 이상 수리가 가능한 경우 교환가치 감소액을 특별손해로 볼 실익도 없다.
4. 결론
교통사고로 자동차가 파손되었을 때 수리가 가능한 경우 수리비 이외에 교환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해는 특별손해가 아니라 통상손해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배상책임의 유무를 가림에 있어 불법행위자의 인식가능성을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한 손해 발생사실이 인정되는지가 문제될 뿐이다. 결국 피해자의 손해발생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구체적인 배상책임의 유무 또는 범위는 사고의 정도, 자동차의 파손부위 및 수리비, 중고자동차 시장의 거래현실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