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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주민등록번호변경신청권이 과연 조리상의 신청권인지?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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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3두294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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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사안의 경과


     원고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또는 온라인 장터의 개인정보 유출 또는 침해 사고로 인하여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되었다”는 이유로 각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당시 현행 주민등록법령상 주민등록번호 불법 유출을 원인으로 한 주민등록번호 변경(정정)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거부하는 취지의 통지를 받았다. 이에 원고들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하였으나(서울행정법원 2012구합1204),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대한 신청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되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고(서울고등법원 2012누16727), 그 소송 계속 중 주민등록법 제7조 제3항, 제4항 등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서울고등법원 2012아506), 항소가 기각됨과 동시에 위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각하되자, 2013년 2월 27일 당시 주민등록법 제7조 전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 2013헌바68호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2월 23일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법 제7조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원고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주민등록법(2007. 5. 11. 법률 제8422호로 전부 개정된 것) 제7조는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은 2017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선고하였다(헌재 2015. 12. 23.  2013헌바68 등). 그리고 이에 따라 2016년 5월 29일 법률 제14191호로 개정된 주민등록법(시행일자 2017. 5. 30.)은 제7조의4(주민등록번호의 변경) 등을 신설하여,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로 인하여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위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등의 일정한 경우에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갑 등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자신들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되자 이를 이유로 관할 구청장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구청장이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된 경우 주민등록법상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거부하는 취지의 통지를 한 사안에서,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된 경우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나 재산에 대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고, 실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개인정보와 연계되어 각종 광고 마케팅에 이용되거나 사기,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악용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점, 반면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경우 그로 인하여 이미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구제방법을 찾기 어려운데도 구 주민등록법(2016. 5. 29. 법률 제141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점, 주민등록법령상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이 없다거나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따른 사회적 혼란 등을 이유로 위와 같은 불이익을 피해자가 부득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은 점, 주민등록번호를 관리하는 국가로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경우 그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일률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없도록 할 것이 아니라 만약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어서 이를 허용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경우에는 조리상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요구할 신청권을 인정함이 타당하고, 구청장의 주민등록번호 변경신청 거부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Ⅲ. 거부처분취소소송에서 위법판단기준시점의 문제


     판례는 행정행위의 위법판단기준과 관련해서 거부처분의 경우에도 처분시설을 견지하고 있다(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7두3930판결 등). 따라서 대상판결이 사안을 조리상의 신청권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은 당연하다. 대상판결의 판결시점에서 보면 현행 개정주민등록법은 명시적으로 주민등록번호변경신청권을 인정하고 있다. 비록 상고심이 원심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현재의 법 상황을 뒤로 물리고 사안을 조리상의 신청권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판례는 취소판결의 소급효 문제에서처럼(대법원 2012. 3. 29. 선고 2008다95885판결). 위법판단기준시점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시설을 견지한다는 식으로 예외인정가능성을 부여하는 탄력적인 자세를 취한다(대법원 2017. 4. 7. 선고 2014두37122판결). 이 점에서 대상판결은 처분시설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으로 묵수(墨守)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법적 판단에서 원칙의 정립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원칙을 유지하게 하는 예외의 인정이다. 예외인정의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면 자칫 그 원칙은 원칙을 위한 원칙으로 치부되어 수긍하기 힘든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기왕의 원칙이 원칙으로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다면, 과학혁명의 경우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해야 한다. 만약 위법판단기준시점과 관련해서 판례가 원칙과 예외의 견지에서 판결시점에서 접근하였다면, 굳이 조리상의 신청권으로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다(예외적으로 판결시점을 취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김중권, 행정법, 2016, 705면, 712면).

     

    Ⅳ. 거부처분취소소송에서 처분시설의 문제


     거부처분취소소송에서 처분시설을 취하면 처분이후에 발생한 법상, 사실상의 사정변경이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처분시설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만약 그런 사정변경이 발생하면 소송을 통한 분쟁의 해결은 절반에 그치고 또 다시 동일한 분쟁상황을 맞을 수 있다.  2013년 행정소송법개정안처럼 의무이행소송과 함께 거부처분취소소송과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을 존치하면,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작위위법확인소송에서는 판례(대법원 1990. 9. 25. 선고 89누4758판결)가 취하듯이- 판결시가 통용되고, 의무이행소송에서는 처분시 또는 판결시를 택할 것으로 예정되는 이상한 결과가 빚어진다. 결국 동일한 기능을 하는 3가지 소송에서 위법판단기준시점과 관련해서 심각한 혼란상이 빚어진다. 거부처분과 부작위에 대한 소송유형을 의무이행소송으로 일원화한 독일의 경우 재판이후 불필요한 분쟁가능성을 미연에 확실히 제거한다는 소송경제적 이유에서 판결시설을 취한다. 이제 의무이행소송의 도입이전이라도, 거부처분취소소송의 경우 일반적인 처분취소소송과 구별되게 판결시설로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Ⅴ. 2015년 12월 23일 이전에 과연 지금과 같이 할 수 없었는지?


     대상판결은 매우 설득력이 있게 조리상의 신청권을 인정하는 논증을 전개하였다. 아쉬운 점은 2015년 12월 23일 이전에 그것이 불가능하였는지 여부이다. 여기서 행정법상 공권을 강구함에 있어서 기본권을 동원할 수 있는지 여부와 어떤 요건에서 기본권을 동원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기본권이 행정법적 법관계에 어느 정도로 적용되는지는 문제된다. 해당 개별법상의 규범화가 없을 경우에 행정법의 주관적 공권을 기본권으로부터 직접 도출할 수 있는지 여부(기본권의 규범외부적 영향)가 다투어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판례와 통설은 -가중적인 기본권제한의 요건 하에서- 자유권적 기본권과 재산권과 같은 방어권의 경우에 이를 시인한다. 

     

    기본권의 규범내부적 효과가 개별법상으로나 판례법상으로 충분히 발휘되는 한, 굳이 주관적 공권을 기본권으로부터 직접 도출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행정법제가 헌법합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나름 정연하게 구조화되어 있지 않을 경우 즉, 실체적으로 꼭 필요한 이익균형이 심각하게 도외시된 경우에는 보호규범의 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주관적 권리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기본권은 예외적으로 규범외부적 효과를 발휘한다(상론은 김중권, 행정법, 655면 이하). 개인의 정보자기결정권이 기본권으로 확립된 이상, 그리고 2015년 12월 23일 이전의 동법 시행령이 비록 사안의 해당사유는 아니지만 정정 규정을 두었다는 점에서, 2015년 12월 23일 이전이라도 주민등록번호변경신청권을 조리상으로 충분히 도출할 수 있었다. 판례는 호적법에 성전환에 따른 호적정정에 관해 아무런 직접적인 근거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정정을 허락하였다(대법원 2006. 6. 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