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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특허 진보성 판단의 과거·현재·미래

    김원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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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서론
     
    특허소송 실무에서 진보성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진보성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전문적인 기술 문제를 포함하고 있어 판단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본고에서는 사후적 고찰에 관한 실증적 실험 결과를 소개하고, 진보성 판단에 관한 주요 판결들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본고는 지난 11월 4일 한국지식재산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임. 보다 상세한 내용은 한국지식재산학회의 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임).
     
    2.사후적 고찰에 관한 실증적 실험 소개
     
    진보성 판단 시에는 발명의 명세서에 개시되어 있는 기술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사후적으로 통상의 기술자가 그 발명을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서는 아니된다(대법원 2007. 8. 24. 선고 2006후138 판결). 
     
    이러한 사후적 고찰 금지 원칙과 관련하여, 미국의 Gregory N. Mandel 교수(Albany Law School) 는 2006년에 실증적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다(Gregory N. Mandel, Patently Non-Obvious: Empirical Demonstration that the Hindsight Bias Renders Patent Decisions Irrational, OHIO STATE LAW JOURNAL, Vol. 67.). 오리엔테이션 중인 로스쿨 합격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실험은 발명의 선행기술이 기재된 시나리오 2개(‘야구공을 던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도구’ 발명, ‘인공 낚시용 미끼’ 발명)를 준비하여, 참가자들을 ① 위 시나리오와 발명자가 발명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그룹(‘Foresight 그룹’), ② 이에 더하여 발명자가 발명에 성공하였다는 점과 해당 발명의 내용까지 알려준 그룹(‘Hindsight 그룹’), ③ 여기에 추가적으로 사후적 고찰을 하면 안된다는 점을 설명해 준 그룹(‘Debiasing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Mandel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발명이 자명한지, 자신의 답변에 대한 확신의 정도와 발명자가 발명에 성공하였을 가능성(1~7)을 답변하도록 하였다. 시나리오 1에 대한 실험결과를 정리해 보면, 발명의 자명성을 인정한 비율은 Hindsight 그룹이 76%로 Foresight 그룹의 24%보다 3배 이상 높았고, 발명이 성공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비율 또한 Hindsight 그룹이 가장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Debiasing 그룹에 사후적 고찰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명의 자명성을 인정한 비율(66%)과 발명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판단 결과가 Foresight 그룹보다 Hindsight 그룹에 현저히 가까웠다는 것이다. 
     
    실증 실험의 불완전성을 감안하더라도, 위 결과는 사후적 고찰이 발명의 진보성 판단을 왜곡할 수 있고, 사람의 인지능력의 한계상 사후적 고찰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러한 왜곡을 크게 교정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3.우리나라 법원의 진보성 판단 법리에 관한 판결 및 평가
     
    가. 대법원 2007. 8. 24. 선고 2006후138 판결
     
    대법원은 사후적 고찰 금지의 원칙 선언과 함께 “특허발명이 출원되기 이전에 도청모드 자체를 혹은 이러한 도청모드를 암시하는 선행공지발명에 관한 어떠한 자료도 제출된 바 없으며, 원심 판시의 비교대상발명 1의 위 구성으로부터 통상의 기술자라면 마땅히 위 구성요소 4를 생각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정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면서 당해 특허발명의 진보성을 부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진보성 부정에 관한 입증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사후적 고찰이 아닌 판단방법을 제시하였다.
     
    나.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후3284 판결
     
    대법원은 결합발명의 경우에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체로서의 기술사상이 진보성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특유의 과제 해결원리에 기초하여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로서의 구성의 곤란성을 따져 보아야 하며, 이 때 결합된 전체 구성으로서의 발명이 갖는 특유한 효과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여러 선행기술문헌을 인용하여 특허발명의 진보성을 판단할 때에는 ① 그 인용되는 기술을 조합 또는 결합하면 당해 특허발명에 이를 수 있다는 암시, 동기 등이 선행기술문헌에 제시되어 있거나, ② 당해 특허발명의 출원 당시의 기술수준, 기술상식, 해당 기술분야의 기본적 과제, 발전경향, 해당 업계의 요구 등에 비추어 보아 통상의 기술자가 용이하게 그와 같은 결합에 이를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당해 특허발명의 진보성은 부정된다는 진보성 판단의 법리를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 법원의 진보성 판단에 관한 대원칙을 밝힌 것으로서, 진보성 판단의 예측가능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함께 도모한 것으로 생각되며, 미국 연방대법원이 KSR 사건에서 밝힌 것과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다.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후2698 판결
     
    비교대상발명 1은 프리즘 요소들이 동일한 2면각을 갖지 아니하는 점에서 특허발명과 차이가 있지만, 비교대상발명 2에 프리즘 요소들이 동일한 2면각을 갖는 구성이 나타나 있는 사안에서, 대법원은 비교대상발명 1은 프리즘부의 두정각을 서로 다르게 하는 구성을 채용함으로써 무광량각을 제거하고자 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술적 특징이 있는 것이어서, 비교대상발명 1에서 서로 다른 두정각의 구성을 제거하고 비교대상발명 2에 나타나 있는 동일한 2면각의 구성을 도입하는 것은 비교대상발명 1 본래의 기술적 의미를 잃게 하는 것이 되어 쉽게 생각해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청구범위 제2항의 진보성을 부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이는 선행발명의 기술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진보성 판단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서 사후적 고찰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라. 대법원 2016. 1. 14. 선고 2013후2873, 2880 (병합) 판결
     
    이 사건에서는 우선일 당시 항경련제로 공지되어 있던 프레가발린{신경전달물질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와 유사한 화학구조를 갖는 GABA 유사체 중 하나로, 우선일 전 뇌에서 GABA 레벨이 역치 이하로 떨어지면 경련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공지된 이래로 GABA처럼 작용하거나 GABA의 레벨을 증가시킬 수 있는 항경련제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합성된 화합물} 이라는 공지 화합물의 통증 치료에 관한 제2 의약용도발명의 진보성이 문제되었다.
     
    프레가발린 라세미체를 포함하는 다양한 GABA 유사체 화합물이 GABA의 생성을 촉매하는 효소(GAD)를 활성화시키는 능력을 통해 항경련제로서 작용하는 기전에 관한 가설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결과를 개시하는 선행문헌이 제시되었는바, 해당 선행문헌 청구범위에는 프레가발린의 라세미체를 비롯한 1군의 일반식 화합물을 전신적으로 투여하여 뇌 GABA 양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었다. 
     
    대법원은 제시된 선행문헌을 근거로 어떤 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진보성 부정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일부 기재만이 아니라 그 선행문헌 전체에 의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항을 기초로 대비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위 일부 기재 부분과 배치되거나 이를 불확실하게 하는 다른 선행문헌이 제시된 경우에는 그 내용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해당 발명을 용이하게 도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선행기술의 개시내용의 해석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선행문헌의 구체적인 내용과 다른 증거들을 종합한 뒤에 통상의 기술자가 위 청구범위에 기재된 프레가발린이 뇌의 GABA 레벨을 상승시킨다는 불확실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기초로 GABA 레벨의 상승이 진통효과를 가져온다는 추가적인 사실을 결합하여 프레가발린의 진통효과를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원심{특허법원 2013. 10. 10. 선고 2012허9839, 10563, 10679, 10631, 10754(각 병합) 판결}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이 판결은 화학 구조가 유사한 동일 부류의 화합물 간에도 이론적 예상과는 다른 생리활성을 나타내는 등 효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낮은 기술분야의 특성을 진보성 판단에 고려한 측면도 있어 보이며, 선행발명의 기술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진보성 판단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0후2698 판결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4. 결론 
     
    특허법원이 지식재산권 허브 법원을 향하고 있는 지금, 사후적 고찰을 방지할 수 있는 진보성 판단 법리의 발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무의 정착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