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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국제중재의 최신 경향 - 긴급중재인 제도

    정교화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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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몇 년간 국제 중재계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단연 긴급중재인(Emergency Arbitrator) 제도이다. 국제중재는 다국적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을 중립적인 포럼에서 해결하는 분쟁해결 수단으로서 큰 각광을 받아왔다. 그런데 국제중재의 경우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까지 통상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긴급한 보전처분의 필요가 있을 경우 권리구제의 공백이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법원에 보전처분을 구할 수 있으나, 국내 법원이 아닌 외국 법원에 보전처분을 구하는 것은 실무상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분쟁 사안이 외부에 공개될 수 있어서 사실상 권리 구제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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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긴급중재인 제도는 중재판정부 구성 전에 긴급한 보전 처분의 필요성이 있을 경우 법원의 도움 없이 중재기관이 선정한 1인의 긴급중재인으로부터 임시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긴급중재인은 중재판정부가 구성됨으로써 그 권한이 소멸되는데, 국제중재의 실효성을 높이고 당사자들의 권리 구제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II. 주요 국제중재기관의 긴급중재인 제도 도입 및 아시아 지역에서의 활발한 활용


    2006년 미국국제중재협회(AAA-ICDR)를 필두로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ICC),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스톡홀름국제중재센터(SCC)등 주요 국제중재기관이 모두 긴급중재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대한상사중재원도 2016년 6월 1일자로 국제중재규칙을 개정하면서 긴급중재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필자는 국제중재규칙 개정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긴급중재인 제도 도입에 대한 검토를 담당하였는데, 대다수의 중재기관이 긴급중재인 제도를 도입하였거나 도입이 임박한 점을 알 수 있었다. 특이점으로는 긴급중재 제도가 아시아에서 먼저 정착하였다는 점이다. SIAC의 경우 2010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이래 50여건의 긴급중재 사건을 처리하였고,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호주 중재기관도 모두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2012년 긴급중재인 제도를 도입한 ICC의 경우 초기에는 사건 수가 적었지만 현재까지 약 40건의 긴급중재 사건을 처리하였다. 따라서 긴급중재인 제도는 이제 국제중재의 특유한 제도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III. 긴급중재의 절차, 요건 및 대상

    긴급중재인 제도는 위와 같이 중재 절차 안에서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성격상 매우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갑자기 긴급중재신청을 당하는 피신청인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주요 국재중재기관은 긴급중재인이 선정된 날(또는 사건 기록이 넘겨진 날)로부터 긴급처분까지 통상 2주 이상의 기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SCC의 경우 다른 중재규칙보다 짧게 5일 이내에 긴급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단기간 내에 쌍방이 서면공방과 경우에 따라서는 증인신문까지 포함하는 구두심리를 진행해야 하므로, 매우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긴급중재를 제기 당하는 피신청인 입장에서는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긴급처분의 내용은 분쟁 당사자들을 구속하고 당사자들 사이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유리한 긴급처분을 받는 것은 전체 사건의 전략상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중재기관은 긴급중재의 요건이나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두지 않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적절하게 판단하도록 긴급중재인에게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ICC 중재규칙 제29조는 긴급중재의 요건으로서 ‘중재판정부의 구성을 기다리기 어려운 긴급한 임시 또는 보전 처분이 필요한 경우(urgent interim or conservatory measures that cannot await the constitution of an arbitral tribunal)’에 긴급처분을 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SIAC의 경우에는 ‘긴급한 구제(emergency relief)’가 필요한 경우, HKIAC의 경우에도 ‘긴급한 임시 또는 보전 처분(urgent interim or conservatory relief)’이 필요한 경우 긴급처분을 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규칙 제32조도 ‘긴급한 보전 및 임시적 처분(urgent conservatory and interim measures)’의 필요성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긴급성’ 이외에 일반적인 보전처분과 마찬가지로 (1) 긴급처분을 명하지 않을 경우 신청인이 입게 되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 (2) 긴급처분을 명함으로써 피신청인에게 가해지는 손해와의 비교, (3) 본안에서의 승소 가능성 등이 통상 고려해야 할 요건으로 거론된다. 

    긴급처분의 대상도 광범위한 것으로 해석되는바, 개정 중재법 제18조가 도입한 UNCITRAL 모델 중재법 제17조는 중재판정부가 명할 수 있는 보전 및 임시적 조치를 상당히 광범위하게 열거하고 있고, 긴급중재인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임시처분을 명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IV. 긴급중재 절차 진행의 실제 사례

    필자가 최근에 경험한 긴급중재의 경우 18일 안에 모든 절차가 종료되었다. 다행히 필자가 대리한 피신청인이 전부 승소하였으나 미리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회사로서는 상당히 난감했을 것이다. 신청인은 중재전략상 일부러 휴일에 긴급중재인 신청서를 제출하거나 밤늦게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도 한국 시간으로 자정 직전에 신청서와 증거자료가 제출되었고 그 날이 D-1이 되었다. 절차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D-3에 중재기관은 긴급중재인을 선정하였다. 긴급중재인은 바로 다음날인 D-4에 전화로 당사자들과 절차일정에 합의하였고, D-10에 피신청인은 반박서면과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D-13에 하루 종일 구두 심리를 진행하였고, 불과 5일 후인 D-18에 40여페이지의 결정문이 발부되었다. 

    우리 기업은 국제중재를 먼저 제기하는 것을 꺼려하고 중재가 제기되면 그제서야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리인도 중재신청서를 받고 선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당사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고 중재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긴급중재의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특히 긴급중재의 상대방이 될 위험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긴급중재인 신청이 협상 전략상 상대방에게 압박을 가할 목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적 제약이 없는 신청인과는 달리 피신청인은 긴급중재신청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제약이 크다. 실제로 신청인이 몇 백 페이지에 달하는 신청서와 증거서류, 증인진술서까지 제출하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에도 피신청인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에 신청서를 소화하고 이에 대한 반박서면과 증거서류, 필요한 경우에는 증인진술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준거법과 중재지가 외국이어서 해당 지역의 긴급중재인이 선정되는 경우에는 외국에서 구두심리를 진행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긴급중재의 경우 통상적인 국제중재와 마찬가지로 승소 당사자의 변호사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패소 당사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대응을 잘하지 못하면 불리한 결과에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지급할 우려가 높다. 


    V. 긴급중재인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 및 대비의 필요성

    긴급중재의 피신청인이 될 경우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으나 긴급중재는 앞서 설명한 장점 또한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긴급중재인 제도는 종래 신용장 등 독립적 은행보증에 대해 법원에 지급금지가처분을 제기해 오던 실무 관행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건설사나 조선사는 이행보증증권을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아 발주자에게 제공하는데, 발주자가 권리를 남용하여 이행보증증권에 따른 청구를 하는 경우 국내 건설사나 조선사는 국내 법원에 지급금지가처분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은행을 상대로 하는 가처분은 인용 요건이 엄격하여 승소하기가 쉽지 않다. 긴급중재 제도 도입 이후 건설사나 조선사는 발주자를 상대로 긴급중재 신청을 하여 이행보증증권의 청구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은행으로부터 지급받은 이행보증금을 중재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에스크로 계좌에 넣어두고 중재판정 결과에 따라 이를 처리하도록 하는 긴급처분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긴급중재신청은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유연한 조치를 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종전과 같이 은행을 상대로 지급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였다가, 오히려 상대방이 제기한 긴급중재 신청에 의하여 소송금지가처분(anti-suit injunction)이 인용되어 한국 법원에 신청했던 지급금지가처분을 취하한 사례도 있다. 

    긴급중재인 제도는 국제 분쟁에 있어서 앞으로 더 활발하게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거래가 활발한 우리 기업들은 이를 잘 숙지하여 충분히 대비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